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평화운동 20년의 궤적과 미래 ②

한겨레 2023. 6. 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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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상공에서 러시아군이 쏜 이란제 샤헤드 드론(무인기)이 격추되고 있다. 러시아는 건립 기념일을 맞은 키이우에 지난달 28일부터 100기가 넘는 드론과 순항미사일을 쏟아부으며 개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가했다. 키이우/AP 연합뉴스

[세상읽기]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한국 평화운동 20주년을 맞아 지난 칼럼에서 평화운동이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살폈다. 이번 칼럼에서는 2023년 현재, 평화운동이 마주한 질문이 무엇인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첫번째 질문. “독재국가가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막을 방법이 있는가?” 미-중 대립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국제질서는 탈냉전 이후 가장 급격히 변하고 있다. 신냉전이라 명명되기도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냉전은 최소한 ‘관리’가 이뤄졌던 질서였다. 냉전 이전의 무질서, 1차 세계대전 직전과 비슷하다는 평가가 더 설득력 있다. 전쟁과 핵무기를 통제하고 궁극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것이 1,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합의한 목표였다. 이를 위해 유엔 등 국제기구와 수많은 국제법이 만들어졌다. 지금, 목표와 수단 모두 방향을 잃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전술핵무기를 터트릴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이라는 전쟁 역시 점점 더 ‘선택 가능한 정책수단’이 돼가고 있다. 전세계 평화운동 공통 슬로건은 반전·반핵이었다. 한세기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지금, 전쟁과 핵무기를 어떻게 다시 통제할 것인가?

두번째 질문.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해야 하나?”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주의 논리를 논외로 하면, 이 질문을 두고서는 정의파와 평화파가 대립한다. 정의파 논리는 이렇다. 러시아의 침략은 부정의하고, 영토와 주권을 지키겠다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정의로운 전쟁’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은 당연하다.

평화파 역시 러시아의 침략을 비판한다. 그러나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논리에도 비판적이다. 기실 모든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치장을 두르고 있다. 국가가 아닌 한 인간, 한 생명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쟁은 그 자체로 부정의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평화파는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것은 즉각적인 휴전이고, 무기 공급은 인명 피해를 키우고 전쟁을 장기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의 군사지원을 막고 있는 것은 외교적 고려일 뿐이며, 조만간 무기 공급 결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 20여년의 평화운동에도, 평화는 평화적 수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은 여전히 이상주의자들의 신념 정도로 치부되는 것은 아닐까. 변화한 국제질서 속에서 계속 등장하게 될 ‘정의로운 전쟁’에 평화운동은 어떤 대안 담론을 가지고 있는가.

세번째 질문. “힘에 의한 평화는 평화인가?” 남북 간 군사긴장 완화와 북핵 문제 해결(한반도 비핵화)은 한국 평화운동 제1의 목표였다. 그러나 북한 핵무기 능력은 완성 단계다. 이 절대무기 앞에서 한국 시민 60~70%는 독자 핵무장을 지지하고 있다. “마음먹으면 1년 내 핵무장” “압도적 전쟁 준비” “힘에 의한 평화 추구” “가짜 평화에 기댄 나라는 역사상에서 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다. 민주화 이후 가장 노골적인 안보 딜레마 상황이다.

ㄱ나라 군사력 증가가 ㄴ나라 불안으로, 그 불안은 군사력 증가로 이어진다. ㄴ나라 군사력 증가는 다시 ㄱ나라의 불안과 군사력 증가로 이어진다. 힘에 의한 평화는 결국 전쟁을 가져온다는 안보 딜레마를 상호신뢰와 군축으로 끊어내자는 것이 평화운동의 전통적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지금 작동하는가? 작동할 수 있는가? 한·미·일과 북·중·러의 지정학, 지경학적인 대립 상황에서 한국은 대립을 뛰어넘기보다 한쪽 진영 맨 앞에서 큰 칼과 총을 차려고만 한다.

오직 힘만이 평화를 지켜준다는 믿음이 강력한 사회에서 군사주의가 창궐한다. 이명박 정권 이후 ‘나라사랑 교육’이라는 반공주의 교육을 강력하게 추진한 국가보훈처는 이제 국가보훈부로 위상을 높였다. 적대적 세계관을 담은 교육과 홍보가 거세질 것이다. 전쟁과 분쟁을 먹고 살아가는 방위산업은 한국의 미래성장동력이 됐다. 한국 외교부의 무기 수출 행사에 군사쿠데타에 민간인 학살 의혹까지 받는 미얀마대사가 초청된 것은 징후적이다. 힘이 미덕인 사회에서 인권과 정의 따위는 흐릿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대 전쟁 앞에서 한 사회의 평화는 방향을 잡는다. ‘전쟁 반대 상호군축’으로, ‘전쟁 대비 무장강화’로 기울 수도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통해 한국 평화운동이 촉발됐다. 2023년, 우리는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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