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근로감독관의 극단 선택…"꼬리자르기식 징계로 벼랑끝 몰아"

이정현 기자 2023. 6. 13.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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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근로감독관, 민원인과 송사 휘말려 괴로움 호소
동료직원들 "문제 발생하면 덮기에 급급, 자괴감 든다"
ⓒ News1 DB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고용노동부 모 지청 소속 신입 근로감독관이 최근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것과 관련, 조직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자조 섞인 비판의 목소리가 거센 것으로 확인됐다.

극단적 선택의 이유는 민원인과의 송사 문제 등으로 전해진다. 고용부 직원들은 이 과정에서 관리자급 직원들이 사안의 잘잘못을 떠나 해당 직원에 대해 선(先)징계 조치를 내리면서 그저 사태를 덮기에만 급급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악성 민원인이 아닌 조직 내 뿌리 깊이 박힌 관료주의가 한 생명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내부 비판이 상당히 거센 것으로 전해진다.

13일 고용노동부와 고용부 공무원들의 내부 커뮤니티에 따르면 노동절인 지난 5월1일 고용부 모지청 소속 근로감독관 A씨(35)가 충남 아산시 한 공영주차장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자신의 업무와 관련, 민원인이 자신은 물론 지청장과 관리과장, 감독과장, 감독팀장까지 직무유기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심적 부담에 시달렸다고 한다.

발단은 한 민원에서 시작됐다. A씨는 한 민원인의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신청 건을 접수했다. 이 과정에서 동일한 민원이 지방노동위원회와 근로개선지도과에 각각 구제신청과 해고예고수당 지급신청 건으로 같이 접수된 것을 확인하고, 지노위에서 해당 건을 처리할 것이라 판단해 사안을 종결 안내했다.

문제는 이후다. 민원인은 A씨가 임의로 사안을 종결했다고 반발했고, 재진정과 함께 A씨의 처벌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해당 지청에서는 사안을 덮기에 급급, 담당자인 A씨에게 '주의촉구' 처분을 내리는 선에서 상황을 마무리했다는 게 내부직원들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민원인은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데 그쳤다며 A씨와 소속 지청장, 관리과장, 감독과장, 감독팀장까지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을 접한 A씨는 자신 때문에 다른 상급자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주변 동료들에게 괴로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차라리 나를 중징계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직 내부에서는 A씨를 벼랑으로 몰고 간 것은 단순히 악성 민원인이 아닌 조직 내 뿌리깊이 박힌 관료주의 문화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기업에서도 팀장은 팀원을 지키려는 노력을 보이는데, 노동환경 개선의 주무부처인 고용부의 조직문화가 민간보다도 못하다는 원성이 터져 나온다.

직원들은 A씨와 민원인과의 갈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속 기관장이 이유를 불문하고 징계를 결정했다고 주장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비단 이번 건뿐만이 아니라 '악성 민원'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명확한 확인 절차 없이 소속 직원들에게 선(先)징계를 내리는 선에서 사태를 해결하려는 꼬리자르기 방식이 조직문화로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이다.

마치 '내 식구 내가 이미 때렸으니 이쯤에서 그만두시지요'하는 식의 일처리가 고착화돼있다는 설명이다.

소속 직원을 희생케하는 방식의 이런 일처리가 도리어 일부 악성 민원인의 기만 살려주고, 담당 직원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노동부 한 직원은 "같은 기관에 몸담고 있는 동료로서 자괴감이 든다"면서 "주변에도 비슷한 상황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동료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한 간부는 "당연히 직원들을 보호해야지, 민원인 얘기만 듣고 처리하는게 말이나 되는냐"며 "요즘 소위 MZ세대로 불리는 일부 젊은 직원들이 아쉬움을 직접 표출할 수는 있겠지만, 반대로 고참급들 얘기를 들어보라"고 반박했다.

이어 "문제의 본질은 악성민원인에 대한 어떤 실효적인 대응책을 만드느냐"라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본부는 물론 지방관서에서도 더욱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과정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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