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보복 범죄 두려워 소송 주저… 피해자 개인정보 노출 막아야

2023. 6. 1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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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에서 가해자에게 강간살인미수로 징역 20년형이 선고된 가운데 보복 범죄 우려가 큰 경우 민사소송 시 원고의 주소 등 개인정보 공개를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에서는 원고의 개인정보 공개와 열람을 제한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법사위에서 "피고의 방어권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고 해서 보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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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22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오피스텔 1층 복도에서 발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관련해 가해 남성 A씨가 쓰러진 피해자를 발로 차고 있다. (남언호 법률사무소 빈센트 변호사 제공)
어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에서 가해자에게 강간살인미수로 징역 20년형이 선고된 가운데 보복 범죄 우려가 큰 경우 민사소송 시 원고의 주소 등 개인정보 공개를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따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소송기록을 통해 자신이 이사한 집 주소를 파악하고는 교도소에서 “출소하면 찾아가 죽이겠다”는 발언을 수시로 한 가해자에 대해 두려움을 호소해왔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주소가 유출될지 예상하지 못하고 소송을 제기한 경우이지만 처음부터 유출을 예상하고 보복이 두려워 소송을 접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접 관련된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2017년 주민등록변경 제도가 도입된 후 변경을 신청해 허가를 받은 4246명 중 성폭력이 175건, 데이트폭력이 371건에 이른다. 보복이나 또 다른 스토킹이 두려워 주민등록까지 변경하는 마당에 주소를 공개해야 하는 민사소송 제기는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법 절차는 피해자 보호에 소홀하다. 형사소송 절차는 검사와 피고인을 대립하는 두 당사자로 보기 때문에 피해자 자리가 없고, 민사소송 절차는 원고가 피해자라도 피고와 대등한 당사자로 보기 때문에 그렇다. 민사소송에서 신원을 숨기려면 신원을 숨기는 소송을 별도로 진행해 허가를 얻어야 한다. 국회에서는 원고의 개인정보 공개와 열람을 제한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법사위에서 “피고의 방어권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고 해서 보류됐다. 민사소송법도 시대의 변화에 맞게 피해자 보호라는 가치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법률관계를 위해 사람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이름과 주소가 다 필요하다. 하지만 이름이 없는 결정문이나 판결문은 성립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주소는 본인에게 송달된다는 조건하에서 달리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또 일본이나 오스트리아에선 피해자의 개인정보 열람을 제한하거나 유출을 막는 장치를 두고 있다. 법원은 법 개정 전이라도 현재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실거주 주소를 공개하지 않고도 민사소송을 진행할 방법을 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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