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합치고 지방선 순회교사…교육, 담 허물기[예정된 미래-작은 학교 이야기]

남지원·김나연 기자 2023. 6. 1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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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합쳐지는 학교, 순회하는 선생님

“우리 중학생들 오면 실험 진짜 능숙하게 해야 해. 알지?” 지난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일신여중·잠실여고의 이음동아리 ‘멘토링’ 시간, 정규수업을 마친 뒤 과학실에 모인 잠실여고 과학탐구실험 동아리 세리(SERI) 부원들은 실험 준비에 분주했다.

지난해 일신여중·잠실여고가 서울형 통합운영학교인 ‘이음학교’로 지정된 뒤 이날 처음으로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한자리에 모였다. 잠실여고의 과학·공학·교육 등 4개 동아리가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해 홍보하고, 일신여중 학생들에게 참가 신청을 받았다.

세리 부원들이 준비한 실험은 친환경 물병 ‘오호’ 만들기. 오호는 알긴산나트륨과 젖산칼슘 용액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얇은 막이 생긴다는 것에 착안해 만든 일종의 물주머니다. 물주머니 껍질은 먹을 수도 있고 버리더라도 생분해된다. 처음 만나는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섞이면서 어색한 침묵이 맴돈 것도 잠시, 과학실 분위기는 곧 화기애애해졌다.

고등학생들은 후배들이 직접 용액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배려하다가 생각보다 잘 녹지 않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먹을 수 있기는 한데 비린 맛이 나서 아이스티를 많이 넣어야 먹을 만하다”면서 인스턴트 아이스티 가루를 잔뜩 넣다가 한꺼번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탱글탱글한 젤리처럼 생긴 오호가 완성되자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나왔다.

농어촌 순회교사·온라인학교…학교 아닌 과목 따라 ‘헤쳐 모여 수업’
고교생이 중학생의 실험 멘토가 되어…지난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여고에서 열린 이음동아리 멘토링 수업에서 잠실여고와 일신여중 학생들이 ‘오호(친환경물병) 만들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서울형 통합학교 ‘이음학교’
일신여중·잠실여고 첫 공동교실
과학실험 하며 고교생이 멘토링
“학생 수 감소 전에 새 모델 준비”
학교 공간·진로 지도 등 공유

■ 일신여중·잠실여고의 실험

중학생들은 언니들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일신여중 1학년 안지우양(13)은 “비린 맛이 나지만 생각보다는 먹을 만했다”며 “선배는 한 살만 차이 나도 무서운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등학생 선배들이 재미있고 친절하게 실험을 이끌어줘서 크게 도움이 됐고 다음에도 이런 자리를 또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들에게는 평소 친구나 가까운 선후배들과 하던 비교과활동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보는 기회가 됐다. 세리 부장인 잠실여고 2학년 이지우양(17)은 “부원들끼리 실험을 할 때는 실험과정을 띄워놓고 알아서 하는데, 후배들과 함께 실험을 하면서 중학생 수준에 맞는 영상과 활동지 등을 제작하는 등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과학탐구학술부 시아(SIA) 부장인 잠실여고 2학년 박진서양(17)은 이날 산·염기 지시약을 활용해 꽃을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들이는 활동을 했다. 박양은 “우리끼리 실험을 할 때와는 다르게 실험이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어디서 실수가 나오는지, 어디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학교법인 서울학원이 운영하는 일신여중·잠실여고는 올해 3월 ‘이음학교’로 정식 출범했다. 학교의 명칭이 ‘일신여중·잠실여고 이음학교’로 바뀌었고 교장도 1명으로 단일화됐다. 통일성을 위해 일신여중의 명칭을 이르면 내년부터 잠실여중으로 바꾸려고 학부모 동의 절차를 밟는 중이다.

이음학교는 원래 학령인구 감소와 소규모 학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마련됐다. 학교 규모가 줄어들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이 힘들어지고 공동체 활동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인근에 있는 서로 급이 다른 학교를 통합해 운영하자는 대안이 나왔다. 주로 농산어촌 학교에서 시작해 지난해 기준 전국 112개교가 이음학교로 운영 중이다.

일신여중·잠실여고는 농산어촌 학교와 상황이 다르다. 잠실은 서울의 대표적인 아파트촌이자 학군지 중 하나이고, 이 학교들은 학생 수 감소를 걱정할 처지가 전혀 아니다. 잠실여고는 전교생이 877명, 일신여중은 416명인 큰 학교다. ‘황금돼지띠’인 2007년생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올해 잠실여고 신입생은 전년보다 되레 늘었다.

지난해 이 학교가 이음학교로 지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백강규 일신여중·잠실여고 교장에게는 전국에서 20여통의 연락이 쏟아졌다고 했다. 대부분 ‘송파구인데, 잠실인데 학생이 그렇게 없냐’는 내용이었다. 백 교장은 학생 수 감소 때문에 이음학교 지정을 신청한 것이 절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 지역은 당장 학생 수가 줄어드는 곳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앞으로는 학생 수가 감소하는 것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먼저 새로운 모델을 준비하는 것이 앞서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교 통합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연계 운영해 학습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고, 진로지도를 중학교 때부터 일찍 시작해 장기적인 진로 설계를 도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일신여중·잠실여고는 올해부터 중3 대상 고교 적응 프로그램과 기초학력이 부족한 고1 대상 중학교 과정 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교사들이 학교 급을 넘어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면 고교학점제하에서 교과목 선택 폭도 넓어진다. 학교 공간을 개선하거나 체험활동을 운영하는 데도 통합이 유리하다. 두 학교는 앞으로 증축하는 도서관을 함께 쓸 예정이고, 고등학생이 듣던 진로·진학설명회의 문도 중학생에게까지 열었다. 다음달 축제와 체육대회도 함께 연다.

아직 일신여중·잠실여고의 통합 수준은 낮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여전히 중학교와 고등학교 양쪽에서 각각 운영된다. 중학교 45분, 고등학교 50분인 수업시간도 통일되지 않아 교사 교류나 방과후활동 일정 맞추기도 까다롭다. 통합학교가 됐지만 일신여중 학생이 잠실여고에 진학하려면 똑같이 추첨을 거쳐야 한다. 통합학교가 늘어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더 벽을 허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 교장은 “3개월가량 이음학교를 운영해보니 교육청의 제도적 뒷받침, 단위학교 운영의 자율성 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바리바리스타’ 별명 순회교사 지난달 16일 경기도교육청 여주지원청 소속 김다운 교사가 본인의 가방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 내 고정석 없이 여러 학교 수업자료를 들고 이동해야 하는 김 교사에게 학생들은 ‘바리바리스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김나연 기자
여러 학교 다니는 순회교사 제도
학점제 앞두고 학생 선택권 보장
농어촌 소규모 학교 ‘공백’ 보완
교사 “자주 못 만나 지도에 한계”

■ 고교학점제 대비 순회교사

학생이 줄어들고 학교 규모가 줄어들면 앞으로 더 필요해질 제도들이 이미 전국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소수 학생들의 선택권’이 중요해지면서 교사가 여러 학교를 돌며 수업을 하고, 아예 온라인 수업만 하는 학교가 문을 열기도 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고교학점제의 취지인데, 실제로는 학교 규모가 작거나 교사가 부족해서 원하는 과목이 모두 개설되지는 않는다. 특히 농산어촌 지역의 학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기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 교육부가 2019년 내놓은 방안이 교과순회전담교사제다. 이들은 교육지원청이나 거점학교 소속으로 여러 학교를 순회하며 교과수업만을 맡는다. 정규교사가 부족하고 기간제 교사나 강사도 구하기 어려운 농산어촌 학교나 소규모 학교에서 순회교사제를 활용하면 다양한 과목을 가르칠 수 있다. 해당 과목을 전공한 교사가 수업을 담당하게 돼 수업의 질이 확보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경기도교육청 여주교육지원청 소속으로 3개 학교를 돌며 정보 교과를 가르치는 류지선 교사는 지난달 16일 기자와 만나 “제 과목 같은 경우 개발자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진로에 대해 물어볼 곳이 없었는데 이제 질문할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순회교사가 학교에 상주하는 선생님들처럼 아이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거나 맞춤 지도를 하기가 어렵다. 경기 여주의 2개 고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김다운 교사는 “아이들을 일주일에 이틀밖에 못 만나니까 업무시간 외에 카카오톡으로 질문을 받아주기도 하는데, 그래도 질문을 하기 어려우니 인터넷강의 등으로 듣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가끔씩만 학교에 들르는 순회교사를 학생들이 ‘선생님’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류 교사는 “실제로 저한테 ‘선생님, 선생님 아니잖아요’라고 한 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김 교사는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학생들에게서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였는데, 선생님이 아니라 수업만 하는 강사를 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소규모 학교에 교사를 많이 배치하고 학교들 간 교사 순회를 하면서 교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다수 순회교사들이 발령 후 출퇴근을 위해 자동차를 구입했다고 말할 정도로 이동의 부담이 크고, 다른 교사들과 달리 방학이 없는 등 근무여건도 좋지 않다. 올 초 경기교육연구원은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한 교과순회전담교사제 운영현황 및 실태 분석’ 보고서에서 “효율적인 순회교사 배치기준을 마련하고 학습휴가나 유연근무제 등으로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수업 중인 온라인학교 경남온라인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법과정치 과목 수업을 하고 있다. 경남온라인학교 제공
대구·인천 등 4곳선 온라인학교
소속 학생 없지만 교실·교사 갖춰
스페인어·세계사·물리Ⅱ 등 수업
“수업 몰입도 높고 채팅으로 소통”

■ 학생 원하는 과목 개설 ‘온라인학교’

올해 대구·인천·광주·경남에는 ‘공립 온라인학교’가 문을 열었다. 온라인학교는 소속 학생은 없지만 교실과 교사를 갖추고, 고등학생들의 정규 수업 시간에 온라인으로 정규 과목을 가르친다. 고등학생이 다니는 학교에 원하는 과목이 없으면 학교장 승인을 받아 온라인학교에서 해당 과목을 이수할 수 있고, 개별 고교가 온라인학교에 과목 개설을 의뢰할 수도 있다.

허성백 경남온라인학교 교감은 “예를 들어 제2외국어의 경우 대부분의 고등학교들은 수요가 많은 일본어·중국어 과목만 듣는 경우가 많다”며 “온라인학교에 참여하는 고등학교들이 제2외국어 수업 시간을 특정 요일, 특정 시간으로 맞추고, 스페인어를 수강하고 싶은 학생들은 그 시간에 컴퓨터실에서 온라인으로 스페인어 수업을 듣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경남온라인학교는 참여 학교 학생들로부터 수요조사를 해 학생들이 덜 선택하는 편인 물리Ⅱ, 스페인어, 세계사, 간호의 기초, 기업과 경영 등의 과목을 개설했다.

온라인학교는 고교학점제를 겨냥해 만들어졌는데 앞으로 도서·벽지 학교가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호주와 미국, 캐나다 등 국토가 넓은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중등교육 단계에서 원격수업이 보편화돼 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를 거친 한국 교사와 학생들에게도 온라인학교는 더 이상 낯선 방식이 아니다. 강좌별로 단체 채팅방을 개설해 담당교사와 학생이 수시로 소통하기도 한다.

허 교감은 “온라인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집중도·몰입도가 높고, 수업시간에 동영상 등 다양한 자료가 제공돼 오히려 오프라인 수업보다 밀도가 있고 질이 높다는 반응도 있다”고 말했다.

남지원·김나연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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