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180도 다른 처지의 韓·中대사

이벌찬 베이징 특파원 2023. 6. 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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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싱하이밍 중국 대사를 만나기 위해 중국 대사관저를 찾은 날, 정재호 주중 한국 대사는 베이징에서 1200km 떨어진 닝샤후이족자치구에서 장위푸 주석(도지사 격)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중국 대사는 야당 대표가 집까지 찾아왔는데, 중국에서 한국 대사는 지방 관료를 만나려고 출장을 간 것이다.

양국에서 정 대사와 싱 대사가 받는 대우는 180도 다르다. 작년 8월 정 대사가 중국에 부임한 이후 만난 장관급(지방정부 당서기 포함) 이상 인사는 고작 3명이다. 작년 8월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행사 만찬장에서 왕이 당시 외교부장을 만난 것을 제외하면 중앙정부 고위급이 없다. 현직 관료가 아닌 고위급(린쑹톈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장, 왕차오 중국인민외교학회장)으로 범위를 넓혀도 5명 정도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저녁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고 있다. 2023.6.8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4월에는 중국 지린성 당서기와 예정된 만남이 일방적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자리조차 각국 대사 70명과 함께해 ‘컨베이어 벨트에 오른 듯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싱 대사는 같은 기간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부총리 등 장관급 이상을 최소 7명 만났다. 장관이나 검찰총장이 새로 임명되면 곧바로 만났고, 국회의원(차관급)들과는 심지어 한 번에 여러 명씩 봤다.

싱 대사는 최고위급들을 쉽게 접촉하며 고급 정보를 축적하지만, 정 대사는 차관급 외교부 카운터파트나 국제 단체, 다른 나라 외교관들을 만나며 귀동냥을 해야 한다.

2023년 2월 14일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만나 기념촬영하는 정재호(왼쪽) 주중대사./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양 대사가 주재국에서 받는 대우는 한국과 중국이 서로를 바라보는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국에서 반중(反中) 정서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 경제 의존도는 높고 대북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 반면 한국은 중국에서 존재감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체급이 커졌는데, 유독 중국에서만 한국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싱 대사가 한국에서 VIP 대우를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정치권 일각이 그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일과 관계를 강화하는 현 정부에 맞서 야당은 싱 대사에게 마이크를 줬다. 싱 대사의 권위를 우리 정치권이 세워준 꼴이다. 그 결과 국장급 대사가 주재국 야당 대표 앞에서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는데 분명 잘못된 것”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훈계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한중 교류와 소통 활성화를 위해서도 우리가 싱 대사를 과도하게 대우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올해 연말 한국에서 열릴 가능성이 큰 한·중·일 3국 정상 회의를 앞두고 양국 외교 라인의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에 대한 처우가 이렇게 차이 나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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