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 때 휴직, 그 자리에 ‘아빠 찬스’, 이러니 ‘소쿠리 투표’ 나오는 것

조선일보 2023. 6. 1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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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관위원회의를 마치고 취재진을 뒤로한 채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3.6.9/뉴스1

특혜 채용 의혹을 받는 선관위 간부 자녀가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선거 관련 공직에 계신다” “공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보며 준법정신을 배웠다” 등 부친이 선관위 직원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선관위 인사 담당자들은 이들의 지원 사실을 사전에 알았고, 면접관들은 높은 점수를 줘 합격시켰다. 자기 자녀 채용을 최종 결재한 간부도 있다. 입사 지원부터 면접, 채용 결정에 이르기까지 ‘아빠 찬스’가 작동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경력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선관위에 결원이 생긴 이유는 중요 선거가 닥칠 때마다 휴직자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20년 휴직자는 107명이었지만 대선과 지방선거 전해인 2021년에는 휴직자가 193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선관위 직원들이 큰 선거를 앞두고 대거 휴직했고, 간부들은 그 틈을 이용해 자기 자녀를 선관위에 집어넣었다. 공직을 가족끼리 대물림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이 분노했고, 선거 관리를 위해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이 선거 앞두고 대규모로 휴직했다는 사실에 또 한번 혀를 찼는데, 알고 보니 그 둘 사이에 인과관계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선관위 직원들끼리 자식들 취직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휴직하자는 공모가 있었다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선관위 조직 전체가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이러니 선관위 본연의 임무인 선거 관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지난 대선 때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옮기고 이미 기표한 용지를 유권자에게 나눠준 일까지 발생했다. 북한의 해킹 공격을 8차례 받고도 알지 못했다. 이를 지적한 국가정보원과 행정안전부의 보안 점검 권고도 거부했다. 일이 터질 때마다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도 거부했다.

선관위는 지난 60년간 어떤 견제도 받지 않으면서 1년 예산 4000억원, 직원 3000명 규모의 거대 기관이 됐다. 자기들끼리 ‘신의 직장’을 만들며 쌓아온 적폐가 지금 터지는 중이다. 도덕성, 중립성은 물론 업무 능력까지 의심받고 있다. 선거 관리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근본이다. 이번 기회에 선관위의 썩은 부위를 완전히 도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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