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서희의 당당함, 제1야당의 굴욕

2023. 6. 1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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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서기 993년 고려 성종 12년 10월, 요(거란)의 동경유수 소손녕은 고려에 사신 파견을 요청했다. 양국이 안융진(평안남도 문덕군 신리)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려에 항복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당시 고려 조정에선 자청해서 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사신으로 가서 목이 베여 죽음을 당할 지, 살아서 돌아올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던 탓이다. 중군사 서희가 홀로 나섰다. 서희는 "신이 비록 영민하진 않지만, 어찌 감히 분부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라고 했다. 왕은 강 어귀까지 나와 두 손을 꼭 잡고 그를 위로하고 보냈다.

서희는 국서(國書)를 들고 소손녕의 군영으로 향했다. 이때부터 소손녕과 서희의 기싸움이 시작됐다. 서희가 통역관에게 상견례 절차를 묻자, 소손녕은 "내가 큰 조정의 귀인이니, 네가 마땅히 뜰에서 절하라"고 했다. 요가 고려보다 국력이 강하기 때문에, 신하로서 왕에게 절을 하는 예를 갖추라는 의미다.

서희는 소손녕에게 굽힐 생각이 없었다. 서희는 "신하가 군주에게 아래에서 절을 올리는 것은 예의지만, 두 나라의 대신이 서로 만나는데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후 통역관을 통해 절충을 모색했지만, 소손녕은 요지부동이었다.

서희는 소손녕의 무례한 태도에 단단히 화가 났고, 관사에 드러누운 채 며칠 동안 나오질 않았다. 예상치 못한 서희의 태도에 소손녕은 당황했다. 앞서 발해까지 멸망시키고 동북아시아의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거란 앞에서 당당하게 맞선 사신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배후에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소손녕은 한발짝 물러섰다. 소손녕은 통역관을 통해 사신으로서 서로가 대등한 예를 갖추겠다고 제안했고, 서희는 이에 응답했다. 서희와 소손녕은 만나 뜰에서 서로 맞절을 한 뒤, 마루로 올라가 예법에 맞게 동서로 마주 앉았다. 한참을 기싸움을 벌여서 인지, 서로는 계속 예의를 지키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소손녕은 그전처럼 고려에게 무분별하게 항복을 요구하지 않았고, 서희도 차분하게 설득하면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대화를 마친 이후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소손녕은 서희를 위해 연회를 열었고, 1주일 후 서희가 돌아갈 즈음엔 낙타 10마리, 말 100필, 양 1000마리, 비단 500필을 선물로 줬다.

결과적으로 고려가 거둔 외교적 성과도 컸다. 서희의 외교술 덕분에 고려는 거란과 더 이상 소모적인 전쟁을 치르지 않고 고토(故土, 옛 영토)를 수복하는 실익을 얻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일 성북구 중국 대사관전에서 싱하이밍 중국대사와 2시간가량 만찬을 했다. 한일·한미 관계에 집중하는 윤석열 정부와 차별화를 꾀하며 경색된 한중 관계를 복원한다는 취지였으나, 싱 대사는 시작과 동시에 사전에 준비한 A4 5장 분량의 원고를 꺼내 15분 동안 읽으며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비난했다. 싱 대사는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는데,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 확대는 탈중국화 시도를 추진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중국 대사가 한국 제1야당 대표 앞에서 훈계하듯이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판하고 "후회"를 거론하면서 사실상 위협한 것이다. 대사가 주재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외교적 결례로 오만방자한 형태다. 자칫 내정간섭으로도 비칠 수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대표의 태도였다. 그가 싱 대사의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다. 이 대표는 싱 대사의 노골적인 한국 정부 비판에도 "한·중 국민의 신뢰가 위험에 처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국가 의전서열 8위인 제1야당 대표가 외교부 국장급에 불과한 인사의 망발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언제 다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당당한 기개를 보이던 서희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민주당은 이를 유튜브로 생중계해줬으니 중국의 내정간섭에 이용당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이 대표는 한국 외교사에서 '굴욕의 역사' 한페이지를 남겼다. 훗날 후손들은 이를 어떻게 판단할까. 누군가가 다시 서희의 외교협상과 비교하며 비판의 도마 위에 올리지 않을까. saehee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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