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거 힙한데? 틱톡세대 홀린 J팝이 온다
아이묭·텐피트 국내서 인기
인기차트 진입·역주행 힘입어
쇼케이스∙콘서트…줄줄이 내한
한때 일본 대중음악은 금기의 영역이었다. 일본 대중문화가 금지됐던 1980~90년대, 소수의 마니아들은 음지에서 알음알음으로 안전지대, 엑스재팬 등 일본 음악을 향유했다. 가요계에서 일본 음악을 표절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됐지만, 제이(J)팝의 바람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케이(K)팝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이팝은 여전히 소수 마니아들의 음악이었다. 그런데 최근 다른 움직임이 눈에 띄고 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제이팝이 ‘힙’한 음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 선두 주자는 2000년생 일본 싱어송라이터 이마세다. 그가 지난해 8월 발매한 ‘나이트 댄서’는 지난 3월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 ‘톱 100’ 차트에서 최고 17위까지 올랐다. 제이팝이 음원 차트에서 이런 성적을 낸 건 좀처럼 드문 일이다. 이 노래는 9일 현재까지도 53위에 올라 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지난 4월 연 첫 내한 쇼케이스에는 국내 팬 500여명이 모였다. 이마세는 국내 래퍼 빅나티와 협업해 ‘나이트 댄서’ 리믹스 버전을 발매하는가 하면, 하이브의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에도 입점했다.
이마세 인기의 발판은 쇼트폼 동영상 기반 에스엔에스(SNS) 틱톡이다. 틱톡에서 ‘나이트 댄서’ 댄스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조회수 12억회를 넘겼다. 틱톡에서 얻은 관심이 고스란히 음원 차트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국내 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가 틱톡에서 인기몰이를 하면서 스포티파이와 빌보드 차트 성적으로 이어진 것과 마찬가지 행보다.
이마세만이 아니다. ‘일본의 아이유’로 일컬어지는 아이묭이 2017년 발표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든가’가 뒤늦게 국내에서 역주행하는가 하면,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겐시, 후지이 가제 등도 쇼트폼 영상을 기반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후지이 가제는 오는 24일 서울 광운대학교 동해문화예술관 대극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하는데, 단숨에 매진됐다. 싱어송라이터 바운디, 혼성 듀오 요아소비도 요즘 뜨는 제이팝 아티스트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 제이팝이 사랑받는 데는 일본 젊은 음악인들의 변화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환 대중음악 평론가는 “과거 일본은 디지털 음원보다 전통적 음반 시장이 강세였다. 내수시장만으로도 충분해 굳이 글로벌 진출에 애쓸 필요도 없었다”며 “하지만 최근 몇년 새 일본도 음원 중심 시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고, 특히 젊은 음악인들이 유튜브, 틱톡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결성한 지 20년 가까이 된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도 지난해 발표한 신곡 ‘해빗’ 뮤직비디오에 댄스 챌린지를 염두에 둔 춤 동작을 넣었고, 이는 실제로 댄스 챌린지로 이어졌다.
국내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제이팝이 인기를 얻기도 한다. 올해 초 개봉해 460만 넘는 관객을 모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제가를 부른 밴드 텐피트는 지난 4월 내한 행사를 연 데 이어, 7월15일 서울 강서구 케이비에스(KBS)아레나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친다. 20~30대 젊은층의 예매율이 절대적으로 높다고 공연 주최사 쪽은 전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 음악에 참여했던 밴드 래드윔프스도 7월21일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내한 공연을 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등으로 공개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최애의 아이> 주제가 ‘아이돌’을 부른 요아소비의 인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제이팝 아티스트들의 국내 음악 페스티벌 참가도 부쩍 늘었다. 8월4~6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리는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는 엘르가든, 기린지, 오토보케 비버, 히쓰지분가쿠 등 일본 밴드가 대거 출연한다. 앞서 7월15~16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리는 ‘해브 어 나이스 트립’ 페스티벌에도 일본 시티팝 밴드 오섬 시티 클럽이 참가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해외 투어에 목마른 일본 밴드의 적극적인 행보와 부담스럽지 않은 출연료에 일정 수준 이상의 퍼포먼스를 내는 출연진을 원하는 페스티벌 주최 쪽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앞으로 제이팝의 인기와 영향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특정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제이팝이 이제는 유튜브, 틱톡 등 에스엔에스를 타고 블특정 다수에게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환 평론가는 “과거엔 일본 음악을 접하려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알고리즘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듣는 사람 입장에서 어느 나라 음악인지 따지지 않고 좋으면 됐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어 제이팝의 인기가 이전보다 더욱 폭넓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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