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처럼 사업을 쏘는 이 남자…"6개월 걸리면 망해요" [그래서 투자했다]
한경 긱스(Geeks)가 출범 1주년을 맞아 [그래서 투자했다] 코너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심사역이 발굴한 스타트업과 투자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안혜원 카카오벤처스 심사역이 캠핑 올인원 플랫폼 '캠박' 운영사 룬샷컴퍼니 극초기에 투자하게 된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국 스타트업 씬에서는 린(Lean) 스타트업은 하나의 '바이블'로 자리 잡았습니다. 린 방법론은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출시하는 대신 최소한의 기능만을 갖춘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출시하고 고객의 피드백을 통해 지속해서 개선해 나가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2년 전만 하더라도 린한 제품 개발 방식을 적용하는 팀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2명 중 1명이 완벽주의자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린 스타트업 방법론은 한국인들의 완벽주의적인 성향과는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최선을 다하자는 학습된 장인정신 탓에 ‘기능 하나만 더 추가해볼까’ 하는 유혹에 시달립니다. 출시는 느려지고 실패의 기회비용은 상승합니다. 긴 시간을 들여 앱까지 출시한 후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속도전이 생명인 스타트업은 이미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지 오래인 겁니다.
"사업은 양궁과 비슷합니다"
카카오벤처스는 ‘되는 이유’ 하나에 투자하는 하우스입니다. 2021년도 여름, 룬샷컴퍼니의 되는 이유 하나는 “완벽주의를 버리고 더욱 가볍고 빠르게 실행하는 팀”이었습니다. 대부분 팀이 가볍게 테스트한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가볍지 않았거든요. 어느 날 카카오벤처스 인턴 트래비스가 사설탐정 중개 서비스에 관심이 있냐고 하더군요. 깜깜히 모르는 시장을 좋아하는 저는 단번에 만나보자고 했고, 그렇게 룬샷컴퍼니의 홍정완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미팅 후 든 생각은 “원하던 팀을 찾았다!” 였습니다. 당시 사설탐정 합법화로 인한 시장의 균열을 파고드는 분이었습니다. 이 분야에서 설득이 어려운 공급자들을 플랫폼에 온보딩하고, 매출까지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개월이었습니다. 장동욱 카카오벤처스 이사님과 두 번째 미팅을 함께했을 때도 놀라운 실행력을 보여준 팀이었습니다. 저는 하루빨리 투자팀원들에게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딜팀은 룬샷컴퍼니의 사업 타당성을 검증하는 프레임워크와 빠르게 실행하는 속도에 주목했습니다. 산업, 고객, 제품 구현 수준 등 점수 리스트를 만들어 총점이 일정 점수 이상이면 MVP를 준비합니다. 실행할 때는 최소한의 수준만 2주 이내에 만들어 빠르게 실행합니다. “사업은 양궁과 비슷하다”라는 홍 대표님의 표현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 발을 조준하는 데 6개월씩이나 걸리면 망하고, 쏠 땐 화살처럼 빠르게 쏴야 하죠.
첫 만남, 대표님은 당장 투자유치 의사가 없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희 투자를 받아주실까 싶어 몇 주마다 미팅을 잡았었습니다. 탐정 서비스 현황을 공유하던 미팅 막바지쯤, 홍 대표님이 슬쩍 ‘캠박’이라는 캠핑카 렌트 중개 서비스도 새롭게 시도해 보고 있다며 보여주시더군요.
캠핑 시장, 규제 완화가 만들어낸 기회
2021년 하반기는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캠핑 시장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이미 캠핑 문화가 성숙기에 접어든 미국·캐나다에선 캠핑카의 높은 가격과 낮은 가동률로 인해, 레저용 차량 렌트 서비스를 하는 아웃도지(Outdoorsy) 플랫폼이 널리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캠핑 시장은 사업 타당성 검증 프레임워크에서 충분히 높은 점수를 받았고, 이에 따라 빠르게 시도할 수 있는 캠핑카 렌트 중개 서비스 ‘캠박’을 2주 만에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렌트 중개 서비스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캠핑카 공급량이었습니다. 성수기에는 예약 자체가 불가능했고, 기업에서도 직원 복지 용도로 캠핑카 공급을 요청하는데, 공급할 수 있는 캠핑카도 없었죠. 높은 가격과 표준화되지 않은 서비스도 문제였습니다.
룬샷컴퍼니는 캠핑카 공급 문제를 제대로 풀어보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캠핑 시장에서 캠핑 콘텐츠나 캠핑용품 커머스는 오래 존재해왔지만,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인 캠핑카 공급의 접근성이 낮다면 장기적인 경쟁력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행히 2021년도 9월부터 캠핑카로 개조할 수 있는 차량 군의 평균 가격대가 내려가고, 캠핑카 차고지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캠핑카 공급이 증가할 기반이 마련됐죠. 성장하는 시장, 규제 완화로 인한 시장의 균열 등 스타트업이 파고들어 성장을 만들어낼 기회가 보였습니다.
캠핑카가 크다고 생각하셨나요? 요새는 쉽게 운전할 수 있는 레이 캠핑카도 유행입니다.
캠핑 문화를 바꾸는 슈퍼 플랫폼
룬샷컴퍼니가 사설탐정 중개 서비스를 접고 캠핑 시장에 집중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진정으로 성장하는 회사는 문화를 바꾸는 회사라고 생각해요. 캠핑은 시장 규모가 크다는 이유도 있지만, 저희가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제대로 도전해보고 싶어요. 모빌리티 사업을 하면서 아쉬웠던 건 차를 이동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는 거였죠. 자율주행 시대에서는 자동차도 공간화된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어요.”
2021년 9월, 룬샷컴퍼니가 그리는 캠핑 슈퍼 플랫폼은 아이디어 단계에 불과했지만,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은 투자 결정을 내렸습니다. 딜팀은 룬샷컴퍼니 팀이 보여줬던 시장 검증 속도와 실행력이 캠핑 시장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구독 서비스를 시작하며 캠핑의 시작과 끝을 완성하다
캠핑 문화를 바꾸는 것은 곧 캠핑의 시작부터 끝을 같이 설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소 추천, 용품 구매, 캠핑카 대여, 구매까지 모두 커버해야 하죠. 그러나 가장 시급한 문제였던 캠핑카 공급을 위해서는 차량과 차고지를 확보해야 했으며, 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웠습니다.
룬샷컴퍼니는 먼저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매끄러운 캠핑 경험을 구현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캠핑카 렌트만 중개하던 캠박을 차박지 검색과 아카이빙, 차량 렌트까지 가능한 캠핑 앱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캠핑 커머스 '터틀즈'까지 운영했죠. 캠박 앱은 출시 한 달 만에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 3만 명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뒷단에서는 좀 더 매끄러운 캠핑카 공급과 대여 경험에 집중했습니다. 룬샷컴퍼니는 직영 캠핑카를 확보하고, 캠핑카 전용 주차장을 구축했습니다. 추후 렌터카 회사를 포함한 다양한 오프라인 파트너들과 협업하면서 온라인에서만 운영하는 것보다, 플랫폼 회사가 직접 마중물을 부어 더욱 속도를 내고, 오프라인 환경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판단이었습니다.
올해 초, 룬샷컴퍼니는 자체 캠핑카 회원권 서비스를 선보이며 캠핑카 소유의 문제해결까지 도전합니다. 캠핑카 가격은 7000만원부터 1억원 이상에 달하지만 연간 가동 횟수는 10회를 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캠핑 애호가들이 캠핑카를 구매하고 싶어 하죠.
룬샷컴퍼니의 캠핑카 회원권은 직접 구매 대비 가격은 5분의 1 수준이지만 유지보수 부담은 없고, 렌트 대비 예약 편의성이 높습니다. 기업 복지 담당자들에게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캠핑카는 일반 법인차량과 다르게, 회사에서 구매하더라도 유지보수 부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휴가지 원격근무 문화가 확산하면서 기존 리조트와 콘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임직원 복지 시장에 캠핑카 복지 상품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꿉니다
룬샷(Loon shot)은 비현실적이라 외면받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의미합니다. 현재로서는 캠핑카를 구독하거나, 기업의 복지에 캠핑카 대여가 있는 것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애플이 노키아에서 외면받던 아이디어에 착안해 아이폰을 만들어낸 것처럼, 룬샷컴퍼니의 꿈 역시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180도 변화시켜 다시는 이전의 방식을 상상하지 못하게 하는 아이디어들이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해왔다는 것을 저희는 이미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원천에는 2021년 여름에 보았던 룬샷컴퍼니의 사업 전개 능력이 있습니다. 홍정완 대표는 카카오모빌리티에서 다양한 오프라인 이해관계자들과 협업을 통해 블루와 벤티를 론칭하는 업무를 담당했고, 이전에는 하이퍼커넥트와 우버에서 단기간에 신규 서비스를 출시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신사업 경험이 팀을 캠핑이라는 새로운 시장으로 이끌었고, 모빌리티 경험 덕분에 캠핑카 시장의 수요와 공급 논리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캠핑은 시작일 뿐입니다. 룬샷컴퍼니는 골프·요트처럼 누구나 즐기고 싶지만, 접근성이 낮고 수요 공급과 정보의 불균형이 심한 분야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아가며, 레저·아웃도어 분야의 대중화를 이끌어가려는 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룬샷컴퍼니가 대한민국 캠핑 슈퍼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그날까지,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은 나머지를 채워주며 노력하겠습니다.
안혜원 카카오벤처스 심사역 ㅣ 2020년도부터 카카오벤처스 투자팀 심사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서비스팀 소속으로 기술을 통해 우리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는 서비스 스타트업에 집중하여 투자합니다. ‘초기에는 팀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빠른 실행력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집착하며 프러덕트를 만들어내는 팀들에게 큰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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