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코드'는 맞춰야겠고, 법은 없고…'집회 수사' 판례만 기댄 경찰
그러나 '집회'와 '문화제' 구분 법률 없어…기준 묻는 질문에 경찰 "질문이 도발적" 버럭
'무혐의' 끝난 연세대 청소노동자 집회도 다시 심의했던 경찰…정작 文 양산 사저 집회 관리는 미온적 비판
경찰이 야간 집회, 문화제 등에 대해 엄단 방침을 내세우며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정작 수사의 법률적 근거는 모호하다.
노조와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선언한 용산 대통령실의 기조에 맞춰 경찰이 이른바 '코드 맞추기'로 무리한 수사와 경비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불법 판단 기준 묻자 "질문이 굉장히 도발적"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집회.시위는 상황과 여건에 따라 일부 제한될 수 있지만, 학문이나 예술, 종교, 의식, 친목 등의 모임은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
지난달 16일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개최한 1박 2일 집회에 경찰이 건설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체포영장을 검토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는 상황이다.
한 기자가 집회와 문화제를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 물었다. 당시 건설노조는 야간문화제 형식으로 1박 2일을 보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경찰은 당시 문화제를 집회로 판단해 수사 중이기 때문이다.
우종수 국수본부장은 "문화제를 빙자해 구호를 제창하고 집단적으로 주장을 하면, 형식은 문화제지만 실질적 내용은 집시법상의 집회이고, 미신고 집회"라며 "노동자들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표현)하면 이걸 집단의 의사표시로 본다는 판례가 있다"고 답했다.
이에 현행법에 집회와 문화제를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이 없는데 구체적 사실 관계 등에 따라 달라지는 판례를 법 집행의 요건으로 삼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법률과 판례를 두고 일부 경찰과 기자들이 논박이 이어지며 우 본부장이 '판례'를 거듭 강조하자 "판례를 제공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우 본부장이 "본인이 찾아보시라"고 응수했다.
해당 기자가 "판례에 따라 (공권력) 집행을 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 집행을 했다면, 그 부분(판례)을 제시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본인이 찾아보시라'고 말한 부분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자, 우 본부장은 "그만 하자. 질문도 굉장히 도발적이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文 사저' 집회 대응은 '미온적' 비판 받더니…결국 '尹 코드' 맞추기인가
사실 경찰은 '야간 집회' 관련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야간 집회 혹은 미신고 된 야간 집회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정작 관련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 모양새다.
CBS노컷뉴스는 서울경찰청을 상대로 최근 5년 동안(2019~2023년 4월) 야간옥외집회 실태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서울청은 "관련 통계를 별도로 추출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참고기사 : [단독]'야간집회 금지' 추진하더니…경찰, 관련 통계도 없어)
집회.시위 수사의 법률은 모호하고 자료 역시 빈약한데도 경찰이 건설노조와 민주노총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와 집회.시위, 야간문화제에 대한 단속 등에 나서는 배경은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의 코드를 맞추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국무회의에서 "1박 2일에 걸친 민노총의 대규모 집회로 인해 서울 도심이 마비됐다"며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타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까지 정당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직격했다.
바로 다음날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 당정 주요 인사들이 나서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야간집회를 금지하도록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찰의 집회 관리 이중성은 지난해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주변의 집회.시위 논란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일부 보수단체나 유튜버들이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서 확성기를 들고 거친 욕설 등을 하며 주민들과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이에 민주당 윤건영.정태호.한병도 의원은 지난해 6월 13일 "경찰의 법 집행이 미온적"이라며 경찰청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경찰은 경찰청 출입 기자들에게 '음악회 행사를 빙자해 집회.시위를 벌였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들을 제공했다. 최근 야간문화제 등에 대한 수사와 단속의 법적 근거를 강조하는 차원이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권영국 변호사는 "집회.시위는 공공의 안전을 크게 저해하지 않는 한 시간과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 역시 일관된 대법원의 판례"라며 "기본적으로 집회.시위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다. 이렇게 강도 높게 수사를 하는 것이 위헌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심지어 집회.시위의 시간을 제한한 법률은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구호 제창, 플래카드 등이 불법과 합법의 기준이라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자 하는 모든 문화제나 모임도 집회.시위가 된다는 뜻인데 모두 압수수색을 하고 입건을 시킬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노총 한상진 대변인은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방식 등은 그 권리와 모습을 꾸준히 확대하며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에 있었는데, 그 모든 과정과 맥락이 무시되고 대통령의 말과 의중에 따라 공권력이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청소노동자 집회가 공공범죄 논쟁 사안이라는 경찰
우 본부장은 "사회적 이목을 끄는 복잡한 경제·공공범죄는 추후에도 법리적 논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안은 법률적 판단을 더 많이 받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례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의 대학 내 집회가 서울청의 재심의까지 받아야 할 만큼 엄중한 사안인지는 의문이다.
앞서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지난해 3월부터 5개월간 점심 시간을 이용해 학생회관 앞에서 시급 인상과 샤워실 설치, 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는 쟁의행위를 벌였는데, 이 학교 학생 3명이 집회 소음으로 수업 방해를 받았다며 청소노동자들을 고발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이호영 박사는 "대학이라는 공간을 일괄적으로 '집회는 안 되는 공간'이라고 치환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라며 "집시법에 규정된 것들을 조금이라도 넘어가면 아무리 평화적인 집회여도 불법이기 때문에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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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구연 기자 kimgu88@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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