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백지수표에 굴복… `반도체 영웅`서 산업스파이로[도 넘은 반도체 기술유출]

박정일 2023. 6. 1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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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청두시에 4600억대 지원 받고
삼성·하이닉스 퇴직자 TF팀 구성
연봉 2배·자녀 이주비 지원 등
전문 포섭행위로 200명 인재유출

"중국은 한국의 반도체 핵심기술자에게 거의 백지수표에 가까운 금액을 제시하죠. 아마 핵심 브로커는 1인당 100억원 이상을 받았을 겁니다."

중국 사정에 정통한 익명의 관계자는 "중국이 7, 8년전부터 반도체 굴기를 대대적으로 펼칠 때부터 한국의 반도체 핵심 인력을 스카웃하느라고 혈안이 돼왔다"며 심각한 산업 스파이 실태를 털어놓았다.

중국 관련 기관이나 기업은 포섭한 한국인 출신 핵심 브로커를 통해 연봉의 2~6배를 제시하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서 퇴직한 차·부장급을 10∼20명씩 팀으로 엮어 중국으로 집단으로 데려갔다고 그는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중국의 정부나 기업 관계자가 수십∼수백명씩 방한, 포섭활동을 벌여도 우리 관계 당국이 사건 추적에 미온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분위기를 틈타 중국의 산업 스파이들이 한국과 홍콩,동남아 등에서 스카웃 대상 국내 산업인력들을 면접하고 다니며 활개를 쳤다고 기업들은 전했다.

중국 지도부 주도로 각 성(省)마다 반도체 공장을 경쟁적으로 지으려고 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12일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박진성 부장검사)가 구속한 최모(65)씨가 딱 그 사례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2015년 7월 싱가포르에 반도체 제조업체 B사를 설립한 뒤 2018년 대만 C 회사로부터 약 8조원의 투자 약정을 받고, 2020년엔 중국 청두시로부터 46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최 씨는 이 같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삼성전자 등 국내 굴지 반도체 기업의 핵심 인력 200여명을 B사로 영입했다. 이들에게 기존보다 최소 두배 이상의 연봉을 제시했고, 가족들이 중국으로 이주할 경우 자녀들의 국제학교 비용을 지원하는 등 높은 수준의 복지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중국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은 최 씨가 이들 반도체 핵심 인력을 동원해 삼성전자 시안 공장에서 불과 1.5㎞ 떨어진 곳에 복제공장을 설립하려고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지시를 받은 삼성전자 출신인 B사 팀장 D씨는 2012년 삼성전자에서 퇴사할 때 불법으로 소지한 '반도체 공장 BED(Basic Engineering Data·불순물이 존재하지 않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술)' 자료를 B사가 활용할 수 있게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도체 공장 설계 도면은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의 협력사인 감리회사 직원 E씨가 유출해 A씨가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 씨 등이 불법 유출·부정 취득 및 부정 사용한 BED와 공정 배치도는 '국가핵심기술 지정 등에 관한 고시'로 지정된 반도체 분야 11개 기술 중 '30나노 이하급 D램 및 낸드플래시를 제조하는 반도체의 공정 관련 기술'에 해당한다.

다행히 A씨 등이 시도한 삼성전자 반도체 복제공장이 중국에 설립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지만, 설계도면 등 핵심기술은 해외로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삼성전자가 30년 넘는 기간 시행착오와 연구개발을 통해 얻은 영업기밀인 만큼 최소한 중국에서는 최대 수조 원 상당의 가치를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한국 기술을 빼가는 것은 전 산업 분야에 걸쳐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배터리의 경우 한국에서 받는 돈의 최소 10배 이상의 제안을 받은 경우가 허다하고, 중국 CATL, 유럽 노스볼트는 일부 직무 채용공고에 우대사항으로 한국어를 포함시키는 등 한국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중국이 한국을 꺾고 LCD(액정표시장치) 영상 디스플레이 세계 1위 자리에 오른 것 역시 '기술 빼가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술·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형사소송 과정에서의 영업비밀 유출 2차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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