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 보건 잘못하면 전신건강 망가진다
(시사저널=박효순 경향신문 의료전문기자)
'구강건강이란 어느 한 가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다양한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 미소 짓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접촉하고, 씹고 삼킬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두개안면 복합체의 통증과 불편 없이 자신감 있는 안면 표정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세계치과의사연맹(FDI)이 2016년 9월6일 폴란드에서 열린 연차총회에서 전신건강과 행복의 필수 요건으로 발표한 '구강건강'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골자다. 이후 구강건강에 대한 인식은 '입속 질병에 걸리지 않고 신체적·정신적·사회적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구강악안면 상태'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전신건강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관점으로 진화했다.
매년 6월9일은 '구강보건의 날'이다. 6과 9란 숫자는 어린이의 첫 영구치인 어금니가 나오는 6세의 6과 어금니(臼齒·구치)의 구(9) 자를 의미한다. 이날은 구강 보건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정한 법정 기념일이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구강보건협회, 서울시치과의사회 등 관련 단체들이 기념식과 전 국민 치아·구강건강 캠페인을 벌인다.
치아 및 구강건강을 좀먹는 대표적인 질환이 치은염 및 치주염, 이름하여 치주질환(잇몸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외래 다빈도 상병 통계'(2020년)에 의하면 '치은염 및 치주염' 환자 수는 약 1637만 명으로 2019년에 이어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1700만 명을 넘어서며 '국민병 1호'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약 10년 전인 2014년에는 1290만 명(9위)이었는데, 당시 이것도 매우 많은 숫자로 주목받았던 바 있다.
이처럼 치주질환은 치아 및 구강건강, 다시 말해 구강 보건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단순히 구강질환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신질환과의 연관성도 계속 밝혀지고 있다. 한국이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치주질환은 건강한 노년, 행복한 노후를 위해 예방과 조기진단, 그리고 적극적인 치료에 힘써야 하는 '핫이슈'로 등장했다.
치주 조직은 치은, 치주인대, 치조골로 이뤄져 있다. 치은은 잇몸을 뜻하며,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연조직으로 치아를 보호한다. 치주인대는 치아와 잇몸을 강한 결합력으로 부착시켜 주는 조직으로, 음식을 씹을 때 생기는 압력을 완충해 준다. 치조골은 치아의 뿌리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잇몸뼈를 말한다.
치주병 환자, 당뇨병 잘 걸려
치주병은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 조직인 잇몸과 뼈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크게 치은염과 치주염으로 나뉜다. 치은염은 염증이 치은(잇몸)에만 국한된 형태이며, 가벼운 질환으로 적절히 치료하면 비교적 회복이 빠르다. 하지만 통증이 별로 없어 소홀히 하기 쉬운 탓에 방치하면 치주염으로 악화하기 쉽다. 치주염은 치은에 생긴 염증이 치주인대나 치조골(잇몸뼈)까지 퍼진 상태다.
국내외 다양한 연구 결과, 치주병을 일으키는 세균과 그 독소는 잇몸 속의 혈관으로 침투해 혈관·림프관(임파선)·신경관 등을 따라 온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심혈관계질환, 폐질환, 뇌졸중, 치매, 당뇨병, 당뇨합병증, 췌장암, 류머티스 관절염 등을 잘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 특히 치주병이 있는 환자는 당뇨병에 잘 걸리며, 당뇨병이 있는 경우에도 치주병이 악화할 수 있다.
대표적인 연구 내용을 살펴보자. 대한치주과학회에 따르면 심혈관질환이 없는 국내 약 24만 명의 4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9.5년 추적 관찰한 결과, 하루 2회 이상 칫솔질과 연 1회 이상 스케일링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각각 9%, 14%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건강검진을 받은 약 47만 명에 대한 연구에서는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사람에 비해 구강검진을 받은 사람들은 심혈관질환이 10% 낮게 나왔다. 대한구강보건협회에 따르면 잇몸병(치주질환)이 없는 약 860만 명, 잇몸병을 가진 약 100만 명을 대상으로 건선 피부질환 발생을 9년간 추적 관찰한 국내 연구 결과, 치주질환이 있는 경우는 건선 발생 위험이 11%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치주질환이 있으면서 흡연까지 하는 경우 건선 발생 위험은 26.5%로 껑충 뛰었다. 이런 연구들은 구강 보건이 건강한 인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요즘은 임플란트가 치아 수복에 가장 대중적인 기술로 자리 잡았다. 고비용이 들어가는 임플란트 치아는 치주질환에 매우 취약하다. 우선 자연치아에서 세균 감염을 막아주는 치주인대가 없다. 주위 조직에 염증이 발생하기 쉬운 여건이다. 게다가 신경조직이 없어 통증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붓거나 출혈 등의 징후가 나타나기 전까지 염증 여부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수백만원을 들여 수복한 인공치아가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따라서 임플란트를 한 사람은 매일 규칙적이고 올바른 양치질을 통해 구강 위생을 유지하는 기본 수칙에 매우 철저해야 한다. 정기적인 치과 검진 또한 필수다.
1년에 두 번은 치과 방문해야
구강건강을 위해 평소 어떤 습관을 꾸준히 실천해야 할까. 치주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플라크를 잘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칫솔모가 닳거나 모양이 변형된 경우 플라크를 깨끗이 제거할 수 없다. 치과에서 정기 검진과 스케일링을 받는 것도 치주질환 예방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사 후나 취침 전에 꼼꼼히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특히 사랑니나 어금니 중 가장 안쪽에 있는 치아는 일반 칫솔이 잘 안 닿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신경 써 닦아야 한다.
치주과학회는 '3·2·4 수칙'을 강조한다. 첫째, '하루 세 번(3) 이상 칫솔질'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구석구석 이를 닦아야 하며 식사 후뿐만 아니라 자기 전에도 칫솔질을 하는 것이 좋다. 둘째, '일 년에 두 번(2) 스케일링'이다. 1년에 2회 이상 구강건강 상태를 점검하자는 의미다. 정기적인 치과 방문을 통해 잇몸 상태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담았다. 셋째, '사이사이(4) 치간칫솔'이다. 칫솔질뿐만 아니라 치실·치간칫솔 등 보조기구를 활용해 꼼꼼하게 구강건강을 관리해야 함을 의미한다.
구강보건협회는 잇몸 중심으로 양치하는 표준잇몸양치법과 '0-1-2-3 양치 습관'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기존 '3-3-3 법칙(하루 3번, 식후 3분 이내, 3분 이상)'의 한계를 극복해 보자는 캠페인이다. 표준잇몸양치법은 칫솔모를 잇몸선에 45도 각도로 위치시키고, 제자리에서 5~10회 미세한 진동을 준 후 손목을 사용해 잇몸에서 치아 방향으로 회전시켜 쓸어내듯이 양치하는 방법을 말한다. 또한 0-1-2-3 양치 습관은 잇몸 자극 없이(0), 식후 1분 이내, 2분 이상, 하루 3번 이상 양치하는 습관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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