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역사 크루즈] 우리 모두는 올바른 세상에 살고 싶다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2023. 6. 1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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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서울=뉴스1)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도널드 서순의 대작 '유럽문화사'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벌어진 문화현상을 인간의 본연적 정서와 사회적, 국가적 환경과 얼버무려 설명해 준다. 그중에서 동화 파트가 있다.

작가의 설명을 잠깐 요약하면, 동화와 판타지는 고대부터 인기 있는 장르였다. 여기서 동화는 꼭 어린이용 이야기가 아니라 민담, 전설에 가깝다. 작가는 글말로 기록된 초기의 동화들은 원래 귀족과 지식인들이 지체 높고 교양 있는 청중을 위해 쓴 성인 장르였다고 한다.

인도의 동물 우화집 '판차탄트라'는 기원전 4세기에서 3세기에 쓰여졌다. 이 책의 목적은 세상사에 어두운 어린 왕자를 가르치기 위한 안내서였으며, 목적에 맞게 내용의 주제는 권선징악이 아니라 약육강식이었다. 14세기에 아랍어로 번역된 '아라비안 나이트'에 실린 이야기들도 고향이 사산 왕조가 아니라 인도였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이야기가 있었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수요가 있었다. 이런 민담이 19세기 독일 민족주의자들에게서 민족의 고유한 언어, 고유한 민족정신, 민족의 고유한 역량, 민중의 목소리를 밝혀줄 '언약의 열쇠'로 주목받으면서 그림 동화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지난 편에서 살펴보았다.

그림 동화가 탄생하고 선풍적 인기를 얻게 되자 놀라운 반전이 발생했다. 서순은 그림 형제의 동화집이 성공한 중요한 이유는 독일에서 수집한 동화가 사실은 특별히 독일적이지 않은 데에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에도, 여러 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돌아다녔다. 그림 형제에게 헨델과 그레텔 이야기를 전해 준 도르트헨 빌트는 프랑스에서 독일로 피난 온 위그노 집안이었다. 그림 형제가 채록한 이야기 중에는 프랑스 동화집 샤를 페로의 책에 있는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도 많았다. 어쩔 수 없이 그림 형제는 2판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삭제했다.

동화 사랑이 고대로부터 시작되었고, 성인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로 각색되었으며, 아시아와 유럽까지 비슷한 이야기들이 퍼지고 사랑받았다는 것은 이 장르가 지닌 놀라운 보편성을 증명한다.

부르주아, 중산 시민층이 성장하면서 독서 시장은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었다. 지식의 보편화는 글과 책을 위한 시장을 확산하고, 연극, 영상, 대중예술이란 20세기의 기적을 세우는 토대가 되었다. 디즈니 공주들의 성공은 동화의 보편성과 대중이 주체가 되는 시장의 확대라는 두 개의 흐름에 성공적으로 편승한 덕이었다.

최근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의 캐스팅을 두고 세계적인 논란이 발생했다. 인어공주는 시작이고 앞으로 흑인 공주를 주연으로 한 작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란다. 반발과 반작용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20세기만 해도 백설공주, 인어공주, 신데렐라는 비록 하얀 공주였지만, 그 메시지의 중심은 역경을 이겨내는 꿈과 소망이었다. 갈등보다는 화합에 초점이 있었다. 흑백차별이 심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피부로 체험하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 중에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보편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같은 피부색을 지닌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주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밀림의 왕자 레오'에서 흰사자를 주인공으로 채택한 이유를 일각에선 서구, 백인 사회에 대한 선망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백마, 백호, 흰고래 등 '흰색'에 대한 동경, 특별함을 느끼는 심성은 백색 피부와 무관하게 모든 문명권에서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다른 메시지도 있다. 이런 흰색 동물들은 알비노란 불운한 유전병의 소산이고, 자연계에서 알비노는 저주에 가깝다. 이런 동물들은 포식자의 표적이 되어 성체가 되기 힘들다. 드물게 성체로 성장하는 동물은 특별히 운이 좋거나 이런 신체적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탁월한 용기, 지혜, 체격을 지닌 동물이어야 한다. 소설 '모비딕'의 모델이 칠레 연안에 살던 모카 딕이란 흰고래인데, 바로 이런 사례이다. 아마도 인간 관찰자들은 이런 성체를 보면서 ‘백색 생물’에 대한 경외감이 생겼을 것이다.

근대사회는 성취욕, 경쟁에서의 승리를 시민의 미덕으로 만들었다. 역경과 불리함을 딪고 일어서는 동물 세계의 영웅과 생존, 연약한 공주들의 꿈과 소망은 근대의 미덕과 잘 맞아 떨어졌다.

이런 훌륭한 근대의 상징이 어쩌다가 21세기에 인종갈등의 소재가 되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성취욕의 확산과 성장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PC 열풍의 원인에 대해서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독점의 해소라는 관점이다. 과거에는 지배층이 정보와 지식을 독점했다. 이제는 이런 독점이 곤란해졌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전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한다. 지식, 정보, 인권의식, 저항정신이 확산되고, 일반 대중이 이젠 더 이상 거짓 선전, 이념, 왜곡된 교육에 속지 않고, 진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콜럼버스는 과거에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요즘은 그가 출세욕에 사로잡힌 무모하고 잔학한 제국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는 식민지 원주민에 대해 가혹한 정책을 폈다. 오죽하면 스페인 당국에서 그의 총독 임무를 정지시키고 본국으로 압송해 갈 정도였다. 콜럼버스의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의 동상을 끌어내리고, 그를 미화하는 표식을 파괴했다.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힘이다. 선량한 대중은 현명해졌다. 더 이상 지배층이 내세우는 잘못된 법과 제도에 속지 않는 분별력을 지녔고, 올바른 세상을 직접 구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이런 견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인류 역사의 긴 흐름에서 지식과 정보, 문자가 독점에서 공유로 변화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인터넷, SNS가 공개하는 것은 대부분이 지식이 아닌 정보이다. 지식과 정보의 경계가 애매하긴 하지만, 콜럼버스의 비리를 밝혀내는 것과 같은 내용은 정보이다.

콜럼버스의 동상을 파괴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콜럼버스의 동상 파괴는 우리 세계를 발전시키고,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데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가라는 부분은 지식과 지혜의 영역이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소위 지식과 정보의 독점이라는 부분을 독점이란 개념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대의 민중이라고 그렇게 우매하고 어리석지 않았다. 글을 읽지 못하고, 고급스런 언어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서 지배층의 논리를 순응하고, 그들이 지시하는대로 살았다고 보는 견해야 말로 지식인의 편협한 오만이다.

정보를 아는 것과 정보를 활용해서 바람직한 행동과 법과 제도를 창안하고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 근대의 교육제도는 정보의 확산에는 분명히 공헌했지만, 지식과 지혜라는 점에서는 두가지 극단적 결과로 갈라진다. 창의와 올바른 선택을 하는 지혜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특정한 가치와 행동양식을 주입하는 도구도 된다. 우리가 가만히 돌이켜 보면 우민상태로 두는 과거의 방식과 교육제도와 매스컴을 통해 가치관을 주입하는 현재의 방식, 어느 쪽이 더 가공스러울까? 소수가 지식을 독점하는 상황보다 다수가 세뇌된 상태가 훨씬 더 무섭다.

보편 교육의 발전과 지식과 정보의 보급으로 사회의 지적 수준, 대중의 민주적 권리와 역할이 크게 신장된 것은 맞다. 그러나 지식의 대중화는 사회의 발전속도와 다원화, 인적 네트워크와 사회현상의 복잡성을 집단지성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더 빠르게 변화시켰다. 대중은 더 많은 진실을 알고, 오랫동안 역사가 가려온 추악한 이면의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정작 현대사회의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과 해결책을 찾는 능력은 다르다. 사회 문제가 복잡하고,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때, 사람들은 단순하고 명쾌하고 도덕적인 해결책을 선호하게 된다. 정치적 올바름도 이런 아노미 현상의 결과이다. '올바른 세상', '올바른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당한 억압과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도 당연히 교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 또한 현명하고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현상의 단순화, 용어의 교정, 과거의 부정, 도덕적 기준의 강화가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잡초를 뽑아 버린다고 그 자리에 알곡이 저절로 자라나지 않는다. 더 건강한 잡초가 자라난다.

동화의 힘은 민족이 아닌 보편성에 있다. 인어공주와 백설공주의 감동도 보편성에 있다. 보편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인어공주와 백설공주가 백인이라고 해서 백인 아닌 인종에 대한 차별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그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 역시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 중 하나이다.

과거 로마인은 예수를 로마인의 모습으로 그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파란 눈의 예수가 교회에 걸려 있었다. 2000년 전에 그린 아잔타 동굴의 벽화에는 검은 피부의 석가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흑인 인어공주를 갖고 싶어 하는 마음도 보편적 감정의 소산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세계를 들썩이는 논쟁이 되어 버렸다.

세상의 현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고, 악에 주홍색의 낙인을 찍고 악을 제거하면 선한 세상이 온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생각은 없다. 디즈니의 공주 논란은 누가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논쟁 자체가 우리 시대 지성의 한계, 위기의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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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kmy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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