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뜨거운 42세 정대영 “딸에게 멋진 엄마, 멋진 선수 되고 싶어”[스경x인터뷰]

심진용 기자 2023. 6. 13. 16:5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자배구 정대영이 7일 경기 가평 GS칼텍스 배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중학교 배구선수 딸 김보민양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올해로 42세. 배구 선수 정대영(GS칼텍스)의 황혼은 여전히 뜨겁다. 전례 없는 ‘리버스 스윕’ 우승으로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고, FA 이적으로 새로운 도전에도 나섰다.

정대영은 어떻게 지금까지 기량을 유지하며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딸의 이름을 가장 먼저 꺼내곤 했다. 5살 무렵부터 배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던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 딸이 중학교 배구 선수가 됐다. 1년 만에 키가 훌쩍 자라 185㎝인 엄마와 나란히 서도 크게 차이가 없다. ‘이러다 정말 엄마와 딸이 한 코트에서 뛰는 것 아니냐’는 말도 이제는 그저 농담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2022~2023시즌을 마치고 GS칼텍스로 돌아온 정대영과 딸 김보민양(13)을 경기도 가평 GS칼텍스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기적 같던 리버스 스윕


정대영이 1999년 실업 배구 현대건설에 입단한 지 24년, V리그 출범 후 우승만 4차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지난 시즌 한국도로공사의 우승이다. 정대영의 도로공사는 지난 챔피언결정전에서 흥국생명에 0-2로 밀리다 3·4·5차전을 내리 따내며 우승했다. 정대영은 “챔피언결정전까지 왔는데 한 판도 못 따고 끝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지더라도 한번 미친 듯이 해보자는 마음으로 나섰다”고 했다. 그렇게 3차전을 이겼고, 4차전을 이겼다. 압도적인 함성으로 상대 선수들을 주눅 들게 하는 인천 원정 5차전까지 이겼다. 정대영은 “도로공사는 (경북) 김천이 홈이다 보니 평소에도 워낙 이동거리가 기니까, 그런 면에서 오히려 흥국생명보다 체력전에 유리했던 면도 있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도로공사의 우승은 ‘라스트 댄스’로 불렸다. 정대영을 비롯해 박정아, 배유나 등 주축 5명이 계약 마지막 해였다. 정대영은 “정아도 유나도 말은 안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여기서 다시 우승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FA 5명이 모두 남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 욕심이 났다”고 말했다.

기적 같은 우승으로 도로공사 9년을 마무리한 정대영은 지난달 GS칼텍스로 이적했다. 2007~2008시즌 자신의 프로 첫 우승을 함께 한 팀이다. 정대영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GS칼텍스에서 뛰다 도로공사로 이적했다.

첫 우승 때 정대영은 완전체에 가까운 선수였다. 미들블로커로 뛰면서도 날개 공격수 못지않은 공격력을 뽐냈고, 리시브는 누구보다 안정적이었다. 흥국생명을 상대로 당시 챔피언결정전에서 정대영은 4경기 평균 18.5점을 기록했다. 당시는 2점으로 계산했던 백어택을 15개나 터뜨리며 3-1 역전 우승을 이끌고, 챔프전 MVP에 올랐다. 선수로서 기량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그러나 2010년 딸 보민이를 낳았고, 서른 줄에 접어들며 신체 능력은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전례 없던 출산휴가, 그를 붙잡은 책임감


정대영은 “아기를 낳고 돌아온 뒤로 한 몇 년 동안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내가 아는 내 모습이 분명히 있는데, 그만큼은 안되더라고요. 혼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은퇴 생각도 많았어요.”

흔들리던 정대영이 마음을 고쳐먹은 건 책임감 때문이었다. GS칼텍스는 정대영의 출산 후 복귀를 기다리며 임의탈퇴 형식으로 그에게 ‘출산·육아 휴가’를 줬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정대영은 “내가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앞으로 다른 선수들은 그런 걸 받을 수가 없을 것 같더라”고 말했다. 조금씩 커가는 보민이에게 엄마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다.

여자배구 정대영이 7일 경기 가평 GS칼텍스 배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중학교 배구선수 딸 김보민양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보민이를 낳은 지 13년이 지났다. 정대영은 여전히 코트 위를 지키고 있다. 5살 때부터 배구 선수가 되겠다던 보민이는 이제 중학교 배구선수(제천중 1학년)가 됐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아직 어리니까 자연스럽게 꿈도 바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어린이집에서 장래 희망을 물을 때 보민이는 항상 ‘엄마 같은 멋진 배구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보민양은 “어릴 때부터 워낙 자주 배구를 봤고, 선수들 움직이는 게 너무 멋있어 보였다. 엄마 아빠한테 거의 매일 배구 선수를 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다”고 했다. 상대 스파이크를 받아내고, 블로킹으로 막아내는 게 특히 멋있었다고 했다. 엄마가 잘했던 플레이들이다.

보민양은 아웃사이드히터를 희망하지만, 지금은 팀 사정상 미들블로커로 뛰고 있다. 엄마와 같은 포지션이다. 보민양은 “엄마가 하는 걸 볼 때는 많이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어렵더라”고 웃었다.

정대영은 배구 선수가 하고 싶다는 딸을 말리지 않았다. 도로공사 시절 김종민 감독은 “네가 학생 때 배구를 편하게 해서 그렇다”고 농담했다.

정대영은 충북여중과 양백여상을 나왔다. 좋은 지도자들을 만났다. 정대영은 “중학교 때 2시간 이상 운동해 본 적이 없었다. 기본기만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도 오전에는 수업을 들었고, 훈련은 오후에만 했다. 새벽이나 야간 훈련도 없었다. 정대영의 은사들은 어린 선수들을 무리하게 몰아붙이는 대신 기본기를 강조했다. 딸 보민이도 그렇게 성장할 수 있을 거란 믿음 때문에 큰 고민 없이 운동을 허락했다.

지난해까지 170㎝였던 보민양은 1년 사이 6㎝나 자랐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인데 벌써 176㎝다. 키 걱정은 없겠다는 말에 정대영은 손사래를 쳤다. 배구 선수 키는 크면 클수록 좋으니까, 일단 180㎝는 빨리 넘겨야 좀 안심이 되겠다는 게 엄마의 마음이다.

중 1 배구선수 된 딸 보민이 “엄마가 하던 거 쉬워 보였는데”


정대영은 보민양이 엄마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운동하길 바란다. ‘엄마가 정대영인데 당연히 잘하겠지’라는 주위의 기대가 없지 않다. 보민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했다. 그리 빠른 출발은 아니었다. ‘엄마가 정대영’이라는 기대, 얼른 친구들만큼 배구를 해야 한다는 부담에 이제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보민양도 엄마가 하고 싶을때까지 배구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퇴는 온전히 엄마의 선택으로 남겼다.

정대영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가족회의를 열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대영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하니까 오히려 배구가 더 재밌더라”고 했다.

FA로 팀을 옮기면서 책임감은 더 커졌다. 정대영은 “새로 팀에 왔는데 1년만 하고 그만두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최소한 내후년 시즌까지는 코트 위의 정대영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베테랑들이 즐비했던 도로공사와 달리 GS칼텍스는 리그에서 가장 어린 팀이다. 정대영은 “며칠 전에 후배들하고 제 차로 밥을 먹으러 가는데, 제가 즐겨 듣는 노래를 틀었더니 아무도 모르더라”고 웃었다. 정대영은 “선후배가 아니라 직장 동료로 생각하자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가 신인이던 시절 같은 엄격한 위계질서의 틀에서 벗어나, 서로 편한 사이로 함께 하자는 얘기다.

지난 시즌 GS칼텍스는 5위에 그쳤다. 높이와 경험이 약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GS칼텍스가 12년 만의 외부 FA로 정대영을 데려온 이유다. 정대영은 “팀에 돌아온 건 당연히 성적을 내기 위해서”라며 “지난해 도로공사가 우승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올해도 흥국생명이 제일 강하다고 많이들 말씀하시지만, 그런 예상을 한번 깨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대영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배구 인생을 스코어로 비유해달라는 말에 ‘5세트 14-14’까지는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정대영은 “이젠 한 15-14까지 된 것 아니겠느냐”고 웃었다. 배구는 랠리가 이어지고, 듀스가 계속되는 한 경기가 끝나지 않는다. 정대영의 배구 인생도 마찬가지다.

여자배구 정대영이 7일 경기 가평 GS칼텍스 배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중학교 배구선수 딸 김보민양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