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전셋값 유지돼도…하반기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 58% '역전세'
올해 상반기 전세 계약을 맺은 서울 아파트의 54%에서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집주인이 직전 계약 때 받은 전세보증금에서 떨어진 전셋값만큼 전세보증금 차액을 반환하는 '역전세'가 발생한 것입니다.
올해 상반기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2년 전에 받은 보증금에서 평균 1억 원을 차액으로 내줬으며, 올해 하반기에는 전셋값이 지금 수준을 유지해도 3천만 원 더 많은 1억3천만 원가량의 보증금을 반환해야 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오늘(12일) 연합뉴스와 부동산R114가 2021년 상반기에 거래된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6만5천205건(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 기준) 가운데 올해 들어 6월 현재까지 동일 단지·주택형·층에서 1건 이상 거래된 3만7천899건의 보증금을 비교한 결과, 54%인 2만304건이 직전 계약보다 전셋값이 하락한 역전세였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전세시장은 2020년 7월 31일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 등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4년 치 전셋값을 한꺼번에 받으려는 집주인들로 인해 가격이 단기간에 폭등했다가, 지난해 금리 인상 본격화로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며 1년 가까이 역전세난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구별로 올해 상반기 역전세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중구로, 조사 대상의 63%가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하락했습니다.
또 동작구(62%), 서초구(61%), 은평구(60%), 강북·관악구(각 59%), 강남·서대문·구로구(각 58%) 등의 순으로 역전세 비중이 높았습니다.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하락한 거래의 보증금 격차는 평균 1억152만 원에 달했습니다.
집주인이 갱신 또는 신규 계약을 하면서 세입자에게 평균 1억 원 이상, 전체 규모로는 총 2조1천억 원이 넘는 보증금을 돌려준 셈입니다.
전셋값이 높은 강남권의 보증금 반환액이 컸습니다.
서초구 아파트의 보증금 반환액이 평균 1억6천817만 원, 강남구가 1억6천762만 원으로 나란히 1, 2위를 기록했습니다.
또 송파구는 집주인이 평균 1억4천831만 원의 보증금을 내줬고, 용산구는 1억1천780만 원, 성동구는 1억1천761만 원, 동작구는 1억1천687만 원을 반환했습니다.
중저가 단지가 밀집한 노원구에서도 집주인이 평균 4천645만 원, 도봉구는 5천214만 원의 보증금을 내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이 조사는 전월세 상한제 시행에 따라 재계약 시 '5% 인상 제한'이 걸리는 갱신계약을 포함한 것으로, 신규 계약만 보면 전셋값이 수억 원가량 떨어진 곳도 적지 않습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84.98㎡는 신규 전세 계약의 경우 2년 전 20억∼21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는 14억∼15억 원 선으로 하락해 보증금 격차가 5억 원 이상 벌어졌습니다.
동작구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 전용 59.92㎡는 2년 전 9억3천만 원에 신규 전세 계약이 이뤄졌으나, 현재 7억 원으로 2억3천만 원 하락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초까지 역전세난이 더 심화할 것으로 우려합니다.
2020년 7월 31일 임대차 2법 시행으로 급등한 전셋값이 2021년 말부터 2022년 초에 정점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2021년 12월과 2022년 1월 두달 연속 103.5를 기록해 통계가 공개된 2003년 11월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평균 전셋값 역시 2022년 1월 6억3천424만3천 원으로 2012년 조사 이래 가장 높았습니다.
실제로 연합뉴스가 부동산R114와 함께 2021년 하반기에 계약된 서울 아파트 7만2천295건 중 올해 상반기에 같은 단지·면적·층에서 거래돼 전셋값 비교가 가능한 2만8천364건을 분석한 결과, 현재의 전셋값 수준이 유지된다 해도 하반기 계약의 58%가 역전세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가격 비교 대상에서 빠진 거래까지 포함하면 최대 4만 건의 역전세 가능성이 우려되는 것입니다.
이는 올해 상반기에 나타난 역전세 비중(54%)보다 4%포인트 높은 수치입니다.
전셋값 하락 거래에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내줘야 하는 예상 보증금 차액도 평균 1억3천153만 원으로, 올해 상반기 보증금 차액(1억152만 원)보다 3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구별로는 서초구의 집주인들이 하반기에 평균 2억3천91만 원의 보증금을 반환해야 하고, 강남구도 차액이 1억9천712만 원으로 2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또 송파구는 평균 1억7천198만 원의 차액을 반환해야 하고, 용산구가 1억6천6만 원, 성동구가 1억5천133만 원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광진구(1억4천780만 원), 동작구(1억4천733만 원), 강동구(1억3천979만 원) 등도 세입자에게 반환해야 할 금액이 1억 원을 넘었습니다.
노원구와 도봉구는 상반기보다 1천300만∼2천만 원 많은 평균 6천509만 원, 6천785만 원을 반환해야 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다만 최근 시중금리 인하로 전세자금대출 수요가 늘면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상승 전환한 상태입니다.
이에 하반기 전셋값이 지금보다 2%가량 오른다고 가정하면 하반기 예상 역전세 비중은 53%로 미미하게 감소하고, 전셋값이 하반기에 5% 오른다면 예상 역전세 비중은 49%로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반면 전셋값이 하반기에 5% 하락하면 역전세 비중은 68%로 증가하고, 2%가 내려도 역전세 비중은 61%로 커집니다.
하반기에 역전세가 확대되고, 이로 인한 임차인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도 현재 대책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로 비화한 가운데 집주인의 사기 의도가 없는 일반 역전세난도 결국 최대 피해는 임차인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일단 세입자 보증금 미반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임대인이 전세금 반환 목적으로 대출을 할 경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일부 완화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집주인이 자금이 없어 보증금 차액을 반환하지 못하는 경우 은행 대출이 가능하도록 숨통을 틔워줘 임차인의 보증금을 상환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입니다.
부동산R114 여경희 수석연구원은 "임대인에 대한 DSR 규제 완화가 다른 차주와 비교해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임대차 2법 시행과 금리 인상 등 갑작스러운 정부 정책 변화로 인해 피해가 커진 측면도 있는 만큼 전세시장 안정과 임차인 보호 수단으로 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하반기 역전세 대상 주택이 늘긴 해도 이미 1년 가까이 끌어온 데다 서울은 최근 시중은행 금리 하락으로 매매와 전셋값이 동반 상승 중이어서 시장 걱정에 비해 큰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작년부터 역전세난이 지속되다 보니 집주인이 전세 만기가 되면 보증금 차액을 돌려줘야 한다는 걸 알고 대비하고 있어 작년보다 오히려 시장 혼란은 잦아들었다는 것입니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전세 만기 전에 미리 대출을 받아두거나 재계약을 유도하고, 보증금 차액 반환이 어려운 경우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그 차액만큼 이자를 주는 일명 '역월세' 계약을 맺는 등 현실적인 다양한 해결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는 하반기 역전세난이 서울 아파트 매매·전셋값 하락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그러나 입주 물량이 단기에 몰리는 곳을 제외하고는 역전세난이 전셋값이나 매매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2021년 가을부터 작년 1월까지 전세 고점 계약이 많았지만 이미 최근 1년여 동안 전셋값이 크게 하락한 상태여서 앞으로 아파트 전셋값이 추가로 크게 떨어지긴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빌라 전세사기와 역전세난 심화로 인해 아파트 전세 수요는 지금보다 더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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