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Pick] 미국 대선의 새로운 화약고, ‘낙태권’

2023. 6. 1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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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이민, 이제 ‘여성 자기결정권’으로 분열

우리나라는 태어나자마자 나이를 1살로 계산했었다. 이는 엄마 뱃속에서 생명으로서 10개월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해서 여성의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해서도 찬성과 반대, 즉 이 문제적 논쟁은 계속된다. 낙태를 반대하는 이들은 임신이 되는 순간 손가락 만한 태아라도 인간이고 생명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반대 논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여성의 자기선택권’이다. 그들은 ‘태아가 산모의 몸에서 나와 자연적인 생존이 가능해야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사진 픽사베이
#1. 지난 4월7일 미국 텍사스연방법원은 경구용 낙태약(유산유도제) ‘미페프리스톤’ 사용을 금지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 이래 지금까지 미국 여성 약 560만 명이 먹은 이 약에 대해 판사는 “처음 승인 결정 시 약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봤다. 또 노스타코타주 대법원도 낙태 금지법 위헌 결정을 내렸고, 뉴멕시코주는 낙태 시술과 약물에 대한 접근제한 지역조례를 무효했다. 물론 반대 결정을 내린 주도 있다. 워싱턴주 연방법원은 미페프리스톤 사용 승인을 철회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정했고 주에서는 미페프리스톤의 판매 금지를 대비해 3년치 수요를 미리 구매했다. 이 미페프리스톤에 대한 사용과 접근에 관한 소송이 현재 미국 17개 주 등에서 제기되어 본안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2. 힐튼 가문의 상속자이자 우리에게는 ‘영 앤 리치’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패리스 힐튼이 과거를 고백했다. 그녀는 매거진 『글래머』과 인터뷰에서 ‘20대 초반에 낙태를 경험했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임신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낙태권을 법적으로 인정한 ‘로Roe 대 웨이드Wade 재판’의 판례가 뒤집어진 것에 대해서도 그녀는 “나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주변에는 정치적인 것들이 많다. 여성의 몸이다. 왜 그것에 근거한 법이 있어야 하는가? 나의 몸이고, 당신의 선택이다”라며 의견을 전했다.
#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 50주년을 맞아 낙태권 보호를 성문화할 것을 의회에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973년 1월22일 대법원은 여성의 헌법상 선택권을 보호하는 로 대 웨이드 사건에서 기념비적인 7대 2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평등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고, 사생활에 대한 기본권을 강화했으며, 이 나라 여성이 정치적 간섭 없이 스스로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뒤집어진 판례, 미국 50개 주는 각개 행동
마약, 총기, 이민 정책을 두고 미국은 지금도 분열되어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갈등이 미국민의 앞에 등장했다. 이 문제는 남성과 여성, 종교적 갈등과 50개 주의 분열까지 드러내고 있다. 바로 여성의 낙태권, 즉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다. 그 시작은 2022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돕스 대 잭슨 판결’이다. 이는 미시시피주의 토머스 돕스 보건장관을 상대로 낙태시술 제공기관인 잭슨여성보건기구가 낸 소송이다. 이는 15주 이상 태아에 대한 낙태를 금지하는 미시시피주 법안 위헌 여부를 다루는 것.
사진 픽사베이
이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물론 단서 조항은 있다. 낙태권 존폐를 각 주의 결정에 맡긴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 보수적 재판관으로 연방대법관을 싹 물갈이를 해버린 결과 ‘낙태권에 대한 연방 차원의 헌법적 보호’를 폐지해 버렸다. 그 결과 텍사스주 연방법원은 사실상 유일한 경구용 낙태약 미페프리스톤에 대한 사용 승인을 취소했다. 여성단체는 이를 ‘정치적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미국은 물론 세계도 주목한 역사적 판결이라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뒤집혀버렸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낙태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에 근거를 둔 ‘사생활 권리’라는 시각으로 이를 보장했다. 그 후 약 50여 년 동안 유지되었던 이 판례가 2022년 뒤집힌 것이다. 이는 미국 보수계의 오랜 숙제이자 그들의 목표였다. 이제 미국에서는 각 주로 낙태권, 유산유도제 판매 등에 대한 소송이 수없이 제기되고, 각 주마다 찬성과 반대의 판결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50여 년 동안 유지된 ‘로 앤 웨이드 사건’ 판결
그럼, 50여 년 동안 미국에서 유지되었던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의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과연 무엇인가. 미국에서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선 이 판결의 시작은 1969년이다. 당시 21살의 매코비는 3번째 임신을 했다. 그녀는 제인 로라는 가명으로 텍사스주의 낙태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의 내용은 1859년 이래 텍사스의 낙태법이 여성의 헌법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 소송의 피고측은 당시 텍사스주의 검사 웨이드이다.
제인 로(매코비)는 변호사 린다 커피와 세라 위딩턴의 조언을 받았다. 물론 장시간의 소송 기간 동안 소의 당사자인 제인 로는 임신 중절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는 단체와 제인 로의 변호사들은 이 사건을 단순한 개인 소송이 아닌 미국 내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매우 중대한 소송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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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로와 소송단은 ‘텍사스주가 여성에게 자신의 아이에 대한 권리를 제한해 자신의 인생에 대한 당연한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의 ‘어떠한 주도 미국 시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탈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수 없다’는 조문을 강조했다. 더구나 제인 로의 임신은 성폭행에 의한 ‘원치 않는 임신’이었고 텍사스주의 법은 산모가 생명이 위험할 때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었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판결을 내렸다. 다수의견 7, 소수의견 2로 ‘임신 초기에서 여성의 낙태를 허용, 불허용은 여성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낙태를 허용한 판결은 아니다. 판결은 임신 12주까지 초기는 낙태 허용, 12주에서 24주까지 중기는 제한적 허용, 24주 이상인 말기에는 낙태 금지 그리고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시기와 관계없이 낙태를 허용했다.
이 판결로 텍사스주를 비롯한 많은 주의 여성의 낙태 금지 및 제한에 대한 법은 모두 폐지되었다. 이 판결 이후 미국의 모든 여성들은 임신 6개월 전까지 자기결정권으로 낙태를 할 수 있었다. 물론 극심한 반대도 있었다. 찬성한 7명의 대법관들은 거의 테러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고 이후 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대선 때마다 각 후보자가 꼭 대답을 해야 하는 필수 질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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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파의 반격은 끈질겼다. 각 주마다, 일테면 태아의 심장 박동이 시작되면 낙태를 금지하는 ‘심장박동법’을 만들기도 했고 더 나아가 낙태를 결정한 산모는 물론 낙태시술을 한 의사 역시 민사소송으로 고소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아이다호, 플로리다, 오클라호마, 미시시피주 등도 임신 기간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낙태금지 법안을 제정했다. 그리고 결국 2022년 6월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고 ‘돕스 대 잭슨 판결’을 통해 각 주별로 낙태권에 관한 법을 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돕스Dobbs 대 잭슨Jackson 사건’의 시작은 2018년 미시시피주다. 당시 미시시피주는 임신 15주 이상에서 임신부의 건강, 태아의 생명에 위험이 따를 때를 제외하고 성폭행 등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에도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미시시피주의 여성단체 등이 이 법이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 1973년의 판결이 뒤집어진 것이다.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그들은 ‘헌법은 낙태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낙태를 규제할 권한은 국민과 그들이 뽑은 대표들에게 돌아간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즉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각 주의 의회가 대신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역반응도 일어났다. 바로 이른바 사후피임약인 미페프리스톤의 판매가 늘어난 것이다. 미국의 많은 여성들이 낙태 시술 대신 사후피임약을 찾게 되고 심지어는 ‘원정 낙태’ 현상까지 일어났다.
낙태죄 헌법불일치 판결, 따르지 않는 후속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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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상황을 살펴보자. 간략하게 낙태와 낙태죄에 대한 법적 판단을 보면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물론 헌재는 2019년 결정에 2020년 말까지 이를 보완할 것을 주문했다. 당시 헌재는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정당한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법한 수단이라는 점’과 함께 ‘여성의 임신 선택권’과 ‘태아의 생명권’에서 현명한 보완점과 절충점을 찾을 것을 주문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아직까지 이에 대한 후속 법안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몇몇 발의된 법안은 있다. 임신 6주, 임신 10주를 낙태 허용의 기준을 삼자는 것과 여성의 건강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으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회뿐 아니라 정부 역시 임신 14주까지는 낙태 허용, 성폭행 등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에는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자는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국회 역시 이 후속법안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워낙 사회적, 종교적, 의료계, 여성계 등 많은 단체와 사람들의 첨예한 의견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지금 우리나라는 낙태를 허용한 것도, 허용하지 않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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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신중절 수술 수치는 2005년 34만2,433건, 2010년 16만8,738건으로 2020년에는 약 3만 건으로 추정된다. 20년 전에 비해 수치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물론 원인은 가임 여성의 감소, 피임에 대한 의식 강화, 임신과 출산 기피의 영향도 있다. 현장의 의사들도 고충이 많다. 임신 중절의 경우, 임신 시기 등이 명확치 않고 또 수술 후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의사의 책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많은 임신 초기 여성들은 사후피임약, 유산유도제를 찾게 된다. 바로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용을 허가해 세계 약 70여 개국에서 사용되는 미프진이다. 이는 영국의 라인파카가 개발한 미페프리스톤 성분이다. 미페프리스톤은 합성스테로이드 성분으로 항호르몬을 차단해 자궁 내 착상된 수정체를 분리시킨다. 하지만 이 유산유도제인 미프진의 합법적 도입과 판매는 2022년에 무산되었다. 해서 많은 여성들이 미프진을 해외 직구, 인터넷 카페 등에서 구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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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로 구성되어 잇다. 현재 임신 7주까지는 40만 원, 임신 8주 이상은 약 50만 원 이상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은 심각하다. 임신중절 수술은 말할 것도 없고 사후피임약은 설사 그것이 정품이라도 부작용을 낳는다. 그런데 중국산 낙태약 미비사동편, 미색전렬순편 등이 SNS를 통해 미국산 낙태약으로 버젓이 팔리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용이 금지돼 정식 수입을 할 수 없는 불법 의약품이다. 또 SNS에서는 임신 30주 이상에도 효과가 있다고 과대 선전하는 의약품이 있다. 이를 약 200만 원을 주고 먹었다가 태아가 숨지고 이후 임산부 역시 큰 부작용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르는 후속 법안과 조치가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임신과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시 산모가 겪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상담이나 의료 혜택을 줄 수 있는 시설에 대한 보완조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생명은, 당연히 소중하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생명이 위협받아서는 안된다. 이런 명제 앞에 여성의 낙태권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함께 현명한 판단이 따라야 할 것이다.
[ 권이현(칼럼니스트) 사진 및 일러스트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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