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한국, '세계적 애니' 일본···"서로의 장점 살리며 글로벌 OTT 도전"
한국 제작 역량 올라가며 협업 형태 변화
양국 기존 IP 서로 손잡고 새롭게 개발 추진
한국 드라마 영화에 일본 감독 초빙 늘기도 중>
편집자주
한일 문화 교류의 새 장이 열리고 있다. '역사는 역사, 문화는 문화'로 분별하며 국경을 넘나드는 '보더리스 세대'가 주역이다. 당당하게 서로의 문화를 향유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양국의 문화 교류 현상을 짚는다.
국내 영화사 JK필름은 일본 도에이 애니메이션(이하 도에이)과 ‘탈출’을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영화로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탈출'은 청소년들이 지옥 등 여러 공간을 겪으며 성장해 가는 내용을 담은 판타지다. JK필름과 도에이가 이야기 개발을 함께 하며 JK필름이 영화와 드라마를, 도에이가 애니메이션 작업을 맡는 식으로 업무를 나눴다.
JK필름은 영화 ‘해운대’(2009)와 ‘국제시장’(2014), ‘공조’ 시리즈 등 흥행작을 여러 편 낸 국내 대표 영화사 중 하나. 1956년 설립된 도에이 애니메이션은 ‘드래곤볼’과 ‘원피스’ ‘마징가 Z’ ‘슬램덩크’ ‘은하철도 999’ 등 여러 히트작을 만든 ‘일본의 디즈니’다. 길영민 JK필름 대표는 “국내 영화계가 침체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도에이와의 협업을 새 돌파구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내 굴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CJ ENM과 도에이는 2021년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콘텐츠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JK필름은 CJ ENM의 자회사다. 한국과 일본의 대중문화 교류가 진화하고 있다. 단순 합작을 넘어서 각자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업화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이 높아지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급부상하는 미디어 환경의 급변과 맞물려 있다.
한국은 이야기, 일본은 비주얼 담당
한일 대중문화 교류는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대만과 홍콩 등이 함께하는 합작이 대부분이었다. 물밑에서는 일부 일본과의 협력도 있었지만 반일 감정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면서 한일 합작은 급격히 늘었다. 초기에는 한국과 일본의 자본, 인력이 단순 결합된 형식이었다. 양국 시장을 겨냥하고 조금 더 나아가 아시아 시장까지 넘보는 기획이 다수였다. 2009년 국내 방송 SBS와 일본 방송 아사히TV가 손잡고 만든 ‘텔레시네마’가 대표적. 한국 유명 방송 PD 8명이 연출하고, 일본 유명 작가 7명이 극본을 써 TV용 영화 10편을 만든 기획이었다.
2020년대 들어선 협업의 형태가 바뀌었다. CJ ENM과 도에이가 각자 보유하고 있는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분업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일본 기존 애니메이션을 드라마와 영화로, 일본은 한국 기존 드라마와 영화를 애니메이션으로 각각 변환시켜 세계 시장을 노리려 하고 있다. CJ ENM의 드라마를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도에이의 애니메이션을 한국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CJ ENM의 또 다른 자회사 블라드스튜디오의 서호진 대표는 “도에이는 한국의 글로벌 기획력과 이야기 만드는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영화와 드라마는 우리가,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워낙 세계적 수준이라 서로의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일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배우와 스태프는 한국이, 연출은 일본이 맡는 식으로 현장 업무를 좀 더 세분화한 분업화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송강호에게 국내 최초로 남자배우상을 안겨준 ‘브로커’가 대표적. 일본 유명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메가폰을 잡았지만 출연 배우 모두가 한국인이고 스태프 대부분이 한국인으로 꾸려졌다. 한국 영화사 집이 제작을, CJ ENM이 투자배급을 맡았다. 국내 흥행(126만 명)은 부진한 편이었으나 해외 188개국에 판매됐다. 한국과 일본이 업무를 나누고 힘을 합쳐 세계 시장에 진출한 셈이다.
한국 위상 격상과 OTT 급부상...협업에도 영향
지난해 글로벌 OTT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드라마 ‘커넥트’는 ‘브로커’와 비슷한 사례다. ‘커넥트’는 장기밀매조직에 눈을 뺏긴 한 사내가 자신의 눈을 이식한 연쇄살인마를 추격하는 과정을 그렸다. 국내 동명 인기 웹툰을 바탕으로 했고, 유명 배우 정해인과 고경표 등이 출연했다. 연출은 일본 감독 미이케 다카시가 맡았다. 그는 기괴한 내용을 담은 영화들로 전 세계에 팬층을 형성해 왔다. ‘커넥트’ 제작사 관계자는 “미이케 감독이 함께하게 되면서 세계 시장을 겨냥할 수 있게 돼 제작이 수월해졌다”고 밝혔다.
유사 사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일본 사부(본명 다나카 히로유키) 감독은 일본 동명 소설을 밑그림 삼은 영화 ‘언더 유어 베드’를,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국내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완벽한 가족’을 한국에서 만들고 있다.
상호 장점을 살리는 분업화의 증가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수준이 높아진 덕택이다. 영화 ‘기생충’(2019)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 등 세계적 화제작이 잇달아 나오면서 한국 콘텐츠를 바라보는 일본 관계자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한일 합작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2021)은 “한국 스태프와 일하고 싶다”는 일본 이시이 유야 감독의 바람이 반영된 작품이다. 일본이 투자와 제작을 주도한 이 영화는 한국 스태프·배우와의 촬영을 감안해 각본이 쓰였다. 한국 배우 김민재, 최희서 등이 출연했고,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와 이케마쓰 소스케가 연기호흡을 맞췄다.
OTT가 유력 플랫폼으로 부상하며 콘텐츠 유통 질서에 변화가 생긴 점도 영향을 줬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넷플릭스 등 OTT에서 각광을 받으면서 협업 필요성이 커졌다. 일본이 한국과 협업을 위해 다양한 투자 방안을 검토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적극적이라 한일 분업은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길영민 JK필름 대표는 "일본이 한국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등 유사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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