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마오른 `비은행 감독권`

강길홍 2023. 6. 1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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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한국은행 제공

금융회사의 검사·감독권을 둘러싼 통화·금융당국 간 '밥그릇 싸움'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창용(사진)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서울 중구 한은 본점에서 열린 창립 제73주년 기념식에서 "비은행 금융기관의 수신 비중이 2000년대 들어 이미 은행을 넘어섰다"며 "은행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국민경제 전체의 금융안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이 없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면서 "감독기관과의 정책공조를 더욱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제도개선을 통해서라도 금융안정 목표 달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이같은 발언을 두고 비은행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겠다는 의지를 재차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총재는 지난해 4월 인사청문회에서도 "금융불안 요인을 적기에 포착하기 위해서는 자료제출 및 공동검사 요구대상 기관이 비은행금융기관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 취임 이전에도 한은은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 권한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1998년 통합 금융감독기구가 설립되면서 은행에 대한 감독 권한이 금융감독원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7년에는 한은과 금감원이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의 중재로 한은과 금감원이 공동 검사 업무협약(MOU)를 체결하면서 갈등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후로도 한은은 은행에 대한 단독검사권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2011년 한은법 개정을 통해 마침내 공동검사권을 갖게 됐다. 공동검사권이지만 금감원이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효력은 단독검사권과 유사하다.

한은이 검사권을 갖게 된 것은 설립 목적에 물가안정에 더해 금융안정 기능이 추가된 영향도 크다. 다만 한은이 공동검사를 요구할 수 있는 대상기관은 은행 및 은행지주회사로 한정됐다. 비은행에 대해서는 자료 제출만 요구할 수 있다. 이마저도 일정 규모 이상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이 총재의 이번 발언은 비은행에 대한 감독권 강화를 위해 다시 한번 제도개선을 요구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를 겪으면서 금융안정을 위한 중앙은행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은과 금감원의 갈등이 다시 한번 수면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한은과 금감원 모두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 SVB 은행 파산 사태에서 드러난 '디지털 뱅크런'은 은행보다는 비은행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에 따라 감독기관과의 정책공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고 당장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금도 한은과의 공동검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면서 "한은에서도 비은행 부문이 커지고 있는 만큼 좀 더 들여다보겠다는 것이지 직접 감독권을 갖겠다는 입장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가지고 있는 기준금리 조정 기능만으로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두가지 정책목표를 모두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특히 금융시장에서 비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비은행에 대한 검사권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비은행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할지는 논란이 예상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비은행 중에서도 예금수취기관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이 감독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면서 "예금수취기관 중에서도 새마을금고는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도록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한은의 금리 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 한은을 자극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해 한은이 연이어 기준금리를 인상했음에도 이 원장이 시중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시장금리가 오히려 낮아지는 양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하자마자 금감원이 은행들을 압박해 오히려 시장금리가 내려가기도 했다"며 "한은의 통화정책 매커니즘을 금감원이 은행에 대한 감독 권한을 이용해 무력화시킨 것"이라고 말했다.강길홍기자 sliz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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