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육아휴직·유연근무, 눈치 안보고 쓸 수 있나요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3. 6. 1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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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확대됐다지만
대기업·여성 쏠림 여전
업무시간 조절하는 유연근무
육아기 재택근무 등 확대해
아이 키울 수 있게 도와야
아이 낳을 결심 할 수 있어

아기 울음소리 듣기가 힘들어진 요즘, 출산 소식을 건네는 사람을 보면 '애국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난달 국내 최초로 초산(初産) 자연분만으로 네쌍둥이가 태어났다는 기사에 "나라에서 집이라도 한 채 줘야 한다" "진정한 애국자"라는 댓글이 달린 걸 보니 국민들 생각도 비슷한 모양이다.

합계출산율이 0.78명까지 떨어졌지만, 다둥이 출산 소식은 심심찮게 들린다. 지난해 네쌍둥이가 처음으로 자연분만을 통해 세상에 왔고, 2021년에는 국내에서 34년 만에 다섯쌍둥이가 태어났다.

이들 다둥이 가정 부모들은 모두 선택적 유산 대신 찾아온 모든 아이를 낳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육아전쟁에 돌입한 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니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도 분명해 보였다. 이들 다둥이 부모에게서 찾은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대기업 직원 또는 공무원(군인)이라는 것이다.

정부부처와 대기업들은 육아휴직을 보장한다.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나 육아기 재택근무를 도입한 곳도 많다. 이런 제도가 없었거나, 제도가 있어도 눈치 보느라 쓸 수 없었다면 다둥이 부모들도 출산 결심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혜택이 대기업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법정기한(1년)보다 긴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육아휴직을 한 엄마의 62.4%가 300인 이상 기업 소속이고, 육아휴직 아빠는 71.0%가 300인 이상 기업 직원이었다. 전체 근로자의 70~80%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의 육아 지원 확대가 시급하다.

육아휴직의 여성 쏠림도 심각하다. 2021년 기준 출생아 100명당 육아휴직은 여성 26.3명, 남성 3.0명으로 차이가 극명하다. 여성에 편중된 육아휴직은 남녀 임금 격차를 벌어지게 하는 '모성 페널티'를 초래하고, 자신의 경력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여성의 증가로 출산율을 낮추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남성 육아휴직 사용이 저조한 한국은 26년째 OECD 회원국 가운데 남녀 임금 격차 1위다.

신한라이프가 3~4월 전국의 만 25~39세 700명을 대상으로 실사한 설문에서 여성의 59.6%가 저출산의 원인을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을 병행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를 꼽았다. 높은 주거비와 사교육비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 못지않게 기업과 정부가 합심해 아이를 기르기 좋은 환경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저출산 대책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다.

유연근무는 인재 확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만큼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분기별로 전 세계 1만명 이상 사무직 근로자의 근무환경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는 퓨처포럼의 지난해 말 조사에 따르면 업무시간에 유연성을 가진 직원은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생산성이 39% 높았고, 업무공간에 유연성을 가진 직원의 생산성은 8% 높았다.

최근 셋째를 낳으면 특진시켜주는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한 회사까지 등장했다.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고민을 기업이 함께 나누려는 좋은 시도다.

하지만 아파트 청약이나 승진을 바라고 아이를 낳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애국을 위해 아이를 낳지도 않는다. 내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울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해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아이 낳을 결심을 할 수 있다. 하나를 키워보니 키울 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둘째를 낳을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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