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과 인조의 리더십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한겨레 2023. 6. 12. 19:1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사실은 아닐 테지만, '혼수 장만', '집 장만'할 때의 '장만'이 사람 이름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광해군과 인조 때 조정의 중추로 활약했던 장만(1566~1629)은 조선의 국방 대책을 장만하고 추진했던 인물이다.

그때 장만은 강화도에 없었다.

그때 장만이 인조에게 청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만의 초상. 경기도박물관 누리집

[왜냐면] 이경수 | 강화도 주민

사실은 아닐 테지만, ‘혼수 장만’, ‘집 장만’할 때의 ‘장만’이 사람 이름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광해군과 인조 때 조정의 중추로 활약했던 장만(1566~1629)은 조선의 국방 대책을 장만하고 추진했던 인물이다. 광해군은 후금에 대한 대응 전략을 그에게 물어 결정하곤 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에 묵직한 영향을 준 이가 바로 장만이다.

인조반정에 가담하지 않았으나 그의 능력을 높이 산 인조도 귀하게 썼다. 장만이 이괄의 난을 진압한 뒤 더욱 신망했다. 정묘호란(1627)이 터지자, 인조와 조정은 강화도로 피란했다. 그때 장만은 강화도에 없었다. 후금군을 막는 총사령관이 되어 뭍에서 분투했다.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전투를 벌인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에서 전쟁을 종결하는 데 기여했다. 정묘호란이 끝나자 신하들은 후금군을 격퇴하지 못한 장만을 처벌하라고 외쳤다. 자기들은 안전한 강화도에 있었으면서, 육지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후금군에 맞섰던 장만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빗발치는 처벌 요구를 인조는 계속 거부했다.

그때 장만이 인조에게 청했다. 자신을 귀양 보내달라고.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귀양 갔다. 왜 스스로 유배형을 청했을까. 자기 부하 장수들을 지키려고 그런 것이다. ‘어차피 조정은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내가 안 가면 내 부하들이 다치게 될 것이다, 그네들을 보호하려면 내가 벌을 받아야 한다.’ 장만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장만이 세상을 떠나자, 최명길이 그의 일생을 정리했다.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오래도록 병권을 잡고 있어, 나라의 무인들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다가 일이 이뤄지면 공을 그 사람에게 돌리고, 일이 실패하면 그 허물을 자신이 덮어썼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에게 쓰이는 것을 즐거워했다.’ 일이 이뤄지면 공을 그 사람에게 돌리고, 일이 실패하면 그 허물을 자신이 덮어썼다! 참으로 아름다운 지도자상이다.

직장에서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정말 짜증 나는 상사를 만나면 인생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몸으로 해야 할 일을 입으로 하는 상사, 일은 아랫사람에게 미루고 공은 독차지하려는 상사, 뭔가 잘못되면 아랫사람에게 덮어씌우고 자신은 쏙 빠져나가는 상사, 자신이 해결해 줘야 할 곤란한 일 앞에서 “나는 모르는 거로 할게. 서로 잘 상의해서 해” 그러고 내빼는 상사. 싫다.

작금의 정치판을 보고 있자니, 서글프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남 탓만 하고 자신만 쏙 빠져나가려는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가 반복된다. 그래서 자꾸 장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가 죽고 9년 뒤, 병자호란.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의 굴욕’을 마치고 궁궐로 돌아가는 인조. 청나라로 끌려가던 수많은 백성이 임금을 보고 외쳤다.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吾君, 吾君, 捨我而去乎)” 풀이하면 이런 말이다.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그냥 ‘임금’이라 하지 않고 ‘우리 임금’이라고 했다. 우리 임금님은 백성들의 절규를 못 본 척, 못 들은 척, 그냥 갔다. 버림받은 백성들은 그렇게 청나라로 끌려갔다. “백성들아, 미안하다.” 이 한마디라도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늘에서 장만도 절규했을 것이다.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