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성인(成人)의 자격, 어른의 품격
세대 갈등과 공존의 지혜
품격 있는 어른이 필요한 시대
세종 즉위 10년째인 1428년,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오늘날에도 그렇거니와 유교의 윤리 규범을 근간으로 도덕적 이상을 지향했던 조선에서 존속살해는 응당 경악할 만한 초유의 사태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강상죄(綱常罪)를 물어 당사자를 능지처참의 극형에 처하고,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 자칫 통치 권력의 기반마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434년, 왕명에 따라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부자·부부의 삼강(三綱)에 모범이 될 만한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모아 교훈서를 발간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편찬 경위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아들의 탄생 후 델포이 신탁(神託)에서 끔찍한 예언을 듣는다. 아들이 아버지인 자신을 죽이고, 어머니인 왕비와 결혼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두려움에 싸인 왕은 양치기에게 아들을 넘겨 살해할 것을 명하지만 죽이지 않는다.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성장한 아들은 우연히 만난 친부의 존재를 모른 채 사소한 시비 끝에 죽이고 만다. 끔찍한 예언대로 아들은 테베에 입성하여 즉위하고, 어머니와 결혼 후 마침내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비극적 운명에 몸부림치며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다. 그가 바로 널리 알려진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유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버지에게 적대감을 지니는 아들의 심리를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살부(殺父)라는 극단적 모티프를 사례로 들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는 늘 도전과 극복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변혁의 과정을 거치며 역사가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세대 간의 갈등이 점점 도를 넘는 각박한 현실이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경제 논리로 사회 현상을 해석하려는 시도가 지배적인 이즈음의 시대 분위기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인구절벽이 심화되고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현재, 노동인구의 주력인 청년층이 은퇴 이후의 노년층을 먹여 살리는 사회 구조는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세대를 불문하고 일자리 경쟁까지 감수해야 하는 기형적 사회 현상은 기성세대에 대한 혐오를 가속화하기도 한다. 장수(長壽)가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일상화된 '꼰대'라는 단어에 담긴 함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과거 아버지나 선생님을 지칭한 은어였던 이 단어는 이제 기성세대 혹은 연장자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경멸의 개념으로 보편화되었다. 또한 '꼰대 테스트', '꼰대 정신', '젊은 꼰대' 등 다양하게 변주되어 하나의 밈(meme)으로 활용되는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격동기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가족과 사회에 헌신했다고 믿는 기성세대에게는 매우 달갑지 않은 현상일 것이다.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필자로서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젊은 세대의 항변에 귀를 기울이는 아량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의 기성세대도 과거에는 이전 세대의 수직적인 권위주의와 불합리한 매너리즘을 부정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기에.
존중이 전제되지 않은 우대는 허울에 불과하다. 어른이라면 존중받을 권리 이전에 존중받을 수 있는 품격을 갖추었는지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수투성이의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누구나 오류에 빠지고 모두가 결핍을 경험한다. 그러나 무수한 경험을 성숙한 인격으로 승화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므로 누구나 생물학적 성인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 품격 있는 어른이 되지는 못한다. 성인의 자격을 넘어 어른의 품격을 갖추고자 한다면, 그 해답은 각자 살아온 시간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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