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낮췄더니… 현대차 8조·삼성 8조 국내 투자로 돌렸다

정한국 기자 2023. 6. 13.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 59억달러 본사에 배당, 전기차 공장에 투입하기로

현대차그룹은 지난 4~5월 현대차 울산 공장과 기아 화성 공장에 전기차 전용 생산 설비 등 미래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수조원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이지만 정확한 투자 재원은 밝히지 않았다. 12일 현대차그룹은 이례적으로 그 재원을 공개했다. 미국과 유럽 등에 있는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해외 법인이 갖고 있던 59억달러(약 7조8000억원)를 국내로 들여와 미래차 투자에 쓰겠다는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해외에 있는 생산 시설을 국내로 이전하는 걸 리쇼어링(reshoring)이라 한다. 현대차그룹이 이날 발표한 것은 공장과 같은 생산 시설을 국내로 옮겨 오는 게 아니라 해외 자회사에 쌓인 유보금을 국내 본사로 이전하는 ‘자본 리쇼어링’이다. 작년까지 우리 기업은 해외에서 이익을 많이 내도 국내로 현금을 들여오는 걸 주저했다. 국내 송금 과정에 내야 하는 세금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1000억달러(약 129조원) 넘는 자금이 유보금 명목으로 해외 자회사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법인세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시행되자,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삼성전자 등 국내 여러 기업이 달러를 국내로 대거 들여오고 있다.

◇현대차·삼성전자 각각 8조원 실탄 국내 송금

해외 자회사 유보금은 한국 기업이 지분 10% 이상을 가진 해외에 있는 기업이 국내로 배당하거나 현지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 회사 내부에 쌓아둔 현금이다. 한국경제연구원·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해외 유보금 규모는 1077억달러(약 138조82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2021년 글로벌 시장에서 12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작년 해외 법인에서 국내로 배당한 돈은 13억달러(약 1조6760억원)에 그쳤다. 나머지는 대부분 해외 법인에 유보금으로 쌓아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두 회사는 작년 글로벌 시장에서 약 17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 올해 8조원 가까이 해외에서 들여오기로 한 것이다. 올 1분기 현대차·기아는 사상 최대인 6조5000억원 영업이익을 낸 만큼 내년에는 올해 이상의 현금을 국내로 들여올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도 올 1분기에만 베트남·중국 등 해외 법인에서 유보금으로 쌓여 있던 현금 가운데 8조4400억원을 국내로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삼성전자 연간 배당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삼성 역시 R&D(연구·개발)와 각종 시설 투자에 이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삼성전자뿐만 아니라 국내 적잖은 기업들이 배당 형태로 해외 자회사 유보금을 국내로 들여왔거나 들여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만 해도 매달 쌓이기만 하던 해외 자회사 유보금은 지난 1월 10억6720만달러, 4월 2억4400만달러 감소했다.

해외 자회사의 국내 본사 배당은 우리나라 전체 경상수지 방어에도 도움이 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경상수지는 44억6000만달러 적자였는데, 경상수지에 포함되는 배당소득 수지가 113억3000만달러 흑자였다.

◇'이중 과세’ 없애니 현금이 국내로

‘자본 리쇼어링’이 가능해진 건 법인세법 개정 덕분이다. 이전에는 해외 자회사가 현지에서 법인세를 먼저 내고, 남은 이익의 일부를 국내 모회사로 배당해 들여올 때 이 배당금에 대해 배당소득세를 또 매겼다. 앞서 해외 자회사가 낸 법인세에 대해 일부 세액공제를 해주긴 했지만 그 규모가 작아 기업이 돈을 국내로 들여올 유인이 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중 과세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국내로 들여온 배당금의 95%를 과세 대상에 제외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전문가들은 자본 리쇼어링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고환율·고금리 때문이다. 고환율 상황에서 해외에 있는 달러를 국내로 들여와 원화로 환전하면 기업 입장에선 이익이다. 또 국내 투자 때 고금리로 은행 대출을 받지 않아도 돼 그만큼 금융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현금 ‘실탄’이 늘어나는 만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재무 건전성을 키우고 업계 변화에 맞춘 신속하고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불황으로 당분간 국내에서 소비·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큰데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리게 돼 고용 등의 부문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