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중국대사의 혀
2004년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한국말을 잘하는 주한중국대사관 참사관이었다. 황 의원 대신 전화를 받은 보좌관은 다짜고짜 황 의원이 당시 주도하던 탈북자 강제송환 반대운동에 관한 항의를 들어야 했다. 이 참사관은 "의원이면 상당히 높은 자리인 걸로 아는데 (탈북자 행사) 이런 데 참석하셔서 되겠냐"며 "중국 정부는 이럴수록 강하게 나간다"고 대놓고 협박도 했다. 의원께 잘 전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참사관이 20년 후 주한중국대사로 부임한 싱하이밍이다.
그는 지난해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한국에 만연한 반중정서의 원인으로 한국 언론을 지목했다. "솔직히 한국 일부 언론이 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 보도를 한 게 현재 양국 국민 감정의 불화를 초래한 게 아닌가"라며 눈썹을 찌푸렸다. 베이징 특파원 출신의 한 일간지 논설위원이 중국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가시 돋친 질문을 이어가자 그는 대답 대신 "기자님을 오래전부터 잘 모셨다. 우리가 안 지 16년 되지 않았냐"고 했다. 기자의 입을 틀어막아버린 것이다.
내 편이라 생각하면 갑자기 말이 짧아지기도 한다. 북한 사리원농대에서 유학한 싱 대사의 한국어 실력은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다. 그는 2021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나는 공장장님을 좋아해. 대화를 통해서 우리 이렇게 친구가 됐으니까"라며 반말 조로 친밀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의 말 속엔 상대가 누구이든 모욕과 무시의 기운이 배어 있다. 그런 꼴 당하고 싶지 않아 중국대사관 행사엔 안 간다는 원로 한국 외교관이나 중국 관련 교수들도 여럿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일 주한중국대사관저로 찾아가 싱 대사로부터 "한국이 미국에 베팅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 등 막말을 듣고 왔다. 민주당도 싱 대사의 요설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외교관의 말이라기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천설(賤舌)까지.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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