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탄압하는 정권의 운명

한겨레 2023. 6. 1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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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지난달 31일 전남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을 경찰이 제압하고 있다. 경찰은 저항하는 김 사무처장을 길이 1m 플라스틱 진압봉으로 1분여간 내리쳤다. 한국노총 동영상 갈무리

[숨&결]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계급의 운명은 사회의 필요로 인해 결정된다. 사회의 운명이 계급의 필요로 인해 결정되는 것보다 훨씬 더 결정적으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 나오는 말이다. 2차 세계대전 뒤 자본주의의 황금기에는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이 거의 없었다.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가 구매력을 높여 대량생산 시기 기업의 이윤에 도움이 되는 선순환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사회의 필요에 착근된 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로 후퇴하고 세계화로 자국 노동자의 구매력이 주는 이득이 줄어들었을 때, 영미권에서는 두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가 광부노조 파업에,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항공관제사노조 파업에 맞서 승리한 것이다.

대처 총리는 운이 좋았다. 무려 356일간의 채굴장 폐쇄로 영국은 치안유지, 석탄과 석유 수입 등으로 15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지만, 때마침 북해 유전에서 석유 채굴이 본격화돼 피해를 최소화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인기가 좋았다. 항공관제사노조는 공공부문 노조였음에도 작은 정부, 조세 반대를 외치며 출마한 당시 레이건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인 미국 노총의 떨떠름한 지원밖에 받지 못했으며, 파업 이유를 왜곡하는 언론의 공격에 쉽게 무너져내렸다. 영국과 미국 모두 이들 노조를 무너뜨린 뒤 민영화를 포함한 신자유주의의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도 그럴까? 이 두 패권 국가가 주도한 신자유주의는 심각한 비용을 유발한다. 우리에게는 실패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성공’으로 억지로 포장할 수 있었던 북해 원유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인기도 그다지 좋지 않다. 그 무엇보다도, 한물간 신자유주의로는 코로나19 이후 급변하는 경제환경과 4차 산업혁명이 유발하는 고용과 복지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제대로 감당할 수 없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노조에 대한 반감을 혐오로 증폭시켜 자신감이 충만했던 탓인지, 아니면 총선을 앞두고 낮은 지지율로 초조감이 폭발했던 것인지, 이번에는 담론의 차원이 아니라 경찰의 진압봉이라는 실체를 가진 권력의 도구로 노조를 유혈 제압하였다. 아연실색하며 바라보았던 그 장면은 그러나 그때까지 정권에 유리했던 노동 탄압이 정권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시작한 의미 있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광부노조와 항공관제사노조의 공통점은 산별 노조가 아닌 초기 산업화국가에서 흔한 직종별 노조라는 점이다. 소속 조합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고립되기 쉽다. 그런데, 현 정권은 조합원 총수가 250만명에 육박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모두 적대시하고 있다. 폭력은 정당한 것이든 아니든 두려움을 유발한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우월한 주체에 드리워진 어두운 ‘학폭’의 그림자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과잉 진압은 양대 노총의 공조를 두텁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집회와 시위가 유일한 저항의 수단인 더 힘없는 노동자와 시민을 공포감으로 단결시키고 있다.

왜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섰던 미국이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노동조합에 더 가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 바로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결사의 자유가 제한되어 가진 자의 재산권이 노동자가 온전한 신체를 유지할 권리보다 훨씬 더 우선시되는 사회를 필요로 할까, 아니면, 노조법 2·3조의 개정을 통해 단체교섭과 행동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고, 최저임금과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를 필요로 할까. 혐오는 생존에 위협이 되는 물질과 대상을 만났을 때 느끼게 되는 적대적 감정이다. 두려움과 공포가 잠시 사회를 위축시킬지라도, 그런 감정들이 분노를 거쳐 대안을 제공하지 못하는 정권에 대한 혐오로 바뀌는 것은 일순간이다. 즉, ‘이 정권의 운명은 사회의 필요로 인해 결정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운명이 정권의 필요로 인해 결정되는 것보다 훨씬 더 결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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