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연봉 4억 포기하고 프롭테크 창업… "가슴 뛰는 일 하고 싶었어요"

이미연 2023. 6. 1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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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보험 본부장 하다 부동산에 빠져
3~4년간 투자고수들 죄다 쫓아다녀
숫자·논리로 설명못할 일들 다반사
데이터베이스 구축 미래까지 내다봐
"가을에 다시 약세… 2025년 투자시기"
김기원 리치고 대표
리치고 시스템으로 부동산 시장을 설명 중인 김기원 대표. 사진 이미연 기자
무료로 볼 수 있는 리치고 분석 정보 일부. 전세대비 저평가 지역이나 지역별 수급동향 등의 데이터도 준비 중이다.

'부동산 데이터전문가' 김기원 리치고 대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집값 폭락 속에 불확실성이 커져갔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을 외쳤던 부동산 상승론자도, 신념을 앞세운 하락론자도 섣불리 미래를 자신있게 예측하지 못했다.

김기원(51·사진) 리치고 대표. 김 대표는 데이터 기반으로 부동산 시장의 현재를 분석하고 전망을 내놓고 있다. 덕택에 '부동산 혼돈기'에 혜성처럼 부동산 전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의아했다. 김 대표는 공인된 부동산 데이터 분석전문가다. 하지만 직전 직장이 법인보험대리점(GA) 본부장이다. 당시 그가 받은 연봉은 4억원. 누가 봐도 부러운 액수다. 보험 네트워크도 잘 갖춰져 있어 안정적 미래도 보장된 상황이었다.

편안한 미래를 포기하고 그가 택한 길은 '프롭테크(proptech, property+technology)' 시장이다. 너도나도 도전하지만 명확한 비지니스 모델을 찾기 어려운 불모지였다.

왜 굳이 창업을 했을까. 그의 답은 명쾌했다.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일'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처럼 다가왔다.

김 대표는 한양대에서 수학을, 미국 유타대에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미국 유명 반도체 회사를 다녔다. 9·11테러가 터져 고민 끝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학군장교(ROTC) 동기 추천으로 보험업계에 발을 들였다. 지금은 한화그룹의 품에 안긴 국내 대형 GA업체인 '피플라이프'에서 PB본부장으로 활약했다.

100여명의 설계사들을 관리했다.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자산관리 컨설팅을 했다. 어느 순간 아예 부동산에 푹 빠져버렸다. 전문 컨설턴트가 되고 싶다는 마음 절반에, 재테크에 대한 관심 절반으로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3~4년 동안 부동산 투자 고수라는 사람들은 죄다 쫓아다녔습니다. 한번에 백만원이 넘은 강좌도 있었어요. 그렇게 5000여만원을 배우는데 투자했죠. 저는 '팔랑귀'입니다. 투자 생각은 아예 접고 공부만 반복했습니다."

이른바 벽돌책을 들고다니는 생활을 하다보니 목디스크가 올 정도였다. 거듭되는 반복 학습에 지식근육이 쌓였다. 그리고 시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본격적으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장에 가보니 숫자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자주 보이더군요. 그 근거를 명확히 대고 합리적 설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리치고'다.

원래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목표였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지만 기본기마져 부족하다고 느꼈다. 2016년부터는 프로그램 개발도 배우러 다녔다. 그렇게 시스템 개발과 서버 확충 등의 단계를 밟아갔다. 길을 찾아가는 와중에 뛰어난 실력에 사업 궁합까지 맞아떨어지는 인재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저 운에만 기대 것은 아닙니다."

김 대표는 "100여명의 설계사를 관리하며 사람을 많이 만나고 대하다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이 세워져 있어서 적확한 타이밍에 최고의 인재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물론 그들은 지금도 리치고란 배를 타고 함께 항해를 하고 있다.

그렇게 프로그램을 만들고 데이터도 쌓았다. 2018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7개 시도의 부동산 시장을 망라한 부동산 책을 내놓았다. '빅데이터 부동산투자'로 시작해 이후 2021년과 2022~2023년 대전망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로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리치고는 설립 4년차 기업이다. 벌써 사업성을 인정받아 스타트업 시리즈A 단계도 밟았다. 우미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로부터 100억원이 넘는 투자를 받았다. 아직은 그가 전 직장에서 받았던 연봉보다는 턱없이 적은 보수를 받는다. 김 대표는 하지만 '불확실한 길'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굉장히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그저 '돈'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로 시장을 분석하는 것이 재밌다. 너무 좋아하는 일이고,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생긴 것에 가슴이 뛴다. 게다가 신뢰가 쌓인 동료들과도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감사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리치고의 주무기는 데이터다. 단순하게 데이터를 나열하는 수준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도록 정제된 분석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 주거용 부동산의 매매가와 전세가부터 인구변화, 신규 아파트 물량, 소득 대비 아파트 가격, 전세가율, 매매-전세 수급, 아파트 연식, 아파트 세대수, 물가 지수 등 주요 지표들을 일반인도 한눈에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췄다.

역시 금융권이 빨랐다. 현재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등 금융권은 물론 현대건설과 롯데건설 등 대형 건설사와 시행사 등에서 리치고의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및 컨설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리치고 엑스퍼트', '리치고 마스' 등 전문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일반인들도 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를 만났으니 당연히앞으로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는 "지역별로 다르지만 빠르면 올해 가을이나 연말부터 다시 하락장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늦어도 내년 초중반부터는 다시 하락할 것"이라며 "당장은 아니지만 지방은 2024~2025년, 서울과 수도권은 2025~2026년 정도 매수하기 괜찮은 시기가 오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사회적인 문제로도 커지고 있는 역전세 문제에 대해서는 전세제도 때문이 아닌 '정보의 불투명성'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표로 최근 리치고 시스템에 아파트 외에 오피스텔과 빌라 정보도 빠르게 확충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하반기에는 부동산 빅데이터 중개 프랜차이즈 사업도 구상 중이다.

김 대표는 "역전세와 전세사기 등의 문제는 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불투명성 한계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리치고 데이터를 근거로 객관적인 중개를 할 수 있도록 공인중개사들 대상으로 시스템 사용료 정도만 책정할 예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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