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도현 “음악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미친 짓” [인터뷰]
2021 부소니 콩쿠르 준우승
마포문화재단 ‘올해의 아티스트’
13일 첫 리사이틀ㆍ올해 4회 공연
“내가 기쁨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음악”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음악을 연주하기 직전이면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지그시 두 눈을 감거나 먼 곳을 바라보는 눈동자, 건반 위를 사뿐사뿐 뛰기도 걷기도 하는 긴 손가락들…. 피아노 앞의 김도현은 꿈을 꾼다. 꿈속의 그는 완전히 다른 자아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음악은 조금은 특별한 언어로 적힌 초대장이다.
“음악은 사람들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미친 짓이에요. 정말 완전히 미친 짓은 아니니까요. (웃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행위 중 하나가 저의 최선으로는 악기였어요.”
어린시절에도 그랬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그날 배운 동요를 치곤 했다. 생애 첫 피아노에 대한 기억이다. 음악보다 운동을 더 좋아한 때였다. 초등학교 땐 연년생 동생과 ‘진도 빼기’ 대결을 하듯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에게 음악은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방법”이 됐다. 피아노 앞에서 펼쳐놓는 김도현의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연주를 하는 동안 겹겹이 포장된 나를 깨뜨리고, 뭔가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 때 술보다도 더 강한 희열이 오더라고요.” 변화무쌍한 얼굴을 한 음악 안에 쌓아올린 감정의 전염성이 크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
2017년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 콩쿠르 1위 없는 2위, 2019년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 세미파이널 특별상, 2021년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 2위….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려온 김도현을 마포문화재단이 점찍었다. 올해 시작한 아티스트 제도의 첫 주인공(M아티스트). 마포문화재단 관계자는 “올해의 아티스트 제도는 미래에 차세대 거장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며 “김도현이 가진 개성과 특별함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김도현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김도현은 올해 네 번의 기획 공연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M아티스트로 선정되며 그에겐 과제가 하나 생겼다. 공연 프로그램을 짜는 일이었다. 첫 리사이틀(6월 12일·마포아트센터)에선 슈베르트와 리스트, 라벨을 골랐다. 세 작곡가의 음악이 긴밀하게 이어진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어린시절부터 좋아했던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가곡, 그것에서 영감받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등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씨실과 날실처럼 엮였다. 김도현이 정한 주제는 ‘재창조의 열정’이다.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사실 좀 막막했는데, 다 새롭게 해봐야겠다 싶어 도전했어요.” 그의 스승인 세르게이 바바얀(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 역시 제자가 “독립적인 음악가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선생님은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을 찾기를 원한 것 같았어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느낌이에요.”
김도현의 음악이 꽃을 피운 것은 대학 졸업 이후의 일이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영재들이 넘쳐나는 분야에서 “전공자의 기준으로 보면 다소 늦은 시작”이었다. 그는 “콩쿠르에서의 입상도, 무대 기회를 가진 것도 20대 중반 이후의 일”이라고 했다. ‘바바얀과의 만남’은 “음악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음표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노래를 부르듯 연주하며, 심장의 움직임을 손가락 끝으로 옮길 수 있게 됐다.
지금은 “나의 음악을 찾아가는 길”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고, 첫 단추를 끼운 것 같아요.” 아직 딱 맞는 것을 찾지는 못했다. 그의 이상은 “조금 더 대중적인 작품”으로 향해있다. “희귀한 레퍼토리보다는 리스너 입장에서 와닿는 곡을 연주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의 제 꿈이었어요. 대중적인 작품을 저만의 방식으로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번 리사이틀에도 그 마음이 반영됐다. 클래식 초심자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곡”의 구성으로 “음악의 이야기”를 생생히 담아내고자 한다.
“미샤 마이스키(첼리스트)는 전문가를 위해 연주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관객이 나의 음악을 이해하려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의 150~200%를 보여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관객에게 100% 와닿는다고요. 과장된 음악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날 순 있지만, 그것이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시각과 상황에 따라 우리가 뭘 느끼는지는 왜곡돼 들리지만, 제겐 깊이 와닿은 이야기였어요.”
김도현은 배우고 공부하는 음악가다. 난곡이나 새로운 곡을 만날 때면 하루에 11시간씩 피아노 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물리적으로는 입시 때보다도 피아노 앞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요. (웃음)” 이전엔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에 잘 듣지 않았던 교향곡”도 ‘도장깨기’를 하고 있다. 최근엔 말러가 남긴 교향곡 11개를 매일매일 1번부터 들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말러 심포니를 좋아하는지 궁금했어요. 말러는 인테리어하듯 음악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존에 없던 어법을 기존 하모니와 어우러지게 하면서 변화를 만들더라고요.” 새로운 음악을 만나고 공부하며 그는 “조금 더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고 했다.
“대학 때는 쇼팽을 너무 많이 들어 다른 작곡가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이것저것 시도하고 레퍼토리를 확장하면서 다른 사람의 것도 이해해보려고 해요.”
매일의 공부는 ‘매일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그 안에서 김도현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미 나온 답이 아닌 나만의 정답 노트를 써내려 간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들려줄 슈베르트도 마찬가지다. 그는 “슈베르트는 대가들이 해탈의 경지에 오른 뒤 치는 음악이라는 느낌도 있지만, 내겐 조금 더 소년의 에너지가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기존에 연주한 방식과는 다른 쪽으로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가 정한 주제인 ‘재창조의 열정’과도 맞닿았다. 늘 김도현의 연주가 향해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금 더 색다른 접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그것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더 숙련하고 연구해야 겠지만요. 아직은 100% 자신감을 가지고 확신할 순 없지만, 실험해볼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 재창조라는 맥락에 맞는 것 같아요.”
음악을 하면서 만나는 행복의 순간들은 그가 하고 싶은 음악과 맞닿는다. “아름다운 소리를 창조할 때”, “음악에 푹 빠져 감정을 이입할 때, 그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움직일 때” 그는 한없는 행복을 만난다.
“좋은 음악을 전하고 싶었고, 사람들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어떤 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기도 하고요. (웃음) 사람마다 마음의 위로를 얻는 방법은 다르지만, 제 자리에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음악 뿐이에요. 그것이 제 사명이고요. 음악가로의 큰 포부나 목표는 없어요. 연주회를 마치고, 관객들과 친구처럼 이야기하는게 좋아요. 그래서 공연 후에 사람들의 얼굴을 당당히 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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