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신종 우울증

2023. 6. 1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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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 하고 놀 때는 증상이 없다가 책임이 주어지면 무기력증이 도지는 사례를 두고 일본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신종 우울증'이라고 명명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을 관찰하면 신종 우울증 환자는 그리 심해 보이지 않는데도 "집중이 안 돼서 공부를 못 하겠다. 머리가 멍해서 일할 수가 없다"며 괴로워한다.

전형적인 우울증은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고 이내 불안감이 치밀어 오르는 반면 신종 우울증은 잠에서 깨어나도 이불 속에서 그저 멍하니 누워 있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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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때는 ‘멀쩡’… 책임 주어지면 무기력
“인생 한 방” 요행 좇는 사회가 낳은 병
좋아하는 일 하고 놀 때는 증상이 없다가 책임이 주어지면 무기력증이 도지는 사례를 두고 일본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신종 우울증’이라고 명명했다. 비슷한 사례를 두고 일본에서는 ‘도피형 우울’, ‘현대형 우울증’, ‘미숙형 우울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을 관찰하면 신종 우울증 환자는 그리 심해 보이지 않는데도 “집중이 안 돼서 공부를 못 하겠다. 머리가 멍해서 일할 수가 없다”며 괴로워한다. 심한 우울증 환자처럼 표정이 굳고 행동이 느려지지 않았는데도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가족에게 환자가 집에서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면 “방에서 게임하고 노트북으로 영화 보면서 낄낄댈 때는 멀쩡해 보여서, 방 정리도 좀 하고 집안일도 도우라고 하면 의욕이 없어서 괴로운데 자기를 더 힘들게 만든다며 화를 낸다”고 했다.

신종 우울증 환자는 뚜렷한 괴로움보다는 막연하게 “피곤하다, 집중이 안 된다. 생각이 잘 안 된다”라고 호소한다. 그들의 감정은 슬프기보다는 ‘흐릿한’ 느낌에 더 가깝다. 전형적인 우울증은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힘들다고 하는데 신종 우울증 환자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는 양상을 보인다. 전형적인 우울증은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고 이내 불안감이 치밀어 오르는 반면 신종 우울증은 잠에서 깨어나도 이불 속에서 그저 멍하니 누워 있고 싶어 한다. 식욕이 저하되기보다는 밤에 고칼로리 음식을 혼자 먹는다. 성격인지 병인지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또한 특징이다. 사회로부터 도망가려는 태도도 엿보인다. 진짜 병이 맞나 의심이 들기도 한다. 우울증인지 게으름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의사와 환자 가족 모두 애를 먹는다.

약제에 대한 치료 반응도 주요 우울장애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무기력해서 힘들어요. 약이라도 먹고 좋아지고 싶어요”라고 했던 환자가 막상 항우울제를 처방해줘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사례도 흔하다. 예약된 진료 시간에 아무런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가 나중에 힘들다고 하며 다시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깊은 관심을 갖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서 애를 썼어도 의사가 환자에게 “힘들어도 제때 자고 낮에는 움직여야 좋아질 수 있어”라고 조언하면 “나를 위로하고 공감해주지 않고 왜 더 힘들게 압박하느냐!”라며 힐난조로 대꾸한다.

신종 우울증은 공식적인 진단이 아니고, 임상 연구를 통해 그 실체가 명확히 규명된 질환도 아니다. 그렇지만 위에서 기술한 양상을 보이며 상담실을 찾는 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현상만큼은 임상 현장의 전문가라면 누구나 실감할 것이다. 전형적인 우울증처럼 치료해서는 효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인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의학적 치료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사회문화가 변해야 신종 우울증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당장 즐겁고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 양 떠들어대는 대중문화와 인플루언서들, 한 방의 투기로 손쉽게 돈을 벌어들이는 사회지도층이 신종 우울증을 일으키는 전파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고통을 감내하고 좌절을 견딘 후에야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주는 인생 선배가 꼰대라고 손가락질받는 사회라면 신종 우울증도 창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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