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4]
[유라시아=뉴시스] 윤종석 박성수 부부화가 = 5월 27일을 지나며 시베리아의 주요 중공업도시인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jarsk)로 가는 길에 많은 기찻길을 만났다. 기차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서 가고 있었고 기찻길을 건너기 위한 대형덤프트럭들과 우리 같은 작은 차들도 길고 길게 늘어서기를 반복했다. 기차를 보며 우리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길을 따라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르쿠츠크의 살벌한 날씨와 잘 씻지 못한 피곤함으로 우리는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음식도 해 먹을 수 있는 비즈니스호텔에서 이틀간 머물기로 했다. 우선 러시아에서 호텔 예약 시 편리하다는 오스토로보크(ostrovok) 앱을 통해 검색 후 직접 찾아갔다. 러시아에서 서로 대화를 어찌하나, 구글 번역이 큰 역할을 하겠지만 짧은 순간엔 액션과 백치 아다다가 필요하다.
아~, 하고 난처해하다가 한번 씨익 웃고는 짧게 ‘뚜리스트(turistㆍ여행자)’ 하고 번역기에 타다닥 치고는 휙 보여주면 되겠다 싶었지만,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쪽은 여전히 러시아어로 뭐라뭐라 해오고…. 다시 아~~, 하고 씨익 웃고는 번역기를 보이면 상대는 여하튼 알아서 해준다. 뭐가 잘 맞아떨어지는 날에는 “다다다(ДаДаДа=yes yes yes)”만 외치면 된다.
작은 일까지 한 번에 쉽게 통과하지는 못하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수월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다. 안 그래도 뭐 할 수 없고. 그래서 우리는 아파트형 호텔을 이틀 빌렸고, 고기도 구워 먹고 된장국도 끓여 먹었다. 며칠 있으려니 몸과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이름난 산 ‘Torgashinskiy Khrebet’에 갔는데 수백만 년 전에 이곳이 바다였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과 같은 이곳에는 러시아 가족들이나 연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계단을 완만하게 설치해 높은 산을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도록 해놓았고, 올라갈수록 정경이 정말로 장관이었다. 열심히 산을 오르자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수백만 년 전의 바다를 상상해보니 더욱 남다른 감흥이 전해온다.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산 위에서 물과 비스캣을 나눠 먹었다. 쉼 없이 달려온 여행 중 조금의 여유를 찾은 기분이다.
다시 산에서 내려와 미술관으로 향했다. 개인 소장품으로 설립한 시내의 작은 미술관 ‘Museum of painter B. Ya. Ryauzov’를 먼저 들렀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구글 검색에 나오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라 할지라도 막상 찾으려면 도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어느 때는 쉽게 만나질 못한다. 간혹 건물 안에 없는 듯 숨어 있어, 무겁고 큰문을 힘껏 밀어 보지 않는 이상 만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거리를 걸어 다니며 우연을 기대하며 찾아보는 이 모든 행위 자체가 의미 있는 여행의 과정이 된다.
도시가 조금씩 바뀌고 조금씩 커지면서 미술관의 작품들 수준도 더 좋아지고 있어 마음이 들떴다. 거리를 걷다 만난 작고 예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 사서 벤치에 앉아 마시고 다시 미술관으로 향하는데, 이번 여행의 의미를 더 깊게 만들어 준 적십자사 건물을 러시아 크라노야르스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이번 여행길에서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대한적십자사 덕분에 든든했다. 튀르키예에 도착해서 지진피해 어린이를 위한 아이프칠드런(aif children) 예술나눔 등 대한적십자사 인도주의 사업 홍보를 위해 대한적십자사에서 차량에 로고를 부착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었다.
조금 멀리 걸어가 제법 큰 미술관 ‘Ploshchad' Mira’에 도착했다. 러시아의 역사 흐름, 러시아인들의 생활상, 그리고 전쟁에 관한 작품들로 이루어진 전시를 하고 있었다. 오래전 어느 전쟁 중에 유품으로 발견된 한 군인의 편지에서 “사랑하는 가족. 집으로 가고 싶다.”라는 문구가 눈에 밟혔다.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하면 안 되는 것이며, 그 상처는 힘없는 약자들에게 더 가혹하다는 생각이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미술관을 나오며 지금의 삶에 감사하며 걷는데, 어느 성당에서 종소리가 요란했다. 우리를 환영해 주는 걸까? 환영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음 도시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를 향했다. 시베리아의 교통과 과학, 산업의 산실로 알려진 노보시비르스크에 가는 동안 우리의 차 ‘칠공이’에게 4륜 이상 메시지가 다시 떴다. 우리 차는 2012년식 ‘볼보xc70’이다. 무려 34만 킬로에서 횡단을 시작해, 지금은 36만을 향해 가고 있다! 우연찮게도 그동안 탄 세 대가 모두 볼보였다. 이번 인생의 여행기를 연로한 ‘칠공이’와 할 줄이야.
이르쿠츠크에서 정비했음에도 다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재정비 받을 수밖에. 이르쿠츠크에서 한 정비 내역서를 제출하고 차를 맡긴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시내 중앙으로 나와 노보시비르스크 주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차를 가지고 골목 곳곳을 보기가 쉽지 않으니, 걸어 다니는 지금이 오히려 도시의 속내를 만끽할 수 있었다. 미술관의 작품들을 거듭 볼수록 러시아만의 색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 흐뭇했다. 황량한 들판의 그림들, 눈보라가 부는 풍경들, 색들은 더욱 선명해졌고, 소재도 더 다양한 그림들을 만나게 된다.
미술관을 나와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 발레극장을 찾았다. 그 유명한 ‘백조의 호수’ 포스터를 보고 찾아간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머무는 날에는 시작되지 않을 때였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다시 도전해보자 결심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오페라극장 앞 근사한 공원 의자에 앉아 주변의 가판에 100루블 하는 딸기 한 봉지를 사서 윤 작가와 상큼하게 먹었다. 바람은 벌써 따뜻해졌다. 햇살은 뜨겁고 그늘은 시원하다. 노보시비르스크를 떠나 옴스크(Omsk)로 갈 때는 더위도 더욱 느껴질 것이다. 시차도 1시간에서 2시간, 3시간, 이제 4시간 차이로 벌어질 것이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길에 오른 느낌이다.
점심을 먹다 ‘칠공이’가 정비됐다는 메시지를 받고 다시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전화를 해봐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번역할 수 있는 문자메시지로 보낸 센스에 잠깐 웃음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노보시비르스크를 빠져나와 앞서간 횡단팀이 보내준 최고의 다음 차박지 트럭카페로 향했다. 매우 깨끗하고 물론 세탁에 샤워는 당연하며, 세탁건조기가 있다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빨래는 다시 가득 쌓여 있었기에 나는 흥분했고, 도착하자마자 샤워부터 마치고 빨래를 맡겼다. 샤워 200루블, 세탁·건조 300루블.
머리를 수건으로 시원하게 털며 밖으로 나오는데, 어느 날 어느 길에선가 마주친 유럽 차가 떡 하니 주차장에 있는 것이다. 어? 하는데 한 할머니가 내리신다. “Hi~” 하고 인사하니, 반갑게 인사하신다. 어디서 왔니, 나는 어디서 왔다, 여행 중이다, 나도 그렇다…. 블라블라~. 할아버지 한 분 내리시며, 차 구경도 시켜 주시길래 우리 칠공이도 소개했다. 두 분은 독일분이고 우리와 같은 여행을 하고 계셨다. 로버트 벨카, ‘WhatsApp’으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언젠가 길에서 다시 만나겠지? 건강히 안전하게 여행하세요! 로버트~. 여행에서 우연이란 이름으로 다시 만날 운명을 기대하며, 다음날 우린 다시 옴스크로 향했다.
그렇게 31일, 러시아 8대 도시로 꼽히는 옴스크에 도착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의 최종 목적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가는 길에는 많은 도시가 있고, 그중 몇 개는 큰 도시들이며, 큰 도시들은 늘 볼만한 미술관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횡단 길에서 빠져나와 이 도시 저 도시를 거치며 구경하는 재미는 직접 운전하는 여행의 장점 중 장점이다. 재빨리 도시에 입성하여 옴스크미술관으로 향했다. 하늘색 고운 미술관 건물은 좋은 날씨의 하늘과도 잘 어울렸다.
생각보다 큰 미술관의 규모에 놀랐고, 이전 도시들의 지역 미술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품 조명을 발견하며, 뭔가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미술관 관람에 있어 여러 공간으로 나뉜 방마다 지키는 직원들의 전시 안내도 매우 적극적이고 섬세해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작품 관람 후 나오는 길에 미술관 합창단의 짧은 화음을 들을 수 있어 마음이 한층 들뜨게 됐다. 밖으로 나와 몇군데 더 들러보다 러시아 여학생 한 명을 만났는데, 옴스크에 한국어과가 있는 대학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인사해주며 말을 건네는 일은 참 감사한 일이다.
옴스크에서 하루 쉬기보다 다음 도시로 이동하고 싶어져 출발하려다가 저녁으로 사슬릭(shashlik)을 먹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선 숯불 꼬치구이로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양고기, 여러 가지 야채 등을 꼬치에 끼워 구운 후 달짝지근한 빨간 소스나 양파와 먹는 것이다. 오로지 구글 이미지로 찾아간 레스토랑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허기가 찾아와 이 세상 피곤을 다 짊어진 표정을 하며 도시를 빠져나오던 찰나 ‘사슬릭!!!!!’ 간판을 발견했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가게를 발견, 무조건 차를 돌려세웠다.
문제는 가게가 두 개. 나란히 붙어 있는데 어디가 사슬릭 가게냐는 거다. 윤 작가가 재빨리 사슬릭 이미지를 검색했고, 나는 이것을 가게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보여줬다. 눈빛으로 “사슬릭!!! 여기서 사??” 그러니, 씨익 웃으며 나에게 정말 베스트는 옆 가게란다. 그래? 그림은 없고, 꼬부랑글씨만 잔뜩 쓰인 메뉴판을 보고 있자니, 그 오빠야가 슬쩍 다시 온다. 손가락으로 1~2번을 누르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래, 이거구나! 고맙다.” 그러니, “근데 너 여기서 뭐해?” 그런다. “나? 여행 중이지.” 다시 엄지 척, “You are so cool~”. 그래그래 나 ‘쏘쿨’이고, 너 영어 ‘So good’이야.
친절한 오빠와 바이바이 하고는 사슬릭이랑 사뿐하게 차에 올라타선 한입, 윤 작가 한입 먹으며 “아~, 이건 밥이랑 먹어야 하는데~” 그러니, “아니야 보드카랑 먹어야 하는데~~~” 오늘은 그래서 투먼으로 가는 길이 좋았고, 트럭카페에서 잤다.<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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