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연의 아틀리에 산책 | 풍선 작가] 무너졌을 때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희망 말하는 이동욱 작가

연지연 조선비즈 기자 2023. 6. 1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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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인 ‘풍선 작가’ 이동욱 작가. 사진 아르테케이

“우리 아이 방에 걸어 줄 그림으로 좋은 것 있을까요?”

갤러리스트(gallerist·갤러리를 운영하거나 갤러리에서 미술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요즘 답하기 가장 곤란한 질문 중 하나다. 아이 방에 걸어 줄 그림이란 것에 많은 뜻이 담겨있어서다.

연지연조선비즈 생활경제부아트콘텐츠팀 기자

일단 아이가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그림이 너무 어둡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로 너무 유명하지 않은 신진 작가가 그린 그림이어야 한다. 동시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작품이어야 한다. 아이에게 줄 그림이란 뜻은 곧 투자 가치, 증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풍선 작가’로 분류되는 이동욱 작가. 사진 연지연 기자

미술 투자는 주식 투자보다도 어렵고 시장 상황에 따라 등락이 심해 투자 가치를 쉽게 예견할 수 없지만 이 같은 어려운 질문의 답으로 종종 언급되는 작가가 있다.

바로 ‘풍선 작가’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동욱(42) 작가다. 그림이 동심을 자극하는 데다 작가가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고 오페라갤러리 소속 작가로 데뷔한 이래로 13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아틀리에는 경기도 하남시의 한 지식산업센터에 있었다. 세무법인, 법무법인, 마케팅 회사, 공인중개업소 등 치열하게 돈을 다투는 회사가 즐비한 이곳을 숨 쉬게 만들어 주는 곳이다.

이곳은 그가 처음으로 마련한 아틀리에다. 더 이상 이사 고민을 하지 않고 마음 편안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이곳에서 숙식도 해결한다. 연평균 그가 그리는 그림은 40~50점. 하루 작업 시간만 12~18시간에 이른다.

“작업실 전전하면서 어떻게든 싼 데 가려고 하다가 자리 잡은 곳이에요. 대출이자가 부담이긴 하지만 그래도 쫓겨날 걱정은 안 하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엄지손톱만 한 풍선으로 가득 찬 그림이 빼곡하게 걸려있는 그의 아틀리에에서 풍선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다음은 이 작가와 일문일답.

이동욱 작가의 작업실. 사진 아르테케이

풍선을 왜 이렇게 열심히 그리게 됐나.
“2007년에 공황이 와서 불안했던 때가 있었다. 20분 이상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그릴 수 없었던 때라 작업실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공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괴로웠던 때에 갑자기 깜깜한 어둠을 뚫고 풍선 하나가 올라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환각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풍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풍선을 그릴 때만큼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풍선을 그릴 때는 앉아서 작업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풍선만 그렸다. 편해지려고.”

풍선은 어떤 의미를 갖나.
“처음엔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풍선이었을 뿐인데 그릴수록 의미가 깊어졌다. 풍선은 사실 얇은 막으로 되어있는 연약한 존재다. 언제 터질지 모르고 바람이 불면 중심도 잡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 터져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사실 자주 슬프고 외로운 연약한 존재다. 회사에서, 사회에서, 외풍에도 쉽게 흔들린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연약한 풍선이 점점 하늘로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지만 희망을 가지고. 내 그림 속 풍선은 힘들겠지만, 이것만 잘 견디면 좋아질 거라고(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스스로 보여주는 실체다. 어쩌면 연약하지만 가장 강한 존재다.”

그림을 통해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싶나.
“누군가 무너졌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그 어떤 것을 각자 떠올리기를 바란다. 힘들지만 한 발짝 내딛게 해줄 수 있는 것. 누군가에게는 반려동물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밥 한 끼일 수도 있다. 내 그림이 누군가를 일으킬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그림 앞에서 한 번쯤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림마다 빨간 풍선이 꼭 하나씩은 있다.
“공황장애가 심했을 때 시공간을 초월해 내 눈앞에 보였던 풍선이 빨간색이었다. 그래서 그림을 완성할 때쯤 그 풍선을 그린다. 나의 초심, 나의 의지를 다지는 일종의 의식이다. 빨강 풍선을 마지막에 그리고 연도와 이름을 적으면 작업이 끝난다. 빨간 풍선이 없는 그림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그림이다.”

하늘을 그리는데, 그중에서도 노을을 주로 그린다.
“일몰은 하루 중 광양이 가장 약할 때다. 어딘가 쇠하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안고 떠오르는 풍선을 그리고 싶었다. 우리가 행복으로 충만하고 건강하면 희망을 찾고 희망을 논하지 않을 것이다. 늘 쇠할 때 우리는 희망을 찾는다.”

최근엔 돌고래도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에 변주를 줬다. 파란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자 무서워하는 색이다. 하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고 하늘과 맞닿은 바다는 내가 잘 바라보지 못하는 두려운 존재다. 이런 모순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모순을 함께 다룰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돌고래다.”

작품이 점점 밝아지는 느낌도 든다.
“초기 작품과 지금 작품은 조금 다르다. 일단 풍선 수가 줄었다. 처음엔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캔버스에 풍선을 최대한 많이 그렸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점점 풍선 수가 보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수준으로 줄고 있다.

작품 분위기도 처음엔 훨씬 어두웠고, 전쟁이나 파괴 등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오는 변주이기도 하지만 나와 나를 포함한 작품 세계의 변화이기도 하다.”

NFT 작업에도 참여했다.
“튀르키예(옛 터키) 구호 모금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기부를 증명하는 NFT(Non 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2018년에 그린 ‘깊이로부터 온 메시지’라는 작품을 근간으로 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폐허 속에서 솟구치듯 피어오르는 풍선을 통해 튀르키예에 희망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한강 작가의 소설 ‘흰’을 보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 풍선과 근접한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의미를 더해줄 수 있는 NFT 작업에 좋은 뜻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뜻깊었다. 앞으로도 이런 활동은 계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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