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휴대전화·신분증 뺏은 뒤 ‘비대면 전세대출’…나도 모르게 생긴 빚 1억

김태희·유희곤 기자 2023. 6. 13. 16: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범죄 통로로 악용…대책마련 절실
안산단원경찰서.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경기 안산에서 성명불상의 남성들이 사회초년생의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빼앗아 비대면 전세 대출을 받은 뒤 전세금을 빼앗은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간소화된 절차만 거치면 이뤄지는 ‘비대면 전세대출’ 방식을 악용해 범죄에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관련 당국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이 사건 피해자 A씨(19)로부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공갈, 공동감금 등 혐의로 B씨 등 4명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받고 수사 중이다.

B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A씨에게 돈을 요구하면서 위협한 혐의를 받는다. 또 A씨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모텔 등에 감금한 혐의도 받고 있다.

A씨에 따르면 B씨 등은 지난해 12월1일 A씨를 폭행할 것처럼 위협하며 부동산으로 끌고 갔다. 이후 일당 중 한 명인 C씨는 사촌형 행세를 하며 A씨에게 강제로 1억3500만원의 전세 계약을 맺게 했다. B씨 등은 다음날 A씨의 신분증과 계좌, 휴대전화 등을 도용해 1억원의 전세 대출 신청을 하고 행정복지센터로 끌고 가 확정일자를 받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전세 대출금이 임대인에게 송금된 것을 확인한 B씨 일당은 ‘A씨의 어머니가 허락해주지 않아 이 집에 살지 못할 것 같다’며 계약을 취소했다. 계약이 취소된 뒤 대출금 1억원은 대포통장으로 추정되는 제3자의 계좌를 통해 빠져나갔다. 하지만 1억원이라는 큰돈이 오가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A씨는 정작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A씨는 “B씨 등이 말을 듣지 않으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한 탓에 사업자 등록과 휴대전화 개통 등도 해줬다. 이로 인해 다른 사기 사건의 피의자가 되는 등 추가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순식간에 1억원이 넘는 채무가 생겼고, 이자 등으로 매달 70만원을 부담하느라 현재 학업도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비대면 전세대출은 관련 서류나 신분증, 휴대전화 등만 있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간편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이를 악용한 범죄도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지는 인터넷 은행의 대출 심사의 허점을 노려 허위 전세계약서를 작성하는 수법으로 1억원을 가로챈 일당 3명이 구속기소 되기도 했다. 수원지검에 따르면 이들은 허위 임차인 내세워 전세 계약서를 작성한 뒤 인터넷 은행에 정부 지원 ‘청년 전월세 보증금 대출’을 신청해 1억원을 편취했다. 인터넷 전문은행에서 대출신청 필요서류를 비대면 방식으로 신청받아 형식적 심사만을 거쳐 대출해 주는 제도상 약점을 이용해 범행한 것이다.

A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강남의 김태규 변호사는 “자신의 명의로 전세 대출이 이뤄지기까지 휴대전화 등을 빼앗긴 A씨는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쉽게 이뤄지는 비대면 대출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대출 방식의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비대면 본인 인증은 신분증 사본, 영상통화, 우체국 등 위탁기관을 통한 실명확인, 기존 계좌 거래, 기타 등 5가지 방법 중 2가지를 사용해야 한다”면서 “협박으로 휴대전화나 신분증을 탈취당한 상황이었다면 대면 금융거래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것으로, 비대면 금융거래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인터넷전문은행 관계자는 “소위 전세보증금 ‘작업대출’은 임대인과 임차인 명의 도용자가 공모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비대면 대출 시) 여러 절차로 본인 확인을 하지만 적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