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압박 통했나…일본, 성소수자 이해증진법 국회 통과
“성적 지향 이유로 부당한 차별 없어야”
일본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법안이 13일 중의원(하원)을 통과했다. 일본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유일하게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이 없다는 오명을 벗어나게 됐지만 법안의 한계도 지적된다.
이날 일본 중의원에서 LGBT 등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LGBT이해증진법안’이 가결돼 참의원(상원)으로 넘어갔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보수 성향 야당인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4당의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법안은 성적 지향이나 ‘젠더 아이덴티티’(성 정체성) 다양성에 관한 국민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면서,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부당한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증진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필요한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자민당은 주요 7개국(G7) 히로시마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본 내 성소수자 차별 문제가 제기될 것을 우려해 G7 개막 전날인 지난달 18일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일본은 G7 가운데 유일하게 성소수자 인권증진법이 없어 ‘인권후진국’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하지만 전통적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자민당 내 보수진영은 번번히 입법의 발목을 잡았다. 2021년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앞두고도 초당파 의원들이 성소수자 인권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지만 자민당 보수진영의 반대에 막혀 법안을 제출하지 못했다. 기시다 총리 역시 국회에서 동성혼 법제화와 관련해 “가족관이나 가치관, 사회가 바뀌는 과제가 있다”며 반대한다는 취지로 답변한 적 있다.
LGBT 법안에 부정적이었던 자민당이 입장을 바꾼 것은 일본에 주재하는 미국과 유럽 각국 대사들이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공개적으로 입법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미국·독일·영국·캐나다 등 15국 주일 대사들은 법 통과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영상 메시지를 냈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지난달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도쿄에 있는 재일 외국 공관 15곳은 LGBTQI+(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차별에 반대한다”는 글을 올렸다.
다만 자민당 내 보수파의 입김이 법안 일부에 반영된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법안 마련 과정에서 ‘성자인(性自認)’이란 표현이 가장 큰 쟁점이 됐다. 생물학적 성별이 아닌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을 근거로 성소수자로 인정할 수 있느냐 여부가 관건이었다. 2021년 초당파 의원이 낸 법안은 성자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여당은 “자인(스스로 인식한 성 정체성)으로 권리를 인정하면 화장실이나 목욕탕에서 성을 편리하게 구분한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의견을 근거로 ‘성자인’을 ‘성동일성’으로 대체했다. ‘젠더 아이덴티티’는 ‘성자인’과 ‘성동일성’ 등 어느 쪽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절충적인 표현이다. 또 법안에는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되도록 유의한다”는 구절이 포함됐는데, 이는 전통적 가족관을 중시하는 자민의 ‘보수계’ 의원의 주장을 반영한 조문으로 해석된다. 학교장이 성소수자 이해 증진을 위한 교육을 실시할 때는 “가정 및 지역 주민 그 외의 관계자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린 것도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입헌민주당 등은 “2년 전 초당파 의원들이 정리한 법안보다 후퇴한 법안”이라고 밝혔다. 이 법안은 이르면 16일 참의원을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의원들은 밝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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