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끄는 꿈은 어디에서 왔나”···‘파이 이야기’ 얀 마텔

김종목 기자 2023. 6. 1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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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캐나다 수교 60주년’ 기념 초청
14일 개막하는 서울국제도서전 참석
얀 마텔이 13일 캐나다 대사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중 <파이 이야기> 등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얀 마텔이 13일 기자회견에서 “<파이 이야기>로 충분히 성공을 거둬 이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고 말했을 때 소설 한 단락이 떠올랐다. “비평가들은 당황하거나, 썰렁한 칭찬을 하는 정도였다. 또 독자들은 이 책을 무시했다. 어릿광대나 곡예사 노릇까지 불사하며 언론 홍보에 주력했지만 소용없었다.” 사실과 허구를 섞은 <파이 이야기> 도입부 ‘작가 노트’ 중 두 번째 장편의 실패를 묘사한 단락이다. 마텔은 이 노트에서 “이 책(<파이 이야기>)은 내가 한참 허기에 시달릴 때 태어났다”고 했다.

<파이 이야기>는 2002년 부커상을 받았다. 세계 누적 판매량이 1200만부가량이다. 2012년 <라이프 오브 파이>(감독 이안)로 영화화됐다. 마텔이 서울 중구 정동 캐나다대사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 중 성공을 언급한 건 글쓰기 철학과 인생 철학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성공 이후) 갈수록 실험적으로 글을 쓰는 것 같다. (성공보다는) 내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글쓰기 자체가 내 인생 철학”이라고 말했다.

‘작가 노트’ 문장을 더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난 큰 실패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미 다른 이야기를 진척시키는 중이었으므로.”

마텔은 ‘한국·캐나다 수교 60주년’ 기념 초청 작가로 한국을 찾았다. 출판사 작가정신은 방한을 기념해 <파이 이야기>와 데뷔작이자 유일한 소설집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도 냈다. 이날 기자회견은 기념행사와 홍보 자리다.

마텔은 2024년 발표할 차기작 <선 오브 노바디(Son of Nobody·가제)>에 관한 소식도 전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마텔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그냥 읽다가 뭔가 와닿는 게 있어서 쓰게 됐다. 처음에 지루하겠거니 읽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굉장히 모던한 작품”이라고 했다.

마텔은 누가 어디에서 이야기를 전하는지에 관한 ‘퍼스펙티브’를 뒤바꾸었다. “ ‘일리아드’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은 왕이나 귀족이지만 내 소설은 평민 캐릭터가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했다. 그는 “일리아드의 귀족이나 왕족이 방어권을 가졌듯이 오늘날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방어권을 누리는 세상에서 사는 게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국 사정과 문제를 외국 유명인에게 답을 구하는 질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나왔다. ‘한국 정치인이나 여론 주도자들이 책 그중에서도 픽션을 안 읽는 문제와 읽어야 할 당위’에 관한 질문에 마텔은 독서와 민주주의 관계를 꺼내 답했다.

마텔은 우선 “이걸 읽어야 한다, 저걸 읽어야 한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다. 또 고전을,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절대 하지 않는다. 다만 권력자라면 상황이 달라진다”며 이렇게 답했다.

“가장 빨리 현명해질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막중한 책임을 지닌 이들의 책을 읽는 행위, 그 장면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국가, 기업, 경찰을 이끄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생각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묻고 싶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더 당신의 꿈과 비전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봐야 합니다.”

마텔은 캐나다의 전 총리 스티븐 하퍼에게 2007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격주로 101통의 편지를 보냈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지도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일관되게 상기”하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는 <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로 묶여 나왔다. 2013년 첫 번역 출판 때 제목은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였다.

마텔은 “픽션에서 인생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며 픽션 읽기와 캐나다 백인 남성 권력자 문제를 독서 문제와 연결하기도 했다.

“중년 백인 남자들은 20대 중반쯤이면 책 특히 픽션을 더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캐나다는 바로 이 중년 백인 남성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황입니다. 픽션을 읽지 않는다면은 그 사람들은 과연 꿈을 어디서 얻는지 묻고 싶어요. 우리 사회가 어디로 향할지 비전을 가지려면 꿈을 가져야 하는데, 그 꿈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는 “대통령이든 총리든 이런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이들이 주장하는 꿈들이 저의 최악의 악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픽션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가치 있는 꿈, 그런 꿈을 위해 살아갈 꿈을 꾸기 위해서”라고 했다.

마텔은 픽션 형식으로 홀로코스트에 관해 썼다. 소설 <20세기의 셔츠>(작가정신)다. 마텔은 이 책 ‘한국어판 서문’에서 “왜 작가들은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삼아, 역사의 법칙이 아니라 예술의 법칙에 따라 홀로코스트를 묘사하지 않는 것일까? 이런 접근 방식을 포기하는 것은 픽션은 결국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라고 했다. 그는 “예술도 역사와 똑같은 진실을 추구하지만, 다른 수단을 사용한다”며 “홀로코스트를 생각하고 묘사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홀로코스트의 진실에 다가가는 새로운 안내자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홀로코스트는 언젠가 역사의 먼지 속에 사라질 것”이라고 썼다.

마텔은 14일 개막하는 서울국제도서전에 나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한다. 15일 소설가 김중혁과 대담, 17일 사인회를 진행한다. 도서전 주제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불평등, 환경, 소외에 관한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NONHUMAN’이다. 도서전은 18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sibf.or.kr)에서 확인하면 된다.

얀 마텔이 13일 캐나다 대사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중 <파이 이야기> 등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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