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군 폭격 속에서 자란 세르비아 아이, 美 농구 최정점에 서다

이영빈 기자 2023. 6. 13. 16: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덴버 너기츠 센터 니콜라 요키치 선수가 12일 NB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MVP 상을 들고 있다./AP 연합뉴스

1999년 15만명의 사상자를 낸 코소보 분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이 세르비아 작은 마을 솜보르에 퍼붓던 폭격 속에 4살 니콜라 요키치(28·세르비아)가 있었다. 어린 요키치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매일 밤을 지냈다. 요키치는 “어둠이 익숙했다.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 사람들이 울고 있던 대피소 풍경이 기억난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폐허뿐이던 동네에서 요키치가 할 수 있는 건 농구뿐이었다. 아버지 브라니슬라브는 그의 재능이 단순히 취미를 넘어선다는 걸 눈치 채고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7세에 이미 키가 210㎝에 육박한 요키치는 이미 세르비아 프로농구 리그에서 뛰었다. 미 프로농구(NBA) 덴버 너기츠는 농구 불모지 세르비아에서 자라난 아이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41번째로 지명한다. 20세에 미국으로 건너온 요키치는 서서히 리그에 뿌리를 내렸다. 신인이었던 2015-2016시즌 가끔 번뜩이는 게 전부인 평범한 선수였지만, 4년 차였던 2018-2019시즌 올 NBA 퍼스트팀(베스트5)에 선정될 만큼 급성장했다. 큰 키에도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부드러운 슛 터치에 빈 공간을 정확히 찾는 시야까지 갖췄다.

다만 요키치에게도 부족한 게 있었다. 바로 투쟁심이었다. 나서는 걸 싫어하는 요키치는 특별히 승부욕을 부리지 않았다. 수퍼스타 중 드물게 한 경기 무득점에 그친 게 더러 있을 정도였다. 요키치는 늘 “뚜렷한 목표가 없다. 그냥 하루하루 흘러가듯이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동료들을 이끄는 리더십도 발휘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규리그 땐 최우수선수(MVP)를 두 번이나 받을 만큼 뛰어났지만, 단기전인 플레이오프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13일 경기에서 덴버 너기츠 니콜라 요키치(가운데)가 마이애미 히트 선수들 수비를 뚫고 돌파하려 하고 있다. [USA투데이 연합뉴스]

그러다 올 시즌 NBA 파이널까지 올라오며 첫 우승 기회를 잡았다. 게다가 상대는 전력상 열세인 마이애미 히트. 1차전은 가볍게 승리했으나, 2차전 홈경기에서 108대111로 예상외 일격을 당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 히트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지미 버틀러(34)를 필두로 똘똘 뭉쳐 밀워키 벅스, 보스턴 셀틱스 등 강팀들을 연달아 쓰러트리는 이변을 일으켰다. 너기츠도 그 희생양이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이때부터 요키치가 달라졌다. 감정 기복이 전혀 없던 요키치가 3차전에선 슛을 놓치고는 아쉬워서 주먹을 휘두르는 등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공을 잡고 한 번 주위를 둘러봤던 지난 경기들과는 다르게 바로 림을 향해 맹렬히 돌격했다.

13일 열린 NBA 파이널 5차전이 그 정점이었다. 3승 1패 유리한 고지를 점한 너기츠는 이날 승리하면 창단 56년 만에 첫 NBA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요키치는 이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보기 드물게 작전 시간에 선수들을 불러모아 열변을 토했다. 제대로 작전을 수행하지 않는 동료는 강하게 질책했다.

맹렬하게 승리를 탐하는 요키치 덕분에 너기츠가 후반부터 추격의 고삐를 당겼다. 끌려가던 전반을 딛고 3쿼터에 역전에 성공했고,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94대89로 승리했다. 역시 선봉에는 28점 16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올린 요키치가 있었다. 승리를 확정한 요키치는 거짓말처럼 예전으로 돌아왔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동료들과 달리 무표정으로 히트 선수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13일 덴버 너기츠 감독 마이클 말론(가운데 파란 옷)이 선수 및 팬들과 함께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USA 투데이 연합뉴스]

요키치 고향 세르비아 솜보르에서는 이날 새벽 4시에 시작한 경기였는데도 거리 응원이 열렸다. 미국 농구 최정점에 선 솜보르의 아이를 지켜보며 환호가 터져나왔다. 요키치가 그 장면을 보더니 말했다. “사실 늘 걱정했었어요. 아무것도 없던 그 동네에서 저는 자랐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오래 있다 보니 그들이 나를 잊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언젠가 은퇴하면 저 아름다운 곳으로 다시 돌아갈 겁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