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현실 어벤져스

박기용 2023. 6. 1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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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상황에 처한 우리는, 한밤중 험준한 산길을 가는 전조등이 고장 난 차에 탄 것과 같다.

어느 쪽이 안전한지 알려주는 도로 표지, 신호등도 없다.

차를 세우고 안전한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왜인지 운전자는 어둠 속에서 그저 나아갈 뿐이다.

마치 '어벤져스'를 연상케 하는 이름의 이 위원회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지구 시스템의 안전하고 정의로운 경계'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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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기후위기 상황에 처한 우리는, 한밤중 험준한 산길을 가는 전조등이 고장 난 차에 탄 것과 같다. 어느 쪽이 안전한지 알려주는 도로 표지, 신호등도 없다. 승객은 공포에 휩싸였다. 차를 세우고 안전한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왜인지 운전자는 어둠 속에서 그저 나아갈 뿐이다. 영웅이 필요한 순간이다.

2009년 9월 <네이처>엔 26명의 국제 연구자들이 공동집필한 논문이 게재됐다. 제목은 ‘인류를 위한 안전한 운용 공간’(a safe operating Space for humanity). 지구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9가지 한계선(지구 한계·planetary boundaries)이 제시됐고 이 중 7개는 수치화됐다. 기후와 오존층, 해양 산성화, 질소·인 순환, 담수 사용량, 토지 사용, 생물 다양성, 신물질(화학물질) 등인데, 문제는 당시 이미 4개(기후와 생물 다양성, 토지 사용, 질소·인 순환)가 한계를 넘어 있었다.

지구 위험 한계선은 어두운 도로의 신호등 같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치명적 티핑포인트(되돌릴 수 없는 지점)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게 한다. 2009년 이후 다른 부문도 한계를 넘고 있다. 온실가스는 바다를 산성화한다. 산업혁명 이후 바다 산성도는 26% 증가했다. 지난 5500만년 가운데 최고다. 2020년 뜨거운 해류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2300㎞ 대산호초 지대를 휩쓸면서 이 지역 산호는 대부분 하얗게 탈색돼 죽었다. 과학자들은 이때를 해양 산성화의 한계에 도달한 시점으로 본다.

2009년 논문을 이끈 요한 록스트룀 독일 포츠담대 교수는 자연·사회과학자들의 국제 모임인 지구위원회(Earth Commission)를 만들었다. 마치 ‘어벤져스’를 연상케 하는 이름의 이 위원회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지구 시스템의 안전하고 정의로운 경계’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정의’ 개념을 반영한 8가지 지구 환경 지표에 대한 평가 결과를 내놨는데, 6개가 정의롭지도 안전하지도 못한 수준이었다. 지구위원회가 보내는 신호는 점점 더 악화한다.

록스트룀 교수는 지구를 상징하는 파란색 구슬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한다. 우리가 위험 상황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작은 구슬은, 우리가 큰 행성의 작은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성 위에 건설된 큰 세계에 살고 있음을 상징한다.

박기용 <한겨레21>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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