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값싼 도쿄, 비싼 서울

강경희 논설위원 2023. 6. 1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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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값이 싸지면서 일본에 놀러가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이달 들어 10일까지 국내 항공사의 인천-나리타 노선을 이용한 사람이 약 9만명으로 집계됐다. 올 1월보다 35%나 늘었다. 8일 기준 원/엔 환율은 100엔당 928.63원으로 7년 7개월 만에 가장 낮다.

▶유튜브에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일본 곳곳을 여행 다니며 띄운 ‘먹방 투어’ 동영상이 넘쳐난다. 일본 여행을 가면 주머니 가벼운 젊은이들도 점심 값이 저렴하다고 느낄 정도로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일본 직장인의 평균 점심 값은 6400원. 우리나라 유명 냉면집의 냉면 반 그릇 값도 안 되는 가격이다. 한국에서 골프 치느니 항공료 포함해도 일본 가서 골프 치고 오는 게 훨씬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연간 7억개가 팔리는 일본의 국민 과자 우마이봉이 지난해 제품 출시 43년 만에 가격을 20% 올린 게 큰 뉴스였다. 말이 20%지, 10엔짜리를 2엔(20원) 올려 12엔이 됐을 뿐이다. 몇 년 전 일본 빙과 업체 아카기유업에서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 100여 명이 도열한 가운데 소비자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광고 영상을 띄웠다. 한국 같으면 갑질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을 때나 올리는 영상인데, 25년 만에 아이스크림 가격을 개당 60엔에서 70엔으로 올리면서 대국민 사과 영상을 띄웠다. 1997년 일본인 월급을 100이라고 할 때 2020년은 90 수준이다. ‘잃어버린 30년’의 경기 침체로 월급이 뒷걸음질치니 일본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1엔이라도 더 싼 제품을 내놓으며 가격 경쟁을 벌이느라 원가절감의 고수들이 됐다.

▶실제로 서울이 도쿄보다 비싼 도시가 됐다. 국제 인력관리업체 ECA인터내셔널이 207개 도시의 생활비를 조사했더니 서울이 9위, 도쿄가 10위였다. 세계 주요 도시 물가를 비교하는 맥도널드 빅맥 지수에서 올해 일본의 빅맥 가격은 3.15달러로, 55국 중 43위 수준이다. 가장 비싼 스위스 7.26달러의 반값도 안 되고, 아시아에서 한국(3.97달러), 태국(3.9달러), 중국(3.54달러)보다 낮다.

▶일본은 극심한 디플레이션(물가하락)에서 벗어나려고 전 세계가 금리를 올리는 동안에도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 엔화 가치가 급락했다. 공격적인 돈 풀기로 경기를 띄우는 ‘엔저론자’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10년 만에 물러나고 경제학자 출신인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일본은행 총재로 부임하면서 지금의 엔저 현상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환율 효과가 사라져도 일본보다 월등하게 비싸진 터무니 없는 물가로는 외국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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