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의사람연구] 아동·청소년 성매매를 막을 수 있을까?

2023. 6. 13.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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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성매매 비일비재 발생
유엔 ‘아동 성착취’로 용어 대체
심각성 인식 대응책 마련 등 촉구
아이 희생양 범죄 강력대응해야

참담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피해청소년이 마지막 남겨둔 진술만으로 무죄 취지로 항소한 피고인과 싸워야만 하는 일은 어쩜 재난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미 중학생 시절 불법촬영물과 성착취 피해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즉 참고인이었던 아동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가출했다. 온라인 타로상담사이트에서 만나게 된 피고인의 유인으로 상경하여 그의 거처로 생활공간을 옮겼다. 그 후 일어나게 된 일은 짐작하는 그대로, 심각한 위계·위력 성폭력에 노출되었다. 부친의 부재로 보호받을 울타리가 없던 어린 소녀를 부산에서 상경시켜 동거녀와 함께 지내게 했던 중년의 상담사 아저씨는 ‘아빠가 되어 주겠다’, ‘입양해 주겠다’란 감언이설로 소녀의 마지막 신뢰까지도 철저하게 배신하였다. 우울증이었던 동거녀가 수면제를 먹고 잠든 사이 어린 소녀를 겁탈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속으로 강간 영상을 제작했다. 피해아동이 고향으로 돌아가자 영문도 모르던 동거녀를 이용하여 어차피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던 피해아동을 다시 설득해 불러들였다. 피해아동은 약속과 달리 다시 성폭력을 가하는 피고인의 죄를 동거녀에게 알렸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아빠가 되어 주기로 했던 상담사 아저씨는 피해아동이 사실 자신을 유혹하였고, 따라서 성관계는 양자 합의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말을 믿지 않고 피고인에게 징역형을 선고하였으나 피고인은 이에 항소하였다. 항소심을 앞둔 피고인은 피해자가 보냈던 문자메시지 기록들까지 제출하며 자신과 피해 소녀는 사랑했던 관계이며 둘 간의 성관계는 동의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며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였다.

당시 피고인과 동거녀의 관계를 깨뜨렸다고 자책하던 피해자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자가 영영 사라지자 피고인은 마치 연인을 잃은 마냥 자신의 무고함을 더욱 강력하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전문가를 찾아 피해자가 남긴 모든 처참한 기록을 분석함으로써 피해자의 진술을 대신하게 하였고, 결국 피고인에게 아동성폭력으로 징역 10년을 선고하였다. 일견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하였으나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피해청소년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니 무망감이 형언하기 힘들 정도였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아동·청소년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기나 한 것인가? 최근에는 심지어 경찰관이 성매매를 하려다 체포가 되거나 신고의무자인 한 대학병원 의사가 13세 여중생 성매매를 시도한 사건도 발생하였다. 아직 중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아이들을 성매매라는 목적으로 사고파는 일이 전국 어디서나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협약을 통하여 기존에 사용되던 ‘아동 성매매’라는 용어를 ‘성매매 상황에 있는 아동 성착취’라는 용어로 대체할 것을 제안하였다. 나아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성매매 아동’이 아니라 ‘성매매로 착취된 아동’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즉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성매매가 아닌 ‘성착취’라는 용어로 대체하라는 것이다.

2007년 유럽평의회에서도 ‘아동 성착취 및 성학대에 대한 아동보호협약’이 채택되어 2010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이 협약에서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아동에 대한 성착취 및 성학대 등이 온라인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으니 아동에 대한 성학대와 성착취의 예방, 피해자를 위한 보호와 지원, 가해자에 대한 처벌, 국가적·국제적 법 집행에의 국제공조를 강력히 권고하였다.

나아가 영국에서는 2015년 중범죄법을 제정하여 ‘아동 성매매(child prostitution)’라는 용어를 모두 삭제하고 대신 ‘착취(exploitation)’와 ‘학대(abuse)’라는 용어만을 사용하게 하였다. 이는 아동은 결코 성매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취지라고 한다. 성매매에 연루된 모든 아동은 피해자이고 상호 합의 또는 아동에게 책임이 있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으로서 온 사회가 나서서 아동을 성적인 침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호주는 2019년 아동 성착취 방지법을 입법하여 아동 성착취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주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6세 미만 아동들에 대한 성매매는 오히려 온라인에서 더욱 광범위하게 번성하고 있으며 성매매 시장의 새로운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아동·청소년 성보호를 매우 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세계적인 추세에 크게 위배된 것으로 보인다.

한 나라의 범죄는 그 나라의 사회문화와 밀접히 연관성이 있다. 따라서 성규범 자체가 다른데 서구사회의 법을 그대로 베껴오는 것이 꼭 우리에게 절대적인 가치일지는 고민이 필요한 문제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최근 사이버공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첨단범죄들은, 특히 의사결정능력이 미성숙한 아동·청소년을 손쉬운 강력범죄의 타깃으로 만들고 있다. 조건만남, 마약 던지기, 나아가 미혼모들을 영아 인신매매로까지 끌어들이는 신종범죄자들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야만 하는 사명이 이 땅에도 여전히 절실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희생양 삼는 범죄들에는 강력히 대항해야 한다. 형사사법기관만이 이 일을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온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절실한 마음을 먹고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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