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사줄게" "추가분담금 절대 없어"···지역주택조합 홍보관 가보니 [르포]

김민경 기자 2023. 6. 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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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택조합 난맥상]
토지사용권원·토지매입 개념부터 왜곡
"곧 분양가 오른다"며 겁박하기도
[서울경제]

"냉장고, 세탁기, 여기 가전은 다 빌트인이에요. 밥솥만 사면 되는데 그건 오늘 계약하면 내가 사줄게. 다른 가전 아무것도 안 들고 와도 돼. 4억 원 대에 이 동네에서 이런 집 절대로 못 구해요."

최근 기자가 찾은 서울의 한 지역주택조합 홍보관 관계자는 이 같이 말하며 계약을 권했다. 다닥다닥 붙은 빌라촌 한가운데 들어선 으리으리한 홍보관과 그 옆에 표기된 대형 건설사의 이름을 보며 커진 기대감은 관계자의 권유에 더욱 커졌다.

현장에 전시된 19평형 모델하우스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분양 관계자는 이 대형 건설사가 어떻게 아파트를 짓는지 어떤 프리미엄 브랜드가 있는 지에 대해 소개했다. 인근에서 가장 좋은 입지인 만큼 시공사들이 이 조합의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피튀기는' 경쟁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덧붙였다. 욕실과 주방, 거실을 둘러보자 가족들로 복작복작한 본가를 떠나 이런 집에 혼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기자에게 분양 관계자는 빌트인 목록에서 제외된 밥솥을 사주겠다고도 했다. 서울의 중심지에 들어선 인덕션과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밥솥까지 모든 가전이 갖춰진 19평형 아파트가 4억 원 대라니. 중도금 대출금에 대한 이자는 시공사가 지원하는데다, 조합원이 되기 위해 당장 납부해야 하는 계약금은 4500만 원이었다. 관계자는 이는 1차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해 가능한 금액이라며, 7월 이후에는 두 배로 뛸 것이라고 겁을 줬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분양 관계자가 계약서를 꺼내기 직전 희미해진 이성을 붙잡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착공은 언제에요?" 내년 10월 예정이라는 답변이 돌아오자 확신에 찼던 마음에 다시 의구심이 일었다. 아직 1차 조합원 모집 중이고 조합 설립도 되기 전인데 내년 착공이 가능할 리가 없다. 자세히 보자 시공사라고 적혀있는 대형 건설사 이름 옆에 (예정)이라는 작은 글자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지주택 조합 사업이 어떤 절차를 거쳐 아파트를 짓는지, 현재 조합은 어느 정도 단계인 지에 대한 설명은 이때까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기자가 "현재 토지 확보율은 어느 정도냐"고 물어보자 50~60%라는 다소 두루뭉술한 답변을 내놨다. 조합을 설립하려면 토지 동의서(사용권원) 80%를 확보해야 하는데 79%이상이라 "사실상 거의 다 된 셈"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사용권원은 단어 그대로 토지주가 토지를 사업에 사용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에 불과할 뿐, 실제 조합이 토지를 소유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용권원이 아니라 토지를 80% 소유하더라도 쉽게 좌초하는 것이 지주택 사업이다. '6% 비대위'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반드시 최소 95%를 확보해야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인 만큼 확보율이 94.999%라 해도 사업은 엎어질 위험이 남아 있다.

(관련기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4198482?sid=10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4200682?sid=101)

기자가 찾은 인천의 다른 지주택 홍보관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이 곳은 아직 조합설립인가조차 받지 못했지만 아무리 늦어도 후년에는 착공에 들어갈 것이라며, 2027년에는 입주가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특히 분양 관계자는 “현재 토지사용권은 85%, 토지 매입은 15%를 확보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토지사용권원과 토지 매입은 다른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토지사용권원이라는 건 토지를 팔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토지 매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토지 사용권원을 100% 확보하더라도 토지매입 가격에서 발생하는 이견으로 인해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추가분담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도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펄쩍 뛰었다. 보통의 재건축·재개발조합도 100%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 추가분담금인데도 말이다. 오히려 그는 사업지 인근의 ‘확정되지 않은’ 다양한 개발 호재와 현재 미분양 상태인 인근의 정비사업지를 대조하며 계약을 종용했다.

무수히 산적한 리스크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초기에 투자해야 싸게 살 수 있다'며 내 집 한 칸을 마련하려는 서민들을 현혹하는 지주택. 씁쓸한 마음으로 홍보관을 나오면서 그간 만난 피해자들이 떠올랐다.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수천만 원을 쏟아부었지만 탈퇴는커녕 오히려 빚만 남아 절망하던 그들의 얼굴이.

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김연하 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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