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 가수보다 노래하는 사람”
나만의 음악색으로 한겹씩 덧칠한 작품들
음악의 힘은 장르에 국한하지 않음 깨달아
솔로 활동 마무리되면 라포엠으로 새 앨범
“조용히 별을 머금은 듯 새벽이 내려, 세상은 흰색 모래에 잠든 사막 같아, 여러 계절이 알려준 우리 얘길 담아, 첫 발자국 떼 걷고 싶어.” (‘하얀 사막’ 중)
쉴 새 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지난 3년간 일주일도 쉬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남성 사중창단을 뽑는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3’(2020년)에서 결성된 크로스오버 그룹 라포엠으로 우승한 후 달라진 ‘삶’이었다.
유채훈(34)은 30대가 돼서야 이름을 알렸다. 오래 전부터 일 디보와 안드레아 보첼리를 동경해 ‘팝페라 가수’를 꿈꿨다. 두 번이나 크로스오버 그룹으로 활동했으나, 이렇다 할 자취를 남기진 못했다. 40~50대 여성 시청자를 ‘단단한 팬덤’으로 업고 왕좌에 오르니, 인생이 달라졌다. 우승 첫 해엔 내달렸고, 다음 해엔 그로기 상태가 됐다. “많이 지쳤고, 그 생활에 익숙해지며 조금은 교만해지기도 하더라고요.” 4년차인 올해, 그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못해 서른 넘어서도 고생했는데, 복에 겨워 징징댔구나 싶더라고요. 순간순간, 하루하루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마음을 담은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누구도 무엇도 아닌 솔로 가수 유채훈. 두 번째 미니앨범 ‘임파스토’(Impasto)가 발매되던 날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전작이 시놉시스였다면, 이 앨범은 서곡”이라고 했다. 이제야 유채훈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조금씩 덧칠해 조심스럽게 스며드는 음악=유채훈의 행보엔 그를 둘러싼 환경과 음악에 대한 고민이 묻어있다. 첫 솔로 음반 ‘포디움’이 발라드에 도전한 대중음악 앨범이었다면, 이번엔 크로스오버 색채가 한두 겹 더해졌다. 앨범의 제목부터 그 의미를 담았다. ‘임파스토’는 이탈리아어로 ‘반죽이 된’이라는 뜻이다. 여러 색의 물감을 반죽해 덧칠하듯, 그만의 음악 색을 한겹씩 칠해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하얀 도화지에 마음껏 칠할 수 있는 첫 단추 격인 앨범이에요. 여기에서 확장해 개연성을 이어가고 싶어요. 매 앨범 확확 바뀌는 변신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심스럽게 스며들고 다가서려고 해요.”
새 앨범엔 다양한 음악들이 빼곡히 채워졌다. 유채훈이라는 보컬리스트에 대한 작곡가들의 시선이 모여 한 장의 음악으로 채워졌다. 그는 “모두가 해석하는 시선이 달라 한 곡 한 곡 모두 다른 음악들이 나왔다”고 했다.
‘하얀 사막’을 비롯해 팝 발라드 ‘피시스’(Pieces), 일렉 기타 연주에 이탈리아어 가사가 어우러진 ‘일 푸지티보’(Il Fuggitivo) 등 5곡이 담겼다. ‘일 푸지비토’는 “한글 가사로 쓴 곡이었으나, 이탈리아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유채훈의 판단에 번역 과정을 거쳤다. 학교 선배의 도움을 받아 “노래하기 적합한 이탈리아어”로 바꿔나가는 과정이었다.
‘동행’은 ‘유채훈 스타일’의 곡은 아니었다. “어쿠스틱한 사운드로 대중가수가 불러야 할 곡”이라는 생각이었다. 공연장의 제일 뒷좌석까지 소리를 전달하는 ‘공연형 가수’에게 힘을 뺀 편안한 창법의 노래는 영 익숙하지 않았다. “부르면서도 이게 맞나 싶을 만큼 어색하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이내 ‘생각의 전환’을 가져온 곡이다.
“공연 가수이다 보니 노래는 경연식으로 크고 자극적이고 웅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더라고요. 그런데 지난 앨범에서도 가장 많이 스트리밍한 음악은 오히려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산책’이었어요. 음원으로는 편안한 음악을 많이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장르에 갇히지 않은 ‘노래하는 사람’ 유채훈=유채훈의 목소리를 알린 ‘팬텀싱어’는 독특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일종의 ‘틈새시장’이었다. 성악 기반의 크로스오버 그룹을 찾는다. 최근 막 내린 시즌4 결승의 대국민 투표엔 약 40만 명의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표를 던질 만큼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2016년 등장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전엔 없던 ‘장르’가 툭 튀어나와 대중 앞에 섰다. 그럼에도 크로스오버는 여전히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었다.
“시즌4까지 나오다 보니, 크로스오버가 한 장르처럼 정리가 되는 느낌이에요. 크로스오버는 어떤 음악이라는 하나의 이미지가 생기고 있다는 것도 몸소 느끼고 있고요. 그렇지만 메이저 장르는 아니다 보니, 음악방송에 나가면 여전히 낯설어하는 분들이 많아요. 여전히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것은 데뷔초 가장 ‘강력한 무기’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독이 되기도 한다. 유채훈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은 1~2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역시 길어야 2~3년 정도인 것 같다”고 했다. 게다가 한 마음으로 뭉쳤음에도, 오래도록 팀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라포엠은 “모두에게 절박함과 절실함이 있고”, 여전히 “변치않은 마음과 팬들의 동기부여”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유채훈의 솔로 활동이 마무리되면 라포엠의 새 앨범 소식도 만날 수 있다.
지난 시간, 모든 날들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팬텀싱어3’ 우승팀으로의 증명, 크로스오버 장르에 대한 증명, 가수로의 증명.... “어딜 가든 평가를 받고, 늘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시간이 길었어요.”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하게 서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인지 모든 음악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분들이 많다”며 “마음을 열고 그저 편안히 봐달라”는 마음도 비쳤다.
누군가에게 유채훈의 태생은 ‘크로스오버 가수’일지 모르나, 그는 자신의 장르를 가두진 않는다. 오래도록 정체성을 고민할 때도 있었다. 방송에서 기존 곡의 커버와 재탄생에만 집중해야 할 때, “난 뭘 하는 사람일까” 스스로 묻기도 했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노래하는 사람, 유채훈’이라고 말한다.
“결국 음악은 좋으면 되는 것 같아요. 음악의 힘은 장르에 국한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저 듣고 소통하고 마음을 건드리는 데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 크로스오버 가수가 아니라, 그냥 노래하는 사람이에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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