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56] “배는 고픈데 식욕은 없어 괜찮아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3. 6. 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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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다이어트 중이라는 배우에게 힘들겠다고 하니 “배는 고픈데 식욕은 없어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오묘한 답변을 했다.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식욕을 잘 다루는 자신만의 ‘마인드 세트(mind set)’를 터득한 것이지, 하여튼 부러웠다. 멋진 몸매까지는 아니더라도, 복부 비만을 조금만 줄여도 여러 건강 수치가 좋아질 수 있는데 다이어트가 쉽지 않다.

호기심에 배는 고픈데 식욕은 없을 수 있는지를 인공 지능에 질문해 봤다. 한 인공지능은 그럴 수 있다고만 하고 정확한 설명은 없었다. 다른 인공지능에 물으니 ‘저는 언어 모델로서, 대답을 도와드릴 수 없다’는 솔직한 답변이 나왔다. 논리적 알고리즘으로 답변이 어려운 질문이었던 셈이다. 여러 욕구, 감정, 그리고 생각을 움직이는 ‘마음’이란 소프트웨어는 논리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많은 ‘역설’이 마음에 존재한다. 헤어지면 보고 싶고, 집중하려 하면 잠이 온다.

‘역설적 마인드 세트’란 말이 여러 심리 영역에서 눈에 자주 뛴다. 마음에 대한 역설적 접근은 오랜 스토리를 갖고 있다. 그만큼 마음과 정면 대결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마음이 느끼는 배고픔도 강력한 생존 욕구와 연결되어 있고 채워주지 않으면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서 배고픔을 꾹 참으며 그냥 찍어 누르며 맞서 싸우기보다는 반대로 배고픔과 거리를 두어 식이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배고픔과 거리를 둘 수 있을까

‘꼬르륵 하며 배고프다고 신호가 올 때 그 배고픔의 통증을 쾌감으로 느끼려 한다’는 다이어트 노하우를 들은 적이 있다. 배고픔을 즐기다니 자학적인 듯하지만 일종의 역설적 마인드 세트라 볼 수 있다. 모두에게 적용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잘 통하는 것을 개발하면 도움이 된다. ‘배고픈데 식욕은 없다’도 일종의 역설적 사고로 볼 수 있다. 사실 배고픔과 식욕은 논리적으로 명확히 나누기 어렵다. 그런데 마음에선 둘을 분리하는 공간을 그려볼 수 있다. 배고픔이란 신호가 식이 행동을 유발하는 식욕과 곧장 연결되지 않게 둘 사이에 거리를 두고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거리를 두는 방법의 예를 든다면, 배고픔이 느껴졌을 때 불편함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나만의 활동을 개발하는 것이다. 신체 활동이나 문화 활동일 수도 있고 칼로리가 적은 야채를 먹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느끼는 배고픔은,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한 마음의 허기인 경우가 적지 않다. 운동했더니 오히려 배고픔이 줄어든 경험을 하기도 한다. 운동을 통해 배고픔과 거리도 만들어지고 심리적 스트레스도 일부 해결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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