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E 로비설로 게임업계 풍비박산…“게임산업 타격 불가피”

송진식 기자 2023. 6. 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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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코인 의혹 관련 협회와 학회 ‘전면전’
고소전에 한 달째 대화 전무…사태 장기화 전망
5월 19일 한국게임학회 주최로 열린 위믹스 관련 토론회에서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간경향] 지난 6월 2~3일 대전 KAIST에서 열린 한국게임학회의 춘계학술대회 현장.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에 다소 ‘낯선 풍경’이 등장했다. 이번 대회의 후원자 명단에 게임사와 관련 협회 등 게임업계가 모두 빠진 것이다. 개별업체든 협회 차원이든 게임업계는 수년 전부터 게임학회의 가장 큰 연례행사인 학술대회를 꾸준히 후원해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학회와 업계가 후원을 주고받을 사이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가상화폐(코인) 보유 논란을 계기로 점화된 정치권 내 ‘P2E 합법화 로비설’을 둘러싸고 게임학회와 게임업계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로비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게임학회 측은 “이참에 진실을 가리자”는 입장인 데 반해 게임업계는 “근거 없는 게임산업 폄훼”라며 강하게 반발 중이다. 올해 학술대회 후원자 명단에서 업계가 모두 빠진 배경이기도 하다.

산업계에서 학계와 업계는 상생 내지는 공생 관계다. 정부 차원에서 ‘산학협력’을 장려해온 지도 수십 년이 흘렀다. 양측의 다툼이 길면 길어질수록 국내 게임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로비설 폭로 이후 업계 내 고소,고발전

김 의원이 코인의 일종인 ‘위믹스’를 한때 대량으로 보유했던 일이 발단이다. 어떤 경로로 위믹스를 대량 보유했는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자 정치권 등지에서 “로비나 청탁의 대가”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 와중에 게임학회가 공식적으로 해당 의혹을 제기했다. 게임학회는 지난 5월 10일 성명을 내고 “몇 년 전부터 P2E 업체와 협회, 단체가 국회에 로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소문이 무성했다”며 “여야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위믹스 투자 여부를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P2E는 ‘Play to Earn’의 약식표현으로, 업계에선 일명 ‘돈 버는 게임’으로 통칭된다. 게임 안에서 획득한 아이템이나 게임머니 등 재화를 현금화(보상)해주는 게 P2E의 기본 개념이다. 국내의 경우 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가 불법이기 때문에 현금보상 역시 불법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고안된 게 현금 대신 코인으로 보상하는 방법이다. 위믹스가 바로 게임업체인 위메이드가 발행한 P2E용 코인이다.

게임계에서 P2E는 의견이 분분하다.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라 이용자 확대 및 유지에 도움이 돼 안정적인 생태계 구축이 가능하다는 옹호론이 있다. 반대편에서는 게임으로 돈을 벌기 위해 결국 확률형 아이템을 많이 찾게 되는 등 사행성 문제를 키울 뿐이라고 주장한다. 어찌 됐든 엄연히 불법인 P2E에 대한 합법화 로비 의혹을 게임학회가 제기하자 게임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위메이드는 5월 17일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위메이드는 “위 회장이 확인되지 않은 의혹과 소문, 추측, 언론 인터뷰 등으로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부도덕한 이미지로 덧씌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최대 게임업계 단체인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같은날 성명을 내고 “위 회장이 지위를 이용해 연일 실체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게임산업 전반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고 있다”며 “무책임한 비방과 의혹을 제기하는 행위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위메이드와 위믹스 투자자 모임인 ‘위홀더’ 회원들도 위 회장과 게임학회를 6월 2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공갈 등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다.

게임학회장에게 살해협박까지, “게임업에 치명적”

로비 의혹 제기를 주도한 위 회장은 “살해 협박마저 받고 있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위믹스 투자자로 추정되는 발신인으로부터 나는 물론 가족까지 살해하겠다는 e메일을 받아 경찰에 신변 보호 및 수사 의뢰를 한 상황”이라며 “살해 협박에서 구체적으로 근무처 등을 명시해 경찰이 주기적으로 학교 주변 순찰을 돌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지난 6월 1일 게임학회와 공동성명을 내고 “대자본과 법률 조직으로 무장한 기업의 형사고소와 이어지는 익명의 살해 협박은 학문의 자유와 학자적 양심에 대한 협박과 탄압”이라며 “학문의 자유를 위협하는 위메이드에 대한 관련 당국의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 보유 의혹 등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 5월 말 위메이드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김성원 국민의힘 코인게이트 진상조사단장이 5월 19일 판교 위메이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위메이드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일정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라며 “위 회장 측과 만나거나 협의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중재’가 이뤄질 가능성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은 이번 사태에 개입하기보단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관련해 딱히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고소·고발전으로 비화한 이번 사태는 예상보다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으로도 불똥이 옮겨붙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5월에 ‘김남국 코인게이트 진상조사 TF’를 출범시켜 연일 김 의원의 탈당 전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공격 중이다. 민주당도 이에 맞서 6월 7일 ‘국민의힘 입법로비 진상조사단’을 발족해 활동에 들어갔다. 위메이드의 국회 출입 기록을 조사해 보니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실에 가장 많이 방문했고, 허 의원실에서 일하던 보좌관이 퇴직 후 모 가상화폐 거래소의 대표가 된 과정 등이 석연치 않다고 민주당은 주장한다.

로비설이 사실로 확인되든 안 되든 사태가 길어질수록 게임산업에는 부정적인 영향만 커지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이미 게임 과몰입 문제나 확률형 아이템 논란 등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게임계에 로비 의혹까지 더해진 건 치명적”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게임산업이 위축되고, 전공 학생들의 취업문도 좁아지는 등 학계에도 좋을 게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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