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토종 금강초롱꽃은 왜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가 됐나

이병철 기자 2023. 6.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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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지배·피지배 41개국 생태자료 분석
생태계 다양성은 피지배국이 높지만, 연구 자료는 대부분 지배국이 보유
한국도 과거 연구 자료 대부분 해외에 있어
“식민시대 끝난지 반세기, 여전히 생태계에 영향 미쳐”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광덕산에서 촬영된 국내 자생종 '금강초롱꽃'. 한국의 고산지대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종이지만, 일제시대에 연구된 탓에 학명은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로 지어졌다. 최근 식민 지배가 각국의 생태계와 식물 생태계와 연구 자료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조선DB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를 겪었다. 이 기간에 일본의 폭정으로 어려움을 겪은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일본의 무분별한 사냥으로 호랑이, 표범 같은 국내에 자생하던 동물들이 멸종돼 사라졌다. 하지만 이 같은 식민 지배가 동·식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그동안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대니얼 박 미국 퍼듀대 생명과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12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인간행동학’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 지배를 한 국가와 지배를 받은 국가의 식물 다양성이 8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차이가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40개국 연구진과 공동 연구로 이뤄진 이번 연구에서는 식민 지배가 그 나라의 식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수치화했다.

연구진은 전 세계 식물 종(種) 정보를 공유하는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GBIF)의 데이터베이스에서 8500만종 이상의 표본 기록을 분석하고 39개국의 식물 표본 관리 기관 92곳을 조사했다. 연구는 한국, 케냐, 콜롬비아처럼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와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처럼 식민 지배를 한 국가로 나눠 이뤄졌다.

조사 결과 식민 지배를 한 국가는 전 세계 식물 표본의 70%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에서는 자생종의 50%가 채 되지 않는 표본을 갖고 있었다. 반면 실제 자연 생태계가 가진 다양성은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에서 훨씬 큰 것으로 조사됐다. 식민 지배 여부에 따라 실제 생태계와 표본 사이의 차이가 크다는 의미다.

대니얼 박 교수는 “식물의 이동은 식민지 시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당시의 영향으로 현재 식물 생태계는 심각한 불균형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불균형이 식민지 시대에 이뤄진 생물자원 착취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천연자원 연구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식민 지배를 한 국가가 이전에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식물 자원의 개발과 특허를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식민 역사를 겪은 국가에서는 더 풍부한 자연 생태계를 갖고 있지만 당시에 대형 농업을 위해 도입된 작물 외에는 제대로 연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식민지가 사라진 시대의 그림자 식민주의’로 비유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도 과거 식물 분류학 자료는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장진호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1945년 이전 국내의 식물 다양성을 연구하면서 영국에서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국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연구 데이터가 부족한 탓이었다.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북한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에서 채집한 식물 표본이 정리돼 있다.

장 교수는 “1948년 이후 한반도를 아우르는 생물다양성 연구는 중국·러시아·일본의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며 “특히 일본 도쿄대, 자연사박물관이 많은 자료를 갖고 있지만 국내 과거 자료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 연구에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부족한 연구자료에 비해 실제 생물다양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식물 생태계 대부분을 차지하는 백두대간 지역에서만 2960종의 식물이 존재했다. 한국도 실제 자연 생태계에서는 식물 다양성이 풍부하지만, 식민 지배를 받은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해외에 더 많은 자료가 있다는 의미다. 생물자원보유국에 주권을 보장하는 생물다양성협약(CBD)이 1992년 채택된 이후로 자국내 다양성 연구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한국도 아직 발굴되지 않은 자생생물 발굴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니얼 박 교수는 “과거 식민 지배가 현재의 생태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며 “지구 생태계의 절반만 기록되는 현재의 연구 체계를 바꿀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전 세계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Nature Human Behavior, DOI: https://doi.org/10.1038/s41562-023-01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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