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언어탐방] 로켓: 지구적 삶의 무거움에 도전하다

한겨레 2023. 6. 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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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언어탐방]우리는 ‘참을 수 있는 존재의 무거움’ 때문에 이 땅에서 살아간다. 우리를 마음대로 날지 못하게 하고 힘들게 하며 자유를 제약하는 그 무거움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그것을 잘 견디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 무거움은 우리에게 짐이지만, 나름 우리가 잘 지고 가는 짐이다. 우주 공간에서든 지구보다 훨씬 중력이 약한 달과 화성에서든, 우리는 가벼움의 혜택을 오히려 무척 버거워할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김용석 | 철학자

오늘날 로켓(rocket)이라는 말은 일상적 사용 빈도가 높은 단어가 됐다. 근대 초기부터 원거리 공격 무기 분야에서 사용해왔고, 20세기부터는 우주항공 분야의 술어로 빈번하게 사용해오고 있다. 로켓은 이탈리아어 ‘로케타’(rocchetta)에서 유래한다. 원래 물레에 거는 실감개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초기 로켓 탄두 모양이 원통형 실감개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로켓의 역사는 다양한 기원과 기술 전파 경로를 포함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무기 개발과 우주 진출이라는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일찍이 화약을 발명해서 무기로 사용했던 중국에서는 ‘의자 로켓’ 이야기가 전해온다. 명나라 때 한 지방 관리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우주여행을 꿈꾸다 어느 날 수십개 화약통을 의자 밑에 붙이고 의자에 몸을 묶고는 도화선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는 미국 볼티모어 ‘대포 클럽’ 회원들의 이야기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무기 개발의 명분을 잃은 회원들은 달을 향해 포탄을 발사할 대포를 만든다. 이 야심 찬 계획에 매료된 프랑스인이 달나라에 가겠다고 자원한다. 클럽은 길이 270m에 달하는 대포를 만들고 사람을 태운 포탄을 달을 향해 발사한다. 포탄은 지구 중력권을 탈출하기 위해 초속 11.2㎞로 날아 달까지 간 뒤 지구로 귀환해 바다에 떨어진다. 공상과학이 아니라 현실 역사에서도 무기 개발은 우주 기술에 연결된다. 우주 발사체의 원조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런던을 공습한 독일의 ‘V2로켓’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로켓을 개발한 과학기술자들은 그것이 무기로 쓰이는 것을 후회하고 인류의 번영을 위해 사용되기를 기원해왔다. 로켓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잘 쓰이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기도 하다. 더구나 21세기는 인류의 우주 진출이 대규모로 본격화하는 시기다. 아직은 21세기 초반이지만 금세기 전체를 관통하면서 인류의 ‘탈지구적 성향’은 다양하게 실현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우주적 차원에서 로켓의 인류사적 의미를 깊고 넓게 성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좀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우주발사체로서 로켓은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지구로부터 벗어나려는 힘을 얻으려고 개발한 것이다. 이 세상 만물에 ‘무거움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은 중력이다. 로켓은 지구적 삶의 무거움에 도전해서 지구 밖으로 나가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지구 밖은 상대적으로 ‘가벼움의 세상’이다. 우주 진출은 일차적으로 무거움과 가벼움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존적 전환의 여행이다. 그렇다면 가벼움의 세상은 그 말이 주는 느낌처럼 부담 없고 자유롭고 편안한 세상일까. 그렇지 않다. 그 어떤 설명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걸작 <그래비티>를 보면 실감할 수 있다.

<그래비티>는 지구 중력이 미치지 않는, 곧 무중력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이야기를 다룬다. 무거움을 상징하는 제목 아래 거의 절대 가벼움의 현실이 도발하는 인간 조건의 모순을 보여준다. 지구로부터 600㎞ 떨어진 우주 공간, 우주인들은 무중력 상태의 무한한 가벼움이 제공하는 삶의 조건을 나름 활용하며 우주에서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라이언 스톤(샌드라 불럭) 박사는 우주정거장의 망원경에 새로운 장치를 설치하는 중이다. 그녀는 우주의 가벼움을 잘 견디지 못해 힘겹게 작업하고 있다. 한편 베테랑 우주비행사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는 가벼움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비행할 수 있는 신형 기기의 성능을 시험하면서 우주 유영 신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곧 반대편 지구궤도에서 폭파된 구식 인공위성의 잔해 폭풍이 우주정거장을 덮친다.

이제부터 라이언과 맷의 생존을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그 사투의 장은 무한 가벼움의 공간이다. 무중력 상태에서의 수없는 반복 훈련에도 불구하고 이 가벼움의 조건은 자유의 보장이 아니라 ‘우주적 방종’의 역설적 속박으로 작용한다. 결국 맷은 우주의 까마득한 공간으로 실종되고, 라이언은 천신만고 끝에 다른 우주정거장의 탈출 캡슐을 타고 지구로의 귀환을 시도한다.

우주로부터 탈출과 지구로의 귀환 과정은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경계를 돌파하는 것이다. 지구 품 안으로 돌아가는 초고속의 여정은 목숨을 건 것이다. 라이언의 캡슐은 가까스로 호수에 떨어진다. 호숫가에 도달한 라이언은 중력에 온몸을 내맡긴 채 마치 첫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걷기 시작한다. 이제 그는 존재의 무거움을 만끽하는 희열 속에 있다.

우리는 ‘참을 수 있는 존재의 무거움’ 때문에 이 땅에서 살아간다. 우리를 마음대로 날지 못하게 하고 힘들게 하며 자유를 제약하는 그 무거움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그것을 잘 견디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 무거움은 우리에게 짐이지만, 나름 우리가 잘 지고 가는 짐이다. 우주 공간에서든 지구보다 훨씬 중력이 약한 달과 화성에서든, 우리는 가벼움의 혜택을 오히려 무척 버거워할 것이다.

밀란 쿤데라도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고대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를 소환하면서까지 무거움과 가벼움의 모순을 다각적으로 탐색한다. 부박한 삶과 진지한 삶이 교차하는 가운데서 그 모순을 절감하며 말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전혀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쿤데라는 파르메니데스 사상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인간관계의 일상적 모순을 넘어 물리적 무거움과 가벼움이 야기하는 인간의 우주적 모순에 걸맞은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우주적 차원에서 지구의 삶은 무거움으로 은유 될 수 있다. 인간을 모순적 존재라고 하는데, 사실 인간은 모순을 만들어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지구의 무거움과 함께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간은 우주적 가벼움의 가능성을 계속 시도하는지 모른다. 우주에 나가 그 무거움을 그리워할 것이면서 말이다. 로켓이라는 말은 우주적 무거움과 가벼움의 모순을 담고 있으며, 그 모순은 미래 인간의 우주적 정서를 구성하는 요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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