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솔리니 이후 이탈리아 최장수 총리’ 베를루스코니 별세
미디어 재벌 출신으로 세 차례 총리를 지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7세.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는 이날 밀라노의 산 라파엘레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베를루스코니는 약 2년 전 만성골수백혈병(CML) 진단을 받은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왔다.
이탈리아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베를루스코니는 미디어 재벌이자 총리를 세 차례나 지낸 이탈리아 정계의 거물이다. 동시에 부패 혐의와 정경유착, 언론장악, 성추문, 망언으로 악명 높은 ‘스캔들 메이커’이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는 1936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3남매 가운데 첫째로 태어났다. 부동산 개발로 성공을 거둔 후 이를 발판 삼아 미디어 재벌로 성장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신문, 백화점, 영화관, 출판사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2017년까지 프로축구팀 AC밀란 소유주이기도 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와 그의 가족들 재산은 이달 기준 70억달러(약 8조9950억원)에 달한다.
베를루스코니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1993년 이탈리아 축구팬들의 응원 구호(가자! 이탈리아)에서 이름을 따온 ‘포르차 이탈리아’를 창당한 베를루스코니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세 차례 총리를 지냈다. 무솔리니 이후 가장 오래 집권한 총리로 꼽히지만, 그가 재임하던 시절 이탈리아 경제는 청년 실업률이 치솟는 등 역성장을 거듭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가 퇴임할 때 “나라를 통째로 망친 사나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결정타가 된 것은 2011년 일명 ‘붕가붕가 파티’로 불리는 미성년자 성매수 사건이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2013년엔 탈세 혐의로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하고 6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됐다.
각종 성추문과 망언으로 악명 높은 그는 2017년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비교되는 것이 자랑스러운가’라는 질문에 “트럼프의 부인 멜라니아가 예뻐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는 “선탠을 잘한 미국 남자”,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를 ‘뚱보’라고 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추문과 부패 혐의에도 불구하고 정치생명을 이어갔다. 그는 2018년 5월 법원의 복권 판결을 받은 데 이어 2019년 5월에는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해 최고령으로 당선됐다. 이어 지난해 9월 전진이탈리아(FI) 대표로 출마해 10년 만에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복귀했다. 이후 활발한 정계 활동 의욕을 보였으나 건강 악화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테오 렌치 전 총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했고, 또 미워했다”며 “하지만 그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스포츠, 텔레비전 등 이탈리아인의 삶에 미친 막대한 영향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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