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산증인의 배신 … 30년 쌓아올린 노하우 中에 빼돌려

지홍구 기자(gigu@mk.co.kr) 2023. 6. 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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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유출 비상 ◆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 기술을 대거 빼돌려 중국에 복제 공장을 만들려던 A씨(65)는 한때 국내에서 최고 전문가로 꼽혔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안겼다. 그는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에서 18년간 근무하다 상무로 퇴직했다. 자리를 옮겨 간 SK하이닉스에선 10년간 부사장을 지내며 한때 사장 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다른 기업체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돌연 퇴직한 뒤 중국 사업에 뛰어들면서 반도체업계 안팎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12일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박진성)는 A씨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전격 기소했다. A씨가 중국에 설립한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 5명(전 삼성전자 직원 3명, 전 삼성 계열사 직원 2명)과 삼성전자 시안공장 감리 회사 직원 1명 등도 공범으로 불구속기소했다.

직원 5명은 삼성전자 시안공장 감리 회사 직원에게서 설계 도면을 취득해 무단 사용하는 등 범행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A씨 등은 삼성전자 영업비밀인 반도체 공장 BED(반도체 제조가 이뤄지는 클린룸을 불순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최적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환경 조건) 기술, 공정 배치도, 설계도면을 빼돌려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BED 기술과 설계도면은 A씨 회사 직원 등이 삼성전자 설계사, 감리사 등 협력 업체 직원을 통해 빼돌린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A씨가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 부근에 복제판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을 부정 취득·사용했다는 게 검찰의 기소 내용이다. 다행히 이 계획은 A씨에게 약정한 대만 전자제품 생산업체의 8조원대 투자가 불발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삼성전자 기술이 공장 건설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을 뿐, 해당 기술은 이미 A씨가 세운 회사로 넘어간 상태다. 검찰은 A씨 등이 유출한 삼성전자 기술을 최대 수조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영업비밀이자 국가핵심기술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30㎚ 이하급 D램과 낸드플래시를 제조하는 반도체 공정 관련 기술인 BED와 공정 배치도는 국가핵심기술로 고시돼 있다.

검찰은 "A씨 등이 부정 유출·사용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BED·공정 배치도·설계도면은 삼성전자가 최적의 반도체 제조 공장을 만들기 위해 30년 이상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발한 기술로, 최소 3000억원에서 최대 수조 원 상당의 가치가 있는 영업비밀"이라며 "이번 범행으로 삼성전자에는 최소 3000억원 이상 손해가 발생했고, A씨가 만든 회사는 이 금액만큼 비용을 절감하는 이득을 취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퇴직한 A씨는 중국·대만 자본을 끌어들여 중국에 2개 회사를 차린 뒤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대만 굴지 전자제품 생산업체 자본(약 8조원 투자 약정)으로 싱가포르 B사(중국 소재), 중국 청두시 자본으로 한중 합작 C사(중국 소재)를 설립한 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핵심 인력 200여 명을 고액 연봉을 주고 영입했다. 기존 연봉의 2배 이상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A씨가 중국 청두시에서 전체 지분의 60%에 달하는 4600억원을 투자받아 만든 반도체 제조 공장은 지난해 연구개발(R&D)동을 완공해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시제품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지방정부인 청두시와 A씨는 글로벌 파운드리의 청두공장 인수 등을 위해 2020년 한중 합작 법인을 세웠다.

A씨 혐의가 알려지면서 국내 반도체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그는 오랜 시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근무했고,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나 후배 직원들은 여전히 이들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선배 엔지니어의 기술 유출 혐의가 불거지자 황당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기업은 물론 국가로부터도 적잖은 혜택을 받은 인물이었다"고 꼬집었다.

박진성 수원지방검찰청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장은 "범행 규모와 피해 정도가 기존 개별적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중하다"고 설명했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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