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창의행정 1호
지하철로 출근하고 있던 중이었다. 전날 과음으로 속이 좋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야 했다. 열차에서 내려 한 층을 올라갔다. 화장실은 개찰구 밖에 있었다. 급한 마음에 일단 요금을 지불하고 나갔다. 볼일을 보고 다시 개찰구 안으로 들어올 때 조금 전에 냈던 지하철 요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이 지하철 요금을 내야 했던 또 다른 경험들도 있다. 깜빡하는 사이에 가야 할 방향의 반대 승강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나온 적이 있다. 환승 중에 다른 생각을 하다가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 밖으로 나온 일도 있었다. 승무원을 불러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바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요금을 지불했다.
이런 경험담을 털어놓으면 공감하는 친구가 많다. 한 번쯤 비슷한 낭패를 당했다며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얼마 되지 않지만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썼다는 억울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서울시는 지난 3월과 5월 각각 14건과 12건의 창의행정 우수사례를 공개했다. 이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창의행정 1호로 지정된 '더욱 편리한 지하철 이용 환경 구축'이다. 여기엔 10분 내 재탑승할 때 무료 환승을 적용해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개찰구를 잠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승객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수도권 지하철에서 10분 안에 재탑승하는 승객은 하루 4만여 명에 달한다. 1분 안에 다시 타는 사람도 1만명이 넘는다. 승객 본인의 불가피한 사유나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 요금 면제를 당당하게 주장할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소소한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점에서 서울시가 창의행정 1호로 지정할 만하다. 시는 일단 관할 구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국가 정책도 마찬가지다. 사소하게 보여도 국민을 곤란하게 만드는 숨은 규제를 찾아 없애는 창의행정을 펼쳐야 한다. 전봇대나 모래주머니처럼 눈에 보이는 불편함을 제거하는 것보다 신발 속 돌멩이나 손톱 밑 가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어려울 수 있다. 민생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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