126곳서 특화질환 연구… 미래건강 新세계 연다 [인체유래물연구②]

김건주 기자 2023. 6. 1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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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정보로 육종·난소암 등 연구 진행... 지역·환경별 데이터 자료 수집 가능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 경쟁력 강화 수원·부천 쏠림현상 등 해결문제 산적
인체유래물은행 연구원들이 초저온 냉장고에 보관된 혈액을 관리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인체유래물은 개개인의 역학정보를 담기 때문에 장기간 데이터가 쌓이면 지역별, 성별, 연령별 등 항목에 따른 다양한 특성을 살필 수 있는 교재가 된다. 예를 들면 쌀농사가 많이 이뤄지는 이천지역 시민의 표본과, 제조업종이 많은 안산지역 시민의 표본 특성이 차이 나는 식이다.

‘대한민국 축소판’으로 볼 수 있는 경기도 인체유래물연구는 다른 지역 연구보다 큰 의의가 있다. 도시, 농촌, 도농복합시 등 여러 환경군이 자리잡은 데다가 인구도 1천400만명을 넘기 때문이다.

13일 기관생명윤리위원회에 따르면 경기지역의 인체유래물 연구기관은 지난 2013년 54곳에서 지난 3월말 현재 126곳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인체유래물 연구기관은 본격적인 연구 수행에 앞서 생명윤리법에 따라 자율·독립적 윤리 기구인 ‘기관생명윤리위원회(기관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서류·현장·종합 평가를 받고 통과하면 보건복지부 인증을 획득할 수 있다.

한국인체자원은행네트워크(KBN)에 의하면 병원마다 특성화 연구 사업이 다르다. 국립암센터는 육종 연구, 분당차병원은 난소암 연구, 아주대병원은 간암·뇌혈관질환 등 각자 특화 질환에 맞는 연구를 한다.

순천향대 부천병원은 지난 2021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인체자원은행 특성화 지원사업으로 ‘경인지역 네트워크 기반 고품질 호흡기알레르기질환 인체자원은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인천지역의 호흡기알레르기 질환을 유발하는 유해물질 노출 정보를 집중 파악하는 내용이다.

가족력 여부를 분석해 데이터가 장기적으로 쌓이다 보면 현재 증상이 없는 환자의 미래에 일어날 병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

담당의사가 건넨 ‘인체유래물(혈액) 기증 동의서’에 환자가 서명을 하고 있다. 김건주기자

환자 수백명을 추적 관찰한 후 정상환자와 비교해 ‘특정 지역의 어떤 직군에서 무엇을 많이 한 사람들의 기관지폐포세척액에서 간질성 폐렴 증상에 특징적 검사소견이 발현된다’는 내용을 파악하는 게 연구의 주요 목적이다. 수요 맞춤형 고품질 인체자원 수집과 공급체계를 구축해 국가 바이오헬스산업의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

박종숙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호흡기알레르기내과)는 “지역별로 환경적 차이를 보이는 데이터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건설업 등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면 질병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며 “경인지역에서는 객관적 데이터 자료를 갖고 호흡기 질환 네트워크 운영 사업을 하고 있어 추후 지역별 환경 특성적인 질환 등이 분석된 연구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현 시점에서의 연구에 한계도 있다. 대부분의 인체유래물 데이터가 병원이 위치한 지역 중심으로 모여 있기 때문에 병원이 없는 곳의 인체유래물 수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경기도만 봐도 부천이나 수원 지역에 인체유래물이 밀집된 편이다.

연구 사업 활성화 위해 정부 및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신응진 순천향대 부천병원장은 “아직 사회적 관심이 부족, 연구자 개인적으로 학회 등에서 홍보를 통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지자체에서라도 바이오산업 포럼 등 인체유래물은행을 홍보할 기회를 마련해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제언 “개인정보 유출 우려… 연구 활성화 제도 보완 필요”

인류의 미래 건강을 위한 인체유래물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하지만, 일각에선 생명윤리 관련 법리적 해석이 명확해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의료계 등에 따르면 현장에서 인체유래물이 안전하게 채취되는지, 시료 보관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완벽히 보호되는지 등의 우려가 제기된다.

먼저 구체화해야 할 부분은 인체유래물은행 채취 기준이다. 인체유래물은행 운영과 연구 등이 가능하도록 지난 2013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바뀌었지만 채취자 자격요건과 직접 채취·채취 의뢰 시 규정, 과잉 채취 방지 방안 등이 아직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는 지난해 ‘인체유래물은행 관련 법적 기준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인체유래물은행이 인체유래물을 직접 채취하는 경우 △의사 감독하에 채취하는 등 ‘채취자 자격 요건’의 별도 규정 마련 △과잉 채취 등 권리 침해 방지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수정 동아대 인문사회의학연구소 교수는 “채취 과정에서 환자·기증자의 권리 존중, 연구와 진료를 구분한 적절한 동의 획득, 적절한 개인정보 보호 조치, 기밀 유지와 개인 식별 방지 노력, 과학적 타당성과 인체유래물 등을 사회에 도움을 주는 연구에 제공하는지, 우리 사회에 연구 성과가 공정하게 공유되도록 관련 제도를 마련하는지 등 다채로운 논의가 인체유래물 연구의 신뢰 구축을 위해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인체유래물은행에서 한 연구원이 인체유래물(혈액)을 관리하고 있다. 김건주기자

개인정보 유출 우려에 대한 보완도 필요하다. 인체유래물은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에서는 인체유래물의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매달 인체유래물 분양위원회를 열어 연구기관에 분양하고 있다. 인체자원 분양데스크를 편성해 분양심의를 진행,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있지만 명확한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민영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체유래물 자체는 별다른 정보가 아니지만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개인을 특정할 수도 있다”며 “분양 과정 등에서 이 같은 정보가 악용되면 취직, 보험, 직업 선택 등에서 일부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사회생활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할 사항”이라고 해석했다.

의료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도 인체유래물 연구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용전 대진대 법학 교수는 “생명의학의 발달은 인간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면도 있지만, 반대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우려도 존재한다”며 “인체유래물 제공자들에게 제공 이후의 상용화 등 제반 사정을 완전 공지하고 제공 동의 이후에도 제공자의 인체유래물 연구의 통제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체유래물 연구의 공익성을 강화하고, 의료산업활성화를 위한 인체유래물 연구의 동의면제 요건을 더욱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체유래물이란

생명윤리법에 따라 인체에서 수집·채취한 조직·혈액·체액 등 인체 구성물과 분리된 혈청, 혈장, DNA, 단백질 등을 말한다. 이를 직접 조사·분석하는 연구를 ‘인체유래물연구’라고 한다.

김건주 기자 g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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