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보이지 않는 유산
일본 여행 중에 ‘빈 데 라 보치(Vin de la bocchi)’라는 와이너리에 다녀왔다. 부부가 단출하게 운영하는 작은 와이너리였다. 두 사람은 원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작은 아들에게 자폐 스펙트럼이 있어, 아들을 비롯해 장애인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와이너리를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와인은 한 해에 한 번만 만들면 되고 일 년 내내 팔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산 중턱의 땅을 경작하고 와인 만드는 법을 배워 와이너리를 열었다.
여기서 생산하는 와인은 부부의 아들이 그린 아름다운 와인 라벨로 유명하다. 화이트 와인은 바다 생물, 레드 와인은 동물들이다. 특이하게 라벨에 1, 2, 3 숫자가 크게 씌어 있다. 장애가 있는 아들이 나중에 와인을 헷갈리지 않고 구분하기 위해서다. 와이너리 한편 작은 가게에는 와인과 함께 지역 장애인들이 만든 작은 소품들도 판매한다. 나아가 이 부부는 이 와이너리가 더 많은 장애인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기를 꿈꾼다. 그분들이 아들에게 물려줄 것은 아들과 친구들이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이자 그걸 만들어낸 사랑과 도전 정신일 것이다.
그분들을 보면서 내가 부모님께 받은 것을 생각해봤다. “아침에 거울을 보고 한 번 씩 웃고 하루를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라는 어머니의 말은 아침마다 내가 거울을 볼 때 나를 웃게 하는 힘이다. 아버지가 큰 팔을 벌려 꽉 안아주던 순간들도 마찬가지다.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은 내 삶을 이루고 내가 삶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되었다. 지금도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가 네덜란드로 교환 학생을 떠날 때 공항에서 “아이고… 다정아. 잘 다녀와라” 하고 갑자기 엉엉 우시던 얼굴이 떠오른다. 사랑과 지지의 얼굴들이다.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고 힘을 줬던 순간들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유산은 보이지 않아도 힘들 때 내가 일어서고 힘을 얻는 터전이 된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부모와 살면서 사랑과 지지를 느끼면 좋겠다. 마음을 나눠줄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가르치고 싶다고 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내가 내 삶으로 행동으로 무언가를 물려주고 있을 것이다. 그게 응원과 지지일지 잔소리와 꾸중일지 마음이 뜨끔하다. 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日 도쿄도지사에 고이케 현 지사 3선 확실시
- 바이든, 버티기 모드 “주님이 그만두라면 사퇴”
- 인천에서 훼손된 길고양이 사체 발견…경찰, 부검 의뢰
- ‘디올백’ 목사 “쇼핑백 청탁 더 있다”더니...서류 든 행정관이었다
- 첨단장비로 패 보고, 마약커피 먹이고... 영화 ‘타짜’ 뺨친 일당
- ‘37도’ 푹푹 찌는 차 안에 세 아이 방치… 쇼핑 즐기던 엄마 잡혔다
- ‘10대 근로자 사망’ 전주페이퍼…유족과 22일 만에 장례절차 등 합의
- 청주고, 전통 명문 휘문고에 6대0 7회 강우콜드 승...청룡기 16강 진출
- 5대 은행 가계대출 나흘만에 2.2조원↑...‘빚투’ 열풍 살아나나
- 수영장 급사, 헬기 사고사... 이란 대통령, 하메네이 빼곤 대부분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