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월드컵 4강 다시 갈 수 있다
개인기는 여전히 부족했다. 체력은 빨리 떨어졌다. 패스 타이밍도 종종 안 맞았다. 손발이 맞지 않을 때도 적잖았다. 그걸 투혼, 정신력, 팀워크, 급히 다진 조직력으로 메웠다. 그렇게 20세 이하(U-20)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에서 ‘무려’ 4위에 올랐다.
이번 대표 21명 중 19명이 프로다. 그런데 그들이 이번 시즌 출전한 경기 수 총합은 40경기를 약간 넘는다. 프로 경기에 뛰지 못한 선수도 10명 가까이 된다. 골맛을 본 선수는 없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뛴 선수는 배준호(대전하나·7경기), 독일 3부 이지한(프라이부르크·14경기) 정도다. 이번 월드컵에서 3골·4어시스트를 기록한 이승원(강원)은 4부에서 3경기를 뛴 게 전부다. 2골을 넣은 이영준(김천상무)이 나선 경기 수도 2부리그 3경기뿐이다. 유망주들이 프로 1부에서 뛰지 못하는 건 이들에게 정기적인 출전 기회를 주는 시스템이 부재한 탓이다. 유럽 국가들은 유망주를 전략적으로 키운다. 이들을 1부에 적극 기용하고 그게 안 되면 하부리그로 임대 보낸다. 그런데 한국은 소유하기만 할 뿐 키우지 않는다. 내가 못 써도 남들이 쓰지 못하게 하면 된다는 발상이 여전하다. 프로구단 20세 전후 선수들은 축구 명문고 출신 유망주가 아니라 방치된 연습생인 셈이다.
국가대표팀 간 경기는 11명 대 11명 싸움이 아니다. 국가 유소년 육성 시스템 간 충돌이다. 한국은 어릴 때부터 이기기 위해 조직력 위주로 훈련한다. 버티는 축구를 하기 위해 체격이 좋은 선수들을 선호한다. 한국 축구는 10대 시절에는 세계 정상급 국가와 어느 정도 겨룰 만하다. 조기교육을 통해 익힌 조직력으로 개인기로 무장한 외국 유망주들과 맞설 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세계와 격차가 벌어진다. 이유는 결국 두 가지다. 개인기와 성인 경기(Adult match) 경험 부족이다. 개인기는 17세가 넘으면 익히기 힘들다. 발재간이 좋은 재간둥이는 큰 체구를 선호하는 한국 문화 속에서 도태된다. 유망주들은 자기보다 경험이 풍부하며 기술과 노련미가 뛰어난 선배들과 정기적으로 싸워야만 성장할 수 있다. 빠른 판단, 정확한 패스 타이밍, 촘촘한 조직력, 강한 체력은 실전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요소다.
기자는 4년 차 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취재했고, 한국이 세계 4강에 오르는 걸 지켜봤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비슷한 멤버를 1년5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조련했다. 체력 중심 훈련, 장기 합숙, 강호들과 연이은 A매치, 버거운 해외 원정을 통해 키운 원시적 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4강에 오른 밑거름이었다. 한국 축구가 다시 세계 4강에 오를 수 있을까.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자는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개인기 중심으로 가르치고 유망주에게 강한 상대와 맞서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제공한다면 말이다. 그게 없이도 김은중호는 벼락치기로 4강을 이뤄내지 않았나.
이제 한국 축구계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의 노고를 “기적”이라고 떠들며 칭찬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꾸준히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걸 하지 못하고 열매만 따 먹으려는 것은 의무를 기만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태도다. 한국 축구계가 유망주에게 떳떳할 때 한국은 다시 세계 4강에 갈 수 있다.
김세훈 스포츠부 부장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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