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닮은꼴’ 코소보도 분쟁 격화…세르비아 민족주의 꿈틀

정의길 2023. 6. 1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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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코소보 즈베찬에서 세르비아계 주민이 시청으로 진입하려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군인들이 막아서자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빼닮은 분쟁이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반도에서도 가장 예민한 지역인 코소보 북부에서 다시 어른거리고 있다. 한때 한 나라였던 지역이 분리독립하면서 발생한 갈등의 양상이 너무 비슷해 코소보가 우크라이나처럼 유럽을 뒤흔드는 큰 갈등의 현장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갈등의 직접 원인은 4월23일 치러진 코소보 북부 4개 지자체의 시장 선거였다. 1990년대 후반 인종학살 등의 아픔을 겪고 세르비아에서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의 민족 구성은 알바니아계가 다수지만 북부 등 일부 지역에선 거꾸로 세르비아계가 인구의 90%를 넘는다. 정상적인 선거가 치러지면, 코소보 내 최대 세르비아계 정당인 ‘세르비아 리스트’가 내세우는 후보가 당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이 정당을 이끄는 알렉산다르 야블라노비치는 선거 직전인 4월20일 알빈 쿠르티 총리가 이끄는 코소보 정부가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박해하고 있다며 투표 보이콧을 선언했다. 현지 언론 <코소보 온라인> 보도를 보면, 이들은 선거를 거부하는 이유로 “21세기 유럽 땅에서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모든 인권을 빼앗았기 때문”이라며 “지난 2년 동안 우리들이 선거나 국민투표에 참여할 기회를 부정당했고 코로나19 백신도 맞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수 주민의 선거 불참 경고에도 코소보 정부는 선거를 강행했다. 예상대로 투표율은 형편없었다. 이날 선거가 치러진 4개 도시의 투표율은 레포사비치 1.06%, 북미트로비차 4.62%, 주빈포토크 5.78%, 즈베찬 2.92% 등에 그쳤다. 정상적인 선거라 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소보 정부는 이번에도 강경 태도를 취했다. 시장 취임을 강행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불과 114표(등록 유권자 6998명)를 득표한 코소보민주당의 일리르 페치 즈베찬 시장 당선자(알바니아계)는 지난달 25일 취임한 뒤 이튿날 경찰의 호위 속에 시청에 출근하려다 주민들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10명이 다쳤다.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시위는 코소보 북부 지역으로 번졌다. 그러자 세르비아 정부는 지난달 29일 군에 최고 경계령을 내리고 코소보 접경지대로 병력을 배치했다. 밀로시 부체비치 세르비아 국방장관은 이틀 뒤인 31일 국경에 배치된 군 병력을 점검한 뒤 세르비아군이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공격받으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쿠르티 총리는 “세르비아 정부가 폭력 갱들을 사주해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며 “파시스트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법치를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양쪽 사이에 신경전이 거세지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나서 700명의 병력을 증파해 코소보의 평화유지군은 4500명으로 늘어났다.

옛 유고슬라비아연방 시절 세르비아 내 자치주였던 코소보는 주민의 92%가 알바니아계이다. 하지만, 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를 ‘민족의 발원지’이자 국가와 종교의 심장으로 간주한다. 세르비아의 많은 중세 정교회 수도원이 코소보에 있다. 유럽으로 침공한 오스만 제국에 항쟁한 1389년 ‘코소보 전투’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상징이다. 이런 이유로 1990년대 초 유고연방이 해체된 뒤 세르비아 정부는 1998~1999년 분리독립을 시도하는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분리주의 세력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인종학살이 발생해 1만3천여명이 숨졌다.

결국 나토가 물리적 개입에 나섰다. 나토의 개입은 1999년 5월7일 세르비아 수도 주재 중국대사관까지 폭격할 정도로 격렬했다. 세르비아는 결국 1999년 코소보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코소보는 2008년 2월 유엔·미국·서유럽 등의 승인 아래 독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분쟁 당사국인 세르비아뿐 아니라 러시아·중국, 유럽연합(EU) 내에서도 스페인·그리스·키프로스·루마니아·슬로바키아 등 5개국은 아직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알바니아 역시 코소보를 민족적 기원지로 본다.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코소보로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이주해 무슬림으로 개종한 뒤 다수 주민이 됐다. 19세기 말부터 이 지역에서 알바니아계 주민 봉기가 일어나며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문제는 코소보 북부 등 세르비아계 주민이 다수인 지역이다. 이 지역에선 코소보 독립 이후 아슬아슬한 긴장이 이어지는 중이다. 결국 유럽연합이 중재한 2013년 4월 브뤼셀 협정을 통해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 다수 지역에선 ‘세르비아 자치단체 공동체’를 결성해 고도의 자치를 하기로 정했다. 이번에 분쟁이 벌어진, 북부의 즈베찬·주빈포토크·레포사비치 등 10개 도시가 이에 속한다. 하지만, 자치의 수준과 범위를 둘러싼 이견으로 여태까지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코소보는 브뤼셀 협정에 부합되는 지방자치단체 권력 구성에 소극적이었고,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지자체 선거 등을 거부해왔다.

지난해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슬라브족의 일원인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를 다시 자극했다. 지난해 7월 코소보 정부가 북부의 세르비아계 주민에게 세르비아에서 발급한 차량번호판 사용을 금지하자,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세르비아계 경찰 600명과 판검사들도 집단 사퇴했다. 연말에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도로를 막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11월 세르비아계 시장 4명이 집단 사퇴했다. 코소보 정부는 이 사태로 공석이 된 시장을 채우려 이번 선거를 강행했지만, 세르비아계 주민이 거부하면서 분쟁이 확대된 것이다.

코소보 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닮은꼴이다.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연방(소련)의 해체로 1991년 12월 분리독립한 뒤 러시아계가 다수인 돈바스와 크림반도 지역 내에서 갈등이 고조되며 전쟁이 터졌다. 러시아와 세르비아는 우크라이나와 코소보가 독립한 것처럼, 우크라이나와 코소보에서 슬라브계 주민이 다수인 지역도 독립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갈등이 제어되지 못하고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그해 여름 돈바스 내전을 거쳐 2022년 2월 말 전면전쟁으로 확대됐다. 이런 갈등을 막기 위해 2014년·2015년 러시아계가 다수인 돈바스 지역에서 고도의 자치를 허용하는 민스크 협정이 두차례 맺어졌으나, 지켜지지 않고 전쟁으로 비화됐다. 코소보 분쟁도 세르비아계 다수 지역의 고도 자치를 규정한 브뤼셀 협정이 실현되지 못하며 갈등이 무력충돌로 번지고 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오르면, 세르비아는 20세기 초 범슬라브주의의 핵심으로 발칸 지역에서 범게르만주의와 대립하다가 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를 당겼다. 러시아는 옛 유고연방 해체 이후 세르비아를 지속적으로 지지했다.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2021년 104번이나 연합군사훈련을 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말 번호판 문제로 북부 지역의 갈등이 커지자, 쿠르티 총리는 “러시아가 세르비아군을 통해 전쟁 도발 행위를 발칸반도로 확대할 수 있다는 게 서방 국가들이 우려하는 바”라고 말했다.

유럽에 또 다른 ‘우크라이나형 갈등’이 본격화되자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은 코소보를 강하게 압박하며 새 선거 실시를 종용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일 코소보가 “긴장을 불필요하게 급격히 고조시켰다”며 “우리는 최근 행동들에 대한 우려를 명백히 했고, 이를 쿠르티 총리 등을 포함한 관계자들에게 직접 말했다”고 말했다. 1일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에서 열린 제2회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코소보에 새로운 선거 실시를 압박했다. 쿠르티 총리는 서방의 질책이 “해롭다”면서도 2일 새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한발 물러났다. 영국 <가디언>은 4일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세르비아의 폭력과 위협 앞에서 여전히 자신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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