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알리는 키다리 ‘찐’ 파랑 꽃… 눈 즐겁지만 독성은 주의[박원순의 꽃의 문화사]
꽃봉오리를 서양에선 돌고래, 한국에선 물 찬 제비로 형상화… 영국 찰스 국왕 “흠잡을 데 없는 꽃” 찬사
스카이 블루서 짙은 인디고까지 ‘파랑의 변주’ … 꽃잎 입에 물었다간 근육경련·호흡곤란 일으킬 수도
봄꽃들의 향연이 끝나가는 정원에 수직으로 높게 꽃줄기를 올려 파란색 꽃들을 가득 피워 내는 식물이 있다. 여름을 시원하게 맞이하게 해주는 델피니움이다. 선명한 ‘사파이어 블루’ 같은 색깔을 보여주는 델피니움을 대체할 식물은 많지 않다. 어떤 품종은 2m 가까이 자라나 범접하기 어려운 위용을 자랑하기까지 한다. 열정적인 가드너로도 유명한 영국의 찰스 국왕은 수년 전 세계 최고 권위의 첼시 플라워 쇼의 개막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통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델피니움을 꼽으면서,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격조 높게 차려입은 흠잡을 데 없는 꽃이라 하였다.
델피니움이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로 돌고래를 뜻하는 델피니온(delphinion)에서 유래했다.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 모양이 꼭 돌고래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델피니움은 주로 북반구와 아프리카 고산지대에 걸쳐 300종 정도가 분포한다. 한국에도 몇몇 델피니움 종류가 자라는데 제비고깔, 큰제비고깔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 눈에는 꽃봉오리가 물 찬 제비를 닮았고, 꽃이 활짝 펼쳐지면 고깔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한자어로는 날아가는 제비를 닮았다는 뜻의 비연초(飛燕草), 혹은 비취색을 띠는 참새라는 뜻의 취작(翠雀)이라고 한다.
‘트루 블루(true blue)’라고 하는 진짜 파란색은 자연에서 가장 드문 색인데, 델피니움은 그렇게 귀한 눈부신 파란색 꽃을 피우는 식물의 대명사다. 이 색깔은 꽃에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의 일종인 델피니딘 색소에 기인한다. 파란색이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중세 시대 이후부터다. 12세기 가톨릭 종교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의 옷이 푸른빛으로 그려졌고, 이후 여러 왕들의 의복과 문장에도 파란색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정원에서 델피니움을 재배한 기록은 16세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사파비 제국 제5대 황제였던 아바스 대제(1571∼1629)의 이스파한의 정원에도 델피니움이 자랐다.
오늘날 정원에 쓰이는 수많은 델피니움 품종들은 대부분 19세기 이후에 탄생했다. 그 중 엘라툼(Elatum) 그룹이 가장 인기가 많다. 아시아와 유럽의 온대 지방에 널리 자라는 델피니움 엘라툼(D. elatum)으로부터 유래된 품종들로, 1m가 넘는 큰 키에 화려한 꽃들과 함께 오늘날 정원에서 인기 있는 대부분의 델피니움 종류가 여기에 속한다. 19세기 프랑스 육종가 빅토르 르무앙(Victor Lemoine)이 주도적으로 많은 품종들을 만들어 냈다.
다음으로 퍼시픽 하이브리드(Pacific Hybrids) 그룹은 엘라툼과 비슷하지만 일년초 혹은 이년초로서 크기가 더 작다.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의 육종가 프랭크 레이넬트(Frank Reinelt)가 깨끗하고 거의 차가운 느낌의 푸른빛부터 짙은 인디고 색상까지 다양한 색깔의 품종들을 탄생시켰다. 고대 브리튼 지역에서 기사들과 함께 제국을 건설했다는 전설의 왕의 이름을 딴 ‘킹 아서(King Arthur)’라는 품종도 유명하다.
델피니움 가운데 가장 강렬한 파란색 꽃을 자랑하는 그란디플로룸(Grandiflorum) 그룹도 있다. 시베리아, 몽골, 중국뿐 아니라 한국의 북부 지방에 자생하는 제비고깔(D. grandiflorum) 종류에서 유래되었다. 엘라툼에 비해서는 훨씬 더 작으며 하나의 꽃대가 아니라 관목처럼 가지를 치며 하늘하늘 우아하게 꽃들을 피운다. 햇빛을 받으면 형광으로 보일 정도로 진한 파랑부터 아주 옅은 하늘색까지 블루 계열의 다양한 색상 팔레트를 보여 준다. 그래서 품종 이름도 ‘블루 버터플라이(Blue Butterfly)’, ‘블루 미러(Blue Mirror)’, ‘블루 피그미(Blue Pygmy)’, ‘스카이 블루(Sky Blue)’와 같이 ‘블루’라는 단어가 들어간 품종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벨라돈나(Belladonna) 그룹은 델피니움 엘라툼과 델피니움 그란디플로룸 사이 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품종들이다. 1m 정도 자라는 꽃대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줄기로 가지를 치며 꽃들도 성기게 피는 특징이 있다.
독일의 작가이자 육종가, 재배가였던 칼 푀르스터(1874∼1970)는 델피니움의 파란색에 빠져들어 1907년부터 자신만의 델피니움 컬렉션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선명하면서도 빛이 나는 푸른빛 꽃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는데, 1912년 자신이 원하던 순수한 파란색을 지닌 ‘아널드 뵈클린(Arnold Bocklin)’이라는 품종을 탄생시켰다. 1920년에는 그의 첫 번째 엘라툼 품종인 ‘베르히멜(Berghimmel)’을 선보인 후, 1929년엔 새로운 델피니움 품종들을 소개하는 책 ‘델피니움: 이미지와 경험으로 보는 열정의 이야기’(The New Delphinium: The Story of a Passion in Image and Experience)를 출판했다. 포츠담에 위치한 그의 보르님 농장에서는 유명한 ‘킹 오브 델피니움(King of Delphinium)’을 비롯하여 약 서른 품종의 델피니움이 탄생했고, 순청색, 용담 같은 파란색, 수레국화 같은 파란색, 하늘색, 암청색, 담청색 등 가장 이상적인 푸른빛 델피니움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예술가로서 델피니움에 빠져든 사람도 있었다. 미국의 저명한 사진작가이자 화가였던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 1879∼1973)은 육종가이기도 했다. 엘라툼 그룹이 지닌 델피니움의 아름다움에 깊고 순수한 파란색 꽃이 접목된 새로운 품종을 만들고자 했다. 1911년에 그가 바라던 파란색 델피니움이 처음으로 꽃을 피운 이후 점점 더 육종 규모를 늘려 1930년대에는 10에이커의 땅에 약 5만 본에 이르는 델피니움을 재배했다. 그는 1935년 미국 델피늄협회 회장이 되었고 매년 델피니움 잡지를 발간했으며, 1936년에는 뉴욕 모마(MoMA) 현대 미술관에서 델피니움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사진작가로서 명성이 절정에 달했던 1938년 무렵, 그는 델피니움 육종에 전념하기 위해 사진계에서 은퇴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작은 델피니움 육종에 집중했다. 1965년엔 푸른 나비 같은 꽃들로 덮인 ‘코네티컷 양키(Conneticut Yankee)’라는 품종을 시장에 선보였다. 델피니움의 꽃은 파란색이 대표적이지만 보라, 빨강, 노랑, 하양도 있으며, 이색 또는 삼색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꽃대의 높이와 형태도 다양하고 꽃 자체의 모양도 컵 모양, 두건 모양, 홑꽃, 겹꽃 등 여러 가지다.
씨앗으로부터 델피니움 재배를 시작할 땐 마지막 서리 10주 전 파종 후 봄에 화분이나 화단에 옮겨 심는다. 심기 전에 토양을 일구고 퇴비를 적당량 섞어 준다. 약알칼리성을 좋아하므로 라임이나 재를 섞어 주면 좋다. 델피니움은 촉촉하고 시원한 환경에서 배수가 잘되며 비옥한 토양을 좋아하며, 최소 6시간 이상 햇빛을 받아야 잘 자란다. 델피니움은 꽃줄기 속이 비어 있어 강한 비바람에 쉽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므로 키 큰 품종은 지주가 필요하다. 어떤 품종은 주기적으로 잘라주면 여름 내내 꽃이 피고, 어떤 품종은 여름 초중반 꽃이 피고 진 다음 꽃대를 잘라주면 늦여름 초가을에 두 번째 개화기를 맞이하기도 한다. 다년생 델피니움 품종은 첫 번째 해에는 하나의 꽃대, 두 번째 해에는 세 개의 꽃대만 남겨 두고 잘라 주면, 십 년 가까이 살 수 있는 강한 뿌리를 형성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단지 삼사 년만 자란다. 델피니움을 키우며 꽃을 즐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델피니움은 클레마티스, 투구꽃과 같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만큼 독성 알칼로이드 물질을 지니고 있다. 씨앗이나 식물체를 섭취했을 때 메스꺼움, 구토, 설사, 근육경련, 호흡곤란 등 치명적 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사람뿐 아니라 소, 양과 같은 가축과 반려동물도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정원에서 주로 사용하는 델피니움 품종은 ‘가디언(Guardian)’, ‘오로라(Aurora)’, ‘매직 파운틴(Magic Fountain)’ 등이다. 키가 큰 델피니움은 대체 불가의 입체감과 색감을 주는 꽃이기에 주로 코티지 가든에 빠질 수 없는 꽃이다. 꽃병을 장식하는 고급 절화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델피니움은 우리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줄 뿐만 아니라, 생물들에게 꿀과 먹이를 제공하니 정원 생태계에도 이로운 꽃이다.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 큰제비고깔(Delphinium maackianum)
러시아,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 경기도 이북, 문경, 무주 등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 델피니움 종류다. 키가 90∼150㎝에 이르며 꽃줄기는 곧게 자라다가 위쪽에서 가지를 친다. 여름철에 총상 꽃차례를 이루며 보라색 또는 흰색 꽃이 핀다. 고산성 식물로 뜨겁고 건조한 환경에 약하므로, 통풍이 잘되고 토양 습도가 유지되는 반그늘 상태에서 재배하는 것이 좋다. 가을에 채취한 종자를 바로 뿌리거나, 저온 저장 후 이듬해 봄에 파종해서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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